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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그릇이 숨을 쉰다고? 조상님의 지혜 담긴 옹기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수백 년간 '원조 김치 냉장고' 활용 
옹기의 발효성·저장성·경제성 이미 입증됐죠

소금에 절인 배추·무 등을 고춧가루·파·마늘 등의 양념에 버무린 뒤 발효를 시킨 김치, 메주로 간장을 담근 뒤에 장물을 떠내고 남은 건더기인 된장, 메주를 소금물에 30~40일 정도 담가 우려낸 뒤 그 국물을 떠내 솥에 붓고 달여 만든 간장. 한국인의 밥상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죠. 지금은 마트·시장에서 쉽게 살 수 있지만, 생산·유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집집마다 김치·된장·간장을 담갔어요. 그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옹기랍니다. 옹기에 이들을 담아서 발효시켰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옹기를 '숨 쉬는 그릇'이라고도 하죠. 하지만 옹기의 쓰임새는 음식 보관만이 아니었답니다. 부엌과 창고, 장례와 제사 등 옹기는 생활 곳곳에서 사용됐죠. 옹기는 언제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질까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울산광역시 외고산 옹기마을을 찾아 알아봤어요.

김민솔(서울 명지초 5)·서연우(서울 월계초 6) 학생기자·오은채 학생모델(서울 가동초 5·왼쪽부터)이 울산 외고산 옹기마을을 찾아 옹기에 대해 알아봤다.

김민솔(서울 명지초 5)·서연우(서울 월계초 6) 학생기자·오은채 학생모델(서울 가동초 5·왼쪽부터)이 울산 외고산 옹기마을을 찾아 옹기에 대해 알아봤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에 있는 외고산 옹기마을은 1950년대 경북 영덕에서 옹기업을 하던 허덕만씨가 한국전쟁을 피해 이곳으로 들어와 옹기를 제작하며 시작됐습니다. 이후 옹기 제작에 필요한 양질의 찰흙이 풍부하고, 옹기용 가마를 세우기 적합한 지형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옹기장이들이 모여들어 옹기촌이 형성됐죠. 외고산 옹기마을에는 울산옹기박물관·발효아카데미관·옹기아카데미관 등 옹기 관련 체험 시설은 물론 옹기를 제작·판매하는 업체도 여럿 있답니다.

울산옹기박물관을 찾은 소중 학생기자단이 2011년 6월 28일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대 옹기를 살펴봤다.

울산옹기박물관을 찾은 소중 학생기자단이 2011년 6월 28일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대 옹기를 살펴봤다.

김민솔·서연우 학생기자와 오은채 학생모델이 옹기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먼저 울산옹기박물관을 찾았어요. 이수정 문화관광해설사가 어른보다 큰 옹기 앞에서 인사를 건넸죠. "이 옹기의 높이는 223cm, 몸통 둘레는 517.6cm, 입구 둘레는 214cm, 입구 지름은 69.4cm에 달하죠.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전통 옹기의 우수성과 실용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자 6번의 시도 끝에 2010년 9월 29일 제작에 성공했고, 2011년 6월 28일 세계에서 가장 큰 옹기로 기네스북에서 인증을 받았죠."

부엌·창고부터 장례·제사까지…생활 곳곳의 옹기  

신석기시대에 제작된 옹기의 원류인 덧무늬 토기.

신석기시대에 제작된 옹기의 원류인 덧무늬 토기.

옹기는 우리 민족과 함께한 역사가 매우 길어요. 선사시대부터 만들어서 음식물을 저장하거나 시신을 넣는 관으로 사용했죠. 고구려의 안악 3호분 고분벽화에는 크고 작은 옹기를 늘어놓은 장면이 있으며, 백제·신라에서는 쌀이나 술, 기름과 간장, 젓갈 등을 옹기에 저장했다는 기록이 나와요. 옹기에 대한 기록은 고려·조선시대에도 꾸준히 이어집니다. 고려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쌀·장류·과일·식초·식수 저장을 위해 옹기를 사용했다는 내용이 등장하며, 조선의 『경국대전』에는 옹기를 만드는 장인이 언급됐죠.

