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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권의 미래를 묻다

무질서에도 법칙이 있다…사랑은 식고, 청년은 늙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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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박권 고등과학원 교수

박권 고등과학원 교수

또 엔트로피가 늘었군….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무엇이 망가지거나 어떤 일이 어그러질 때면 이론 물리학자인 필자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다.

엔트로피(Entropy)란 무엇일까. 엔트로피는 무질서도를 재는 양이다. 놀랍게도, 무질서에는 아무런 법칙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 정확한 법칙이 있다. 바로 열역학 제2법칙이다. 이에 따르면 외부로부터 고립된 시스템에서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는 결코 줄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시간이 흐르면 깨끗한 방은 어지럽혀지고, 새로 산 자동차는 고장 나고, 뜨거운 사랑은 식고, 젊은 청년은 늙는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망가지고 결국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으로 산산이 흩어진다. 어쩔 수 없다지만 무척 서글프다. 우리는 무질서를 막을 수 있을까. 다시 말해서, 우리는 열역학 제2법칙을 극복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전자기학을 완성한 업적으로 유명한 19세기 영국 물리학자 맥스웰이다.

무질서도를 재는 양, 엔트로피
미지근한 물, 물분자 섞인 때문
e메일 지워도 엔트로피는 증가
무슨 짓을 하든 무질서는 늘어

맥스웰의 악마

방치된 집의 깨진 유리창처럼,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망가지고 결국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으로 산산이 흩어진다. [사진 픽사보이]

방치된 집의 깨진 유리창처럼,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망가지고 결국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으로 산산이 흩어진다. [사진 픽사보이]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섞으면 미지근한 물이 된다. 당연한 말 같지만, 미지근한 물은 저절로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로 갈라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물의 온도는 물 분자가 가지는 평균 운동에너지에 비례한다. 물이 미지근하게 된다는 것은 물 분자의 평균 운동에너지가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에서 그것이 가졌던 운동에너지 사이의 적절한 중간값으로 변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에너지가 변한 것이 아니라 빠르게 움직이는 물 분자와 느리게 움직이는 물 분자가 모두 골고루 섞여 버린 결과다. 다시 말해서, 무질서도가 증가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열역학 제2법칙이다.

맥스웰은 열역학 제2법칙을 극복하기 위해 사고 실험을 하나 고안했다. 어떤 균일한 온도의 물을 담은 수조의 중간에 칸막이를 치고 작은 문을 단다고 상상해 보자. 이 작은 문은 아주 작아서 물 분자를 하나씩 통과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 작은 문은 계산 능력이 매우 뛰어난 지적 생명체, 이른바 맥스웰의 악마가 열고 닫는다. 참고로, 작은 문을 열고 닫는 데에는 마찰이 없어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는다.

이제 맥스웰의 악마는 왼쪽 칸에서 평균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 분자가 작은 문으로 다가오면 재빠르게 작은 문을 열어 오른쪽 칸으로 보낼 수 있다. 반대로 맥스웰의 악마는 오른쪽 칸에서 평균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물 분자가 작은 문으로 다가오면 재빠르게 문을 열어 왼쪽 칸으로 보낼 수 있다. 그 외의 경우에 맥스웰의 악마는 문을 굳게 닫고 있다. 이러한 작업을 계속하면 결국 평균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 분자는 모두 오른쪽 칸, 느리게 움직이는 물 분자는 모두 왼쪽 칸으로 옮길 수 있다. 다시 말해, 오른쪽 칸의 물은 뜨거워지고 왼쪽 칸의 물은 차가워진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열역학 제2법칙이 극복된 것이다. 만약 이것이 정말 가능하다면 왼쪽 칸과 오른쪽 칸 사이에 생기는 물의 온도 차이를 이용해 엔진을 돌릴 수 있다. 즉, 맥스웰의 악마는 지적 능력만으로 엔진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말이 되는가.

페르미와 함께 원자로를 발명한 물리학자 질라드는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는 수조의 물과 맥스웰의 악마를 포함한 전체 시스템을 고려하면 열역학 제2법칙이 위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맥스웰의 악마는 물 분자의 속도를 측정하고 그것이 평균보다 빠른지 느린지 계산해야 한다. 이러한 측정과 계산은 필연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며 결국 맥스웰의 악마는 수조 속 갈라진 물을 통해 줄어든 엔트로피보다 더 많은 양의 엔트로피를 생성하게 된다. 그럴싸하다. 그런데 측정과 계산, 둘 중 정확히 어느 부분에서 엔트로피가 늘어나는 것일까.

1961년 당시 IBM에서 일하고 있던 물리학자 란다우어는 질라드의 생각을 꼼꼼히 분석했다. 이후 ‘란다우어의 원리’로 널리 알려지게 되는 그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측정은 에너지 소모가 거의 없는 아주 정밀한 장치를 통해 수행될 수 있다. 문제는 계산이다. 맥스웰의 악마는 입자의 속도를 계산한 후 그 정보를 이용해 문을 열지 닫을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맥스웰의 악마는 머릿속이든 메모장이든 어떤 저장장치에 그 정보를 기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새로운 계산을 하려면 이전 정보는 언젠가 지워야 한다. 정보를 지우는 것은 되돌이킬 수 없는, 즉 불가역적 과정이다. 이때 엔트로피가 늘어난다.

디지털 탄소 발자국

최근에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안되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디지털 탄소 발자국을 줄이려면 쓸데없는 e메일을 깨끗이 지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일리가 없지 않지만 단지 부분적으로만 맞다.

란다우어의 원리에 따라 e메일에 담긴 정보를 지우면 엔트로피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곰곰이 잘 생각해 보면, e메일은 한 번에 깨끗이 지워지지 않는다. 일단 e메일은 ‘휴지통’에 들어간다. 그것에 담긴 정보는 다른 정보로 덮어 쓰여질 뿐, 원한다면 어느 정도 다시 복원될 수 있다. 결국 e메일을 지우는 것은 완벽한 불가역적 과정이 아니다. 이 경우 엔트로피는 최소한으로만 늘어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엔트로피는 결국 늘어나게 마련이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엔트로피를 늘리면서 매 순간, 매일 쏟아지고 있는 e메일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박권 고등과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