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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수신료 분리징수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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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논란이던 TV(KBS·EBS) 수신료 분리징수가 드디어 시행됐다. 1994년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합산하는 통합징수제가 시행된 지 30년 만이다. 역대 정부가 만지작거리던 것을 윤석열 정부가 밀어붙였다. 정부는 “국민이 수신료 징수 여부와 금액을 명확히 알게 됐으며, TV 없는 집이 수신료를 내지 않을 권리가 강화됐다”고 밝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민이 세금처럼 내는 돈으로 연간 수신료가 6900억원씩 징수되고, 1000억원 이상이 1000명이 넘는 무보직 상태 직원에게 높은 봉급으로 지급되고 있다”며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방만한 운영”이라고 지적했다. 야당과 KBS는 반발했다. KBS는 헌법소원을 냈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통합 징수를 반대했던 민주당은 통합 징수를 못 박은 방송법 개정안을 내놨다.

속전속결이다 보니 현장에서는 당분간 혼란이 예상된다. 분리 납부 시스템은 정비 전이다. 아파트 단지는 한전과 종합 계약을 맺고 있어 세대별 분리 납부가 훨씬 복잡하다. 분리 징수로 수신료 수익이 줄면 월 2500원 수신료 중 2.8%(월 70원)를 받던 EBS는 타격이 크다.

KBS 반발하지만 여론은 미지근
진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려면
공정성으로 수신료 가치 입증해야

통합징수제는 1980년대 ‘시청료 거부 운동’의 여파로 수신료 수입이 줄어들자 홍두표 사장 시절의 KBS가 내놓은 묘안이었다. 안정적 재원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시청자의 선택권을 훼손하고, 국민의 98%가 케이블·IPTV 등 유료방송을 통해 TV를 보는 상황에서 ‘이중과세’란 비판이 잇따랐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수신료 징수의 정당성이 약화하는 세계적 추세도 있다. 공영방송 수신료는 시청 여부와 상관없이 TV 수상기에 부과되는데, 이제는 TV 없이 TV를 보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많은 공영방송이 수신료 인하 혹은 폐지 움직임에 처해 있다.

KBS는 국가기간방송으로서 재난, 지역, 장애인 방송 등을 공익성의 증거로 내세우고 있으나 막상 존재감을 보여준 적은 없다. 경영 혁신을 약속했지만 큰 덩치는 여전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편파성. 독립된 재원으로 독립성·공공성을 추구하는 게 공영방송인데, 우리 공영방송들은 “정치권력과 유착한 편파적인 불공정 보도가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고착화”(황근 선문대 교수)된 문제가 있다. 세계 8대 공영방송사 사장들의 협의체인 GTF가 이번에 낸 성명에는 “허위 정보와 여론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시기에 많은 공영방송사가 큰 위험에 직면해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민주주의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인 공영방송을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맞는 말인데, 여론 양극화를 부추긴 데 KBS의 책임이 없지 않다는 게 문제다. 모든 미디어가 정치적 입장을 가질 수 있지만, 적어도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은 특정 정파의 전유물일 수 없다. 특히 여론 양극화가 심한 사회일수록 중간지대를 만드는 것이 공영방송의 역할, 존재 이유 아닌가. KBS가 모범으로 삼는 영국 BBC는 진보 성향이지만 어떤 정부와도 각을 세운다.

물론 공영방송의 근간을 흔들면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패싱한 정부 태도는 문제다. 그러나 그런 정부의 무리수에도 별다른 국민적 저항이 일지 않는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KBS는 현 상황을 정치 쟁점화하지만, 홍성철 경기대 교수의 말대로 “수신료 분리징수를 반기는 것은 월 2500원이 아깝기 때문이나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한마디로 공영방송 KBS에 대한 실망감”이다. KBS는 이걸 직시해야 한다.

역대 모든 정권이 공영방송을 손에 넣으려 해 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특정 정파의 대변인을 자처하며 중립성, 공정성을 저버린 KBS의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슬로건으로 내세우는 ‘국민의 방송’ ‘수신료의 가치’를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는 한 KBS가 있어야 할 이유를 국민은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수신료 분리징수가 진짜 KBS 개혁의 출발점이 돼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