생산·유통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집집마다 된장·간장·고추장 등을 담가서 옹기에 보관했다. 갓 담근 장은 발효될 동안 금줄을 둘렀다.

생산·유통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집집마다 된장·간장·고추장 등을 담가서 옹기에 보관했다. 갓 담근 장은 발효될 동안 금줄을 둘렀다.

흔히 옹기 하면 고추장·간장·된장 등 각종 장류가 담긴 독과 항아리를 놓아두는 공간인 장독대를 먼저 떠올릴 텐데요. 우리 조상들은 김치·장류·곡식뿐만 아니라 새우로 만든 젓갈, 소금을 뿌린 무, 솥에서 덜어놓은 밥, 식혜·꿀·조청·물엿·물과 각종 양념 등 다양한 음식을 옹기에 보관했답니다. 갓 담근 장의 경우 독에 부정한 것의 침범이나 접근을 막고 아무나 만지면 안 된다는 뜻에서 금줄을 감았어요.

"옹기는 용도별로 생김새와 크기가 달라요. 예를 들어 젓갈을 담는 옹기는 길쭉하고 옆구리가 평평한 모양이었는데요. 배나 수레에 최대한 많이 싣기 위해서죠. 또 덜어놓은 밥을 보관하는 밥솥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냄비와 비슷한 형태였고, 물을 담아 들고 다니던 옹기는 오늘날의 텀블러와 비슷하죠. 수확한 콩·팥·쌀 등을 저장하던 항아리 형태의 옹기는 많은 양을 저장해야 해 크기도 거대했어요."

옹기로 만든 떡살. 옹기를 만드는 재료인 찰흙과 잿물(유약), 그리고 옹기를 구울 때 쓰는 화목은 주변에서 구하기 쉬웠기 때문에 다양한 생활용품이 옹기로 제작됐다.

옹기로 만든 떡살. 옹기를 만드는 재료인 찰흙과 잿물(유약), 그리고 옹기를 구울 때 쓰는 화목은 주변에서 구하기 쉬웠기 때문에 다양한 생활용품이 옹기로 제작됐다.

부엌·창고뿐만 아닙니다. 옹기는 성형이 쉬운 찰흙으로 만들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생활 소품으로 제작됐어요. 전시실에서는 대나무 모양을 본뜬 죽절 붓통, 벼루에 먹을 갈 때 쓰는 물을 담아 두는 연적, 탕약을 달일 때 쓰는 약탕기, 담뱃재를 터는 재떨이, 불씨를 보관할 때 쓰는 화로, 제사에 쓰는 그릇인 제기 등도 볼 수 있었죠. 사람 모형이 올라앉아 있는 사람 키만 한 옹기도 있었는데요. 화장실로 사용된 옹기입니다. "땅을 파서 그 속에 항아리를 넣고, 옹기 입구에 나무판을 걸쳐서 사람이 걸터앉아 볼일을 볼 수 있는 구조예요. 비료가 없었던 옛날에는 배설물을 모아 거름으로 썼죠."

조선 후기에 제작된 절구. 옹기는 된장·간장·고추장·김치 등 발효 식품 보관 외에도 생활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절구. 옹기는 된장·간장·고추장·김치 등 발효 식품 보관 외에도 생활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전시실 바닥에는 제주도 삼화지구, 전북 고창 남산리, 전남 영암 내동리, 경북 경주 사라리 등 전국 각지에서 발굴된 옹관이 전시됐죠. 말 그대로 옹기로 만든 관인 옹관은 주검이나 뼈를 묻는 데 사용했어요. "옹관은 옹기 2개로 이뤄진 구조예요. 한쪽에는 사람의 시신이 들어가고, 다른 쪽은 관을 닫는 뚜껑 역할을 하죠."

주검이나 뼈를 묻는 옹관을 보는 소중 학생기자단. 전국 각지에서 발굴된 옹기로 만든 관의 모형이 전시됐다.

주검이나 뼈를 묻는 옹관을 보는 소중 학생기자단. 전국 각지에서 발굴된 옹기로 만든 관의 모형이 전시됐다.

이렇게 옹기가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재료인 흙·잿물과 가마에서 옹기를 구울 때 쓰는 나무를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옹기는 일반 서민들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 가격에 팔렸으며, 이러한 경제성으로 인해 우리 민족 생활 용기로서 오래 사랑받았죠. 은채 학생모델이 "옹기를 만드는 과정이 궁금해요"라고 말하자, 이 해설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을 옹기의 제작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실로 이끌었어요.

화장실로 사용된 옹기. 화학적으로 만든 비료가 없던 옛날에는 옹기에 모은 분변을 비료로 활용했는데, 냄새가 심한 경우가 많아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로 사용된 옹기. 화학적으로 만든 비료가 없던 옛날에는 옹기에 모은 분변을 비료로 활용했는데, 냄새가 심한 경우가 많아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 화장실이 있었다.

장인의 정성과 노하우가 담긴 옹기 제작  

옹기의 주재료는 철분·모래 알갱이 등이 다량 함유된 찰흙, 즉 옹기토예요. 끈끈하고 차진 힘인 점력(粘力)이 옹기토의 품질을 결정하는데요. 점력이 좋아 성형하기 쉬운 찰진 흙과 가마 안에 들어갔을 때 열을 견디는 힘인 내화도(耐火度)가 강한 흙이 좋은 옹기토예요. 즉 '만들기 편하고 불 때기 좋은 흙'이죠. 경주 안강토, 나주 왕곡토, 예산토, 김제토, 제주토, 강진 칠량토 등이 꼽힙니다.

(맨 위 사진부터) 옹기에 바르는 잿물(유약)을 만드는 소나무재·참나무재와 약토, 옹기를 만들 때 재료가 되는 옹기토.

(맨 위 사진부터) 옹기에 바르는 잿물(유약)을 만드는 소나무재·참나무재와 약토, 옹기를 만들 때 재료가 되는 옹기토.

옹기를 만드는 장인을 옹기장이라 하는데요. 이들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옹기토의 품질을 감식했어요. 첫 번째는 수분을 29% 정도 섞어 반죽한 점토를 손바닥으로 비벼서 두꺼운 철사 정도의 굵기로 만든 뒤 손가락에 감아보는 것이죠. 이때 균열이 생기지 않아야 해요. 두 번째는 점토를 손가락으로 문질렀을 때 까끌까끌한 모래가 없어야 해요. 옹기장이의 품질 검사를 통과한 찰흙이 준비되면 본격적으로 옹기를 만들 수 있죠. 옹기 제작 첫 단계는 흙 반죽하기입니다. 찰흙을 메로 치고 발로 이겨서 옹기토로 만든 뒤, 가래떡처럼 길게 뭉쳐서 흙띠를 만들죠. 옛날에는 흙띠를 사람이 하나하나 만들어야 했지만, 요즘에는 기계로 가래떡처럼 뽑아내요.

옹기토를 만들기 위해 점토를 쳐서 공기와 불순물을 제거할 때 쓰는 메. 울산옹기박물관

옹기토를 만들기 위해 점토를 쳐서 공기와 불순물을 제거할 때 쓰는 메. 울산옹기박물관

두 번째 단계는 모양 만들기, 즉 옹기 성형이에요. 물레 중앙에 옹기토를 올려놓고 방망이로 두드려 넓고 납작한 옹기 밑판을 만들어요. 그리고 밑바닥 가장자리를 따라 흙띠를 쌓아 올린 뒤 두드려 가며 옹기 몸체를 만드는 거죠. 이를 타림(태림)질이라 합니다. 타림질을 통해 옹기벽이 세워지면 안쪽에는 둥근 토막처럼 생긴 도개를 대고, 바깥쪽을 넓적한 주걱처럼 생긴 수레로 때려 옹기벽 두께를 일정하게 만들어줘요. 이걸 수레질이라 하며, 아래쪽을 위쪽보다 두껍게 해서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수레질이 끝나면 날이 얇은 나무 조각인 근개를 옹기벽에 대고 물레를 돌리면서 매끄럽게 다듬어요.

옹기를 성형하는 단계에서 옹기벽 밖을 때릴 때 쓰는 수레. 울산옹기박물관

옹기를 성형하는 단계에서 옹기벽 밖을 때릴 때 쓰는 수레. 울산옹기박물관

세 번째 단계는 형태가 잡힌 옹기를 굽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균열과 파손을 막기 위해 말리는 겁니다. 성형을 마친 옹기에 손자국이 나지 않도록 부드러운 덩굴이나 천을 이용해 양쪽에서 감싸듯 들거나, 판자 위에 올려서 옮긴 뒤 골고루 말리죠.

옹기토로 만든 덩어리를 밑바닥 가장자리부터 쌓아 올린 뒤, 원하는 모양으로 성형할 때 옹기벽 안쪽에 대는 도개. 울산옹기박물관

옹기토로 만든 덩어리를 밑바닥 가장자리부터 쌓아 올린 뒤, 원하는 모양으로 성형할 때 옹기벽 안쪽에 대는 도개. 울산옹기박물관

네 번째 단계는 옹기에 잿물을 입히는 건데요. 이 잿물이 바로 옹기에 바르는 유약입니다. 연우 학생기자가 "잿물을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알고 싶어요"라고 말했어요. "잿물은 나무를 태운 재와 나뭇잎이 썩어서 만들어진 약토를 1:1 비율로 물과 섞은 뒤 삭혀서 만들죠. 건조된 옹기를 잿물에 담근 뒤 한 바퀴 돌려 안팎으로 꼼꼼히 발라줍니다." 잿물은 옹기 표면이 반짝반짝 빛나는 비결인데요. 방수기능을 향상시켜 옹기 내부에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는 역할도 합니다. 잿물이 마르기 전에 문양을 그린 뒤엔 2차로 건조하죠.

다섯 번째 단계는 가마 안에 옹기를 차곡차곡 쌓는 가마재임이에요. 가마에 옹기를 넣은 뒤 장작을 넣고 1200℃ 이상의 온도에서 구우면 갈색이나 적갈색 빛이 돌면서 유약으로 인해 표면이 반짝반짝 빛나는 옹기가 완성되며, 높은 온도에서 굽는 과정에서 옹기벽에 함유됐던 물(결정수)이 빠져나가며 미세한 기공이 생겨요.

외고산 옹기마을 소년중앙 취재

외고산 옹기마을 소년중앙 취재

가마에 불을 땔 때는 옹기와 가마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은 물론, 바람과 날씨에 맞춰 불의 양과 온도를 적절히 조절해야 해요. 가마 불 때기에 실패하면 그 안에 있는 옹기를 다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옹기 가마는 나무(화목·火木)를 때서 굽는 전통 가마(화목 가마)와 기름·가스·전기를 사용해서 굽는 현대식 가마로 나뉩니다. 전통 방식의 화목 가마는 크게 가마 입구 부분인 아궁이, 옹기를 쌓아두는 소성실, 연기를 배출하는 굴뚝으로 나뉘어요.

"(화목 가마를 기준으로) 옹기 가마는 아궁이와 가마 옆의 창구멍을 통해 불을 피워요. 옹기 가마는 내부가 막힘없이 일자로 길게 뻗은 형태로, 굴과 유사해 옹기굴이라고도 불렸는데요. 그래서 아궁이에서만 불을 내서는 가마 내부 전체에 골고루 열기가 돌기 어렵다 보니 불을 여러 차례 내서 단계별로 적정 온도를 유지하죠."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11년 발간한 『옹기와 모둠살이: 외고산 옹기마을』에 따르면 옹기 가마 불 때기는 총 네 단계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가마 내부의 냉기와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아궁이에서 때는 피움불이에요. 이때 가마 내 온도는 200℃ 이하로 짧으면 4일, 길면 10일 정도를 땝니다. 피움불을 때는 기간은 날씨에 달렸어요. 추운 겨울이면 가마의 온도를 높이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열이 필요하겠죠. 옹기의 건조 상태는 굴뚝 연기를 통해 알 수 있어요. 연기가 흰색이면 습기가 많은 상태이며, 연기를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면 건조가 다 된 거죠.

내부가 복도처럼 기다란 옹기 가마는 가마 입구 부분인 아궁이, 옹기를 쌓아두는 소성실, 연기를 배출하는 굴뚝으로 구분한다.

내부가 복도처럼 기다란 옹기 가마는 가마 입구 부분인 아궁이, 옹기를 쌓아두는 소성실, 연기를 배출하는 굴뚝으로 구분한다.

두 번째는 가마 내 온도가 550~600℃인 중불로 2일 정도 땝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옹기를 굽는 단계가 시작돼요. 중불 상태일 때 가마 안의 옹기는 그을음을 입으며 검게 변하죠. 이어 옹기뿐 아니라 가마까지 달구는 달음불이 세 번째입니다. 이때 가마 내 온도는 약 800~1150℃ 정도가 되며 약 3일간 열을 가하죠. 달음불 단계에 들어서면 옹기가 그을음을 벗고, 본격적으로 익기 시작하면서 고무와 같은 말랑말랑한 상태가 됩니다.

마지막 단계는 가마 옆에 난 창구멍으로 얇은 나무를 넣어 순간적인 고열로 옹기에 바른 잿물을 녹이는 창불로, 보통 하루 안에 끝납니다. 창불은 가마 내 온도가 약 1100℃ 정도 됐을 때 준비하죠. 창불을 과하게 때서 가마 안의 온도가 너무 높아지면 옹기가 열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려요. 반면 온도가 너무 낮으면 잿물이 녹지 않기 때문에 옹기장이의 판단력이 매우 중요하죠.

이렇게 약 2주간 가마 속에서 인고의 시간을 견딘 옹기는 급격한 냉각으로 인한 파손을 막기 위해 가마의 불이 꺼지고 약 5일 후에 꺼내요. 한 번 옹기 가마에 불을 때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기 때문에 밤낮으로 불과 옹기의 변화를 살펴야 해요. 하나의 옹기가 탄생하기까지 이렇게 많은 손길이 필요하답니다.

청자나 백자처럼 옹기에도 다양한 의미를 담은 문양을 사용했다. 물고기는 다산을 향한 바람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청자나 백자처럼 옹기에도 다양한 의미를 담은 문양을 사용했다. 물고기는 다산을 향한 바람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도자기 표면에 여러 무늬를 새기고 그 속에 같은 모양의 금·은·보석·뼈·자개 등을 박아 넣는 상감 기법을 이용한 상감청자, 흰 바탕에 푸른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청화백자 등은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설명할 때 많이 인용되는데요. 옹기에도 풀꽃문·구름문·동물문·글자문·도형문 등 다양한 문양이 사용됐어요. "각별한 의미가 담긴 옹기 문양도 있습니다. 도깨비 얼굴 문양은 각종 재앙이 집에 못 들어오도록 도깨비가 지켜주길 바라는 바람이, 물고기 문양은 알을 많이 낳는 물고기처럼 건강한 아이를 여러 명 낳기를 바라는 바람이 담겼죠."

가마솥에서 한 밥을 덜어서 방 안에 보관해 따뜻함을 유지한 일제강점기 밥통.

가마솥에서 한 밥을 덜어서 방 안에 보관해 따뜻함을 유지한 일제강점기 밥통.

손으로 그리는 방식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옹기에 무늬를 남길 수 있습니다. 전시실에는 나뭇잎 문양이 돋보이는 옹기가 있었어요. 유약을 바르기 전 옹기에 나뭇잎을 붙이면 그 부분만 제외하고 유약이 묻겠죠. 그리고 가마에 구우면 유약으로 인해 반들반들 빛나는 표면에 질그릇의 질감과 가까운 나뭇잎 형태의 무늬가 생깁니다. 또 태극기 모양의 문양이 있는 옹기도 있었는데요. 이 해설사는 "흙으로 띠를 만들어서 태극기 모양으로 옹기 표면에 붙인 뒤 유약을 바르고 구운 것"이라며 "일제강점기 독립군자금을 모았던 항아리"라고 설명했어요.

'발효 식품 저장소' 옹기의 원리  

옹기의 역사와 종류, 제작 과정까지 살펴본 소중 학생기자단은 울산옹기박물관 옆 발효아카데미관으로 자리를 옮겨 김미홍 주무관과 함께 발효를 가능하게 하는 옹기의 원리를 살펴보고, 직접 옹기에 담을 고추장도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발효아카데미관은 전통 옹기와 함께 맥을 이어온 우리 민족 고유의 발효·숙성·저장 문화를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에요.

외고산 옹기마을 발효 아카데미에서 옹기에 보관할 고추장을 직접 만들어 본 서연우 학생기자.

외고산 옹기마을 발효 아카데미에서 옹기에 보관할 고추장을 직접 만들어 본 서연우 학생기자.

김 주무관 앞에는 한 달간 숙성한 고추장이 담긴 옹기가 있었는데요. 민솔 학생기자가 "옹기에는 어떤 음식을 담는 게 좋나요"라고 물었어요. "갓 담근 고추장·간장 등 발효해야 하는 음식을 담는 게 좋아요. 반면 이미 조리가 됐거나 공기에 닿으면 안 되는 음식은 옹기에 넣지 않는 게 좋아요." 옹기 기벽에는 공기는 통과하지만, 물은 통과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구멍(미세 기공)이 있는데, 이 구멍을 통해 옹기 안팎 공기가 순환하면서 발효에 필요한 곰팡이·세균·효모가 살기 좋은 환경이 되고, 안에 든 음식이 천천히 잘 익습니다. 반면 공기가 통하기 때문에 공기에 닿으면 안 되는 음식은 쉽게 상하겠죠.

꿀·조청·식혜·물엿 등을 보관한 조선 후기 삼겹 오가리.

꿀·조청·식혜·물엿 등을 보관한 조선 후기 삼겹 오가리.

옹기에는 장류뿐 아니라 김치도 보관하곤 했는데요. 김치가 익으면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미세 기공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내부 이산화탄소가 유산균이 선호하는 수준으로 유지되기 때문이죠. 그야말로 '원조 김치냉장고'였네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고추장을 직접 만들어 한 달 정도 옹기에서 발효된 고추장과 비교해 보기로 했어요. 재료는 고춧가루 50g, 보리·쌀가루 17g, 소금 12g, 메줏가루 17g, 조청 100g, 매실청 8g, 간장 18g, 물 90g입니다. 먼저 물에 소금을 넣고 완전히 녹을 때까지 저은 뒤 고춧가루·보리가루·쌀가루·메줏가루를 넣고 다시 잘 섞어줘요. 마지막으로 조청·간장·매실청까지 넣은 뒤 잘 비벼주면 고추장 완성. 재래식 고추장은 짚에 불을 붙여 소독한 옹기에 담아 낮에는 햇볕을 받게 하고, 밤에는 뚜껑을 덮어 숙성시켰어요.

오은채(왼쪽) 학생모델과 김민솔 학생기자가 직접 고추장을 만들어 보고, 한 달 동안 발효된 고추장과 비교했다.

오은채(왼쪽) 학생모델과 김민솔 학생기자가 직접 고추장을 만들어 보고, 한 달 동안 발효된 고추장과 비교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갓 만든 고추장과 한 달 숙성된 고추장의 색을 비교해 봤죠. 맑은 붉은빛이 도는 갓 만든 고추장에 비해 숙성된 고추장은 갈색이 도는 진한 붉은색이었어요. 옹기 안에서 발효됐기 때문인데요. 발효 과정을 거치면 탄수화물의 분해로 생긴 단맛, 콩단백인 메줏가루에 함유된 아미노산의 감칠맛, 고추의 매운맛, 소금의 짠맛이 조화를 이룬 맛있는 고추장이 되죠.

한국인의 밥상에 빠질 수 없는 각종 장류와 김치·젓갈을 담는 독부터 불을 때는 화로, 망자의 관, 제사 때 쓰는 제기까지 다양한 옹기를 살펴봤는데요. 우리 생활 전반에 쓰이던 옹기가 장인의 노고와 정성을 가득 담아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알게 됐죠. 또한 음식에 천천히 맛을 깃들게 하는 옹기에 숨은 비밀도 살펴봤고요.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옹기는 흙과 잿물 등 자연에서 그대로 가져온 재료를 이용하기 때문에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도구이기도 하답니다.

옛날 부엌의 내부를 재현한 모습. 물을 담는 독부터 각종 음식을 담는 그릇들까지 다양한 형태의 옹기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에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옛날 부엌의 내부를 재현한 모습. 물을 담는 독부터 각종 음식을 담는 그릇들까지 다양한 형태의 옹기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에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학생기자단 후기

이번 취재지는 울산광역시 외고산 옹기마을에 있는 울산옹기박물관이었어요. 사실 저는 옹기 하면 항아리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옛날 우리 조상들은 옹기를 참 많이 사용했다고 해요. 음식을 담을 때, 보관할 때, 그리고 사람이 하늘나라에 갔을 때 관으로도 사용했다는 게 신기했죠. 옹기는 우리 조상들의 정성 어린 마음과 손재주가 그대로 전승되어 만들어진 그릇이며 김치·간장·된장 등 우리 발효식품을 더욱 맛나게 보관하는 '숨 쉬는 그릇'이기도 합니다. 이런 옹기가 요즘에는 다른 가볍고 다양한 디자인의 그릇이 개발되면서 사용하지 않게 됐다고 하셔서 서운한 마음이 들었고, 옹기가 더 사랑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발효아카데미에서 옹기에 담을 고추장 만들기 체험도 했는데요. 취재 후 제가 만든 고추장을 가져와서 민솔이표 떡볶이에 도전해 보려고 해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이 살아있는 옹기를 옹기 장인들의 삶터와 일터가 어우러진 울산의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만나보세요. 저도 맑은 날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김민솔(서울 명지초 5) 학생기자

저는 지난해에 주로 활동한 12기 학생기자인데 오랜만에 취재에 참여할 수 있어 더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울산옹기박물관에 갔어요. 옛날에는 옹기가 생활에 두루 쓰였는데 요즘은 많은 친구가 옹기가 무엇인지조차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아쉬웠어요. 그래서 소중 친구들에게 울산옹기박물관 관람을 추천합니다. 현재 옹기는 예전처럼 우리 생활 곳곳에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다양한 종류의 옹기를 볼 기회가 많이 없잖아요. 울산옹기박물관에서는 여러 종류의 옹기는 물론, 지역별 옹기와 옹기 제작 과정에 대해서 알 수 있어서 여러분의 옹기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줄 수 있는 장소예요. 옹기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역사임을 알고 기억해 주세요.

서연우(서울 월계초 6) 학생기자

평소에는 옹기가 그냥 흙으로 만든 그릇, 고추장·된장 등을 넣는 그릇인 줄 알았는데 울산옹기박물관을 취재하며 옹기는 과학의 원리가 숨어있는 신기한 그릇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또 옹기를 만드는 과정, 옹기를 굽는 가마 등을 보고, 현재 옹기의 쓰임새와 옹기가 '숨을 쉬는 그릇'인 이유도 알 수 있어 좋았어요. 저는 처음 울산옹기박물관에 들어갈 때 보았던 커다란 옹기가 매우 인상 깊었어요. 또 고추장 만들기 체험을 하며 처음에는 그냥 물과 여러 재료였던 게 점점 제가 알던 고추장으로 변하는 것도 흥미로웠죠. 다행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맵지 않아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울산이라 약간 멀기는 하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가족과 함께 방문하여 다른 여러 체험도 해보고, 근처 다른 곳도 더 자세히 보고 싶습니다.

오은채(서울 가동초 5) 학생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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