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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현예의 톡톡일본

"종이카드 한장에 64억 대박"…日 열광한 '포케카' 뭐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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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우리 돈 약 300원꼴인 종이 카드 한 장. 이 카드가 일본에선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 있다. 이 카드를 사기 위해 새벽에 줄을 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포켓몬 카드, 이른바 ‘포케카’다. 포케카 열풍이 불며 카드 절도 사건은 물론이고 위조 사건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낱 카드에 불과한데 귀한 대접을 받는 세태를 놓고 최근 일본에선 ‘포케카 버블 시대’라는 조어까지 나온다. 5장들이 한 팩에 180엔(약 1600원) 하는 이 카드를 놓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포켓몬 카드에 몰리는 日 어른들 

지난 13일 낮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 있는 포켓몬 카드 거래 매장. 매일 달라지는 포켓몬 카드 시세를 손님들이 확인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지난 13일 낮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 있는 포켓몬 카드 거래 매장. 매일 달라지는 포켓몬 카드 시세를 손님들이 확인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이젠 사업을 접어야 할 것 같아요.”
지난달 23일 도쿄 요쓰야(四谷) 인근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다카키 요스케(高木陽介·43) 부장은 한숨을 쉬었다. 그가 근무하는 회사 패럿비크에서 도쿄 한복판의 게임·캐릭터 성지인 아키하바라(秋葉原)에 포켓몬 카드 거래가 가능한 가게를 연 건 지난 1월. “잘만 하면 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였다. 직원들과 카드 500여만 장을 모아 가게를 연 뒤엔 순풍을 탄 듯했다. 하지만 불과 석 달 만인 지난 4월, 가게에 도둑이 들어 희귀 카드 115만엔(약 1000만원) 어치를 쓸어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고, 최근 범인이 잡혔다. 다시 영업을 재개할 법도 하지만 매대는 이미 치워버렸다. 그는 “카드 자체를 손에 넣는 일이 어려운 데다, 신규 가게일수록 현금 동원력이 있어야 희귀 카드를 확보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시작은 아동용, 이젠 재테크 수단

지난 13일 일본 도쿄역에 있는 포켓몬스토어에 전시된 포켓몬 카드. 한 사람당 살 수 있는 수량을 제한해 판매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지난 13일 일본 도쿄역에 있는 포켓몬스토어에 전시된 포켓몬 카드. 한 사람당 살 수 있는 수량을 제한해 판매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포켓몬 카드는 게임회사 닌텐도가 1996년 첫 발매한 게임 포켓몬스터에서 시작했다. 초등학생을 겨냥해 만든 게임이었지만 피카추, 잠만보 등 다양한 캐릭터가 널리 사랑받으면서 만화, 종이 카드 게임으로도 만들어졌다.

전 세계에 팔려나간 포켓몬 카드는 약 529억장. 지금도 계속 신규 카드가 발매되고 있는데도 손에 넣는 일은 간단치 않다. 다카키 부장은 “어른들이 사들이기 시작해 정작 어린이들은 아예 사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제품이 편의점에서 판매가 되다 보니 카드 발매일에 편의점 트럭을 운전해 따라가 차량이 멈춰 서면 편의점에 들어가 기다렸다가 사거나, 6시간씩 줄을 서 사는 게 다반사”라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그래픽=신재민 기자

다카키 부장은 “카드를 사두면 돈이 된다는 인식까지 퍼지며 수집가도 늘고 있다”며 “비트코인처럼 매일 카드 가격이 변동하는데 최근 몇년간 놀랄 정도로 오름세를 보여 ‘포케카 버블 시대’란 비판까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미국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이베이에서 포켓몬 카드 한장이 7억엔(약 64억원)에 거래된 사례를 보도하기도 했다. 일본 중고 거래 사이트인 메루카리에선 흔한 카드는 한 장에 몇백원에 불과하지만 희귀한 카드일수록 값이 뛰어 수백, 수천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경우도 있다.

포케카가 재테크 수단으로도 인기를 얻으면서 시장도 급성장 중이다. 일본완구협회에 따르면 포켓몬 카드 등 일본 카드 시장은 지난 2021년 1776억엔(약 1조6200억원)에서 지난해 2348억엔(약 2조1400억원) 규모로 132% 불어났다.

지난 13일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 있는 포켓몬 등 카드 거래 매장. 이곳을 찾는 손님 대부분은 성인이다. 김현예 특파원

지난 13일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 있는 포켓몬 등 카드 거래 매장. 이곳을 찾는 손님 대부분은 성인이다. 김현예 특파원

“고무줄로 포켓몬 카드 묶다니”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 야마나시(山梨)현에 있는 한 카드 가게에서 희귀 카드를 훔친 20대 범인이 잡혔는데, 경찰이 이 사실을 알리며 압수물인 카드를 공개한 게 화근이 됐다. 경찰이 한 장에 100만원에 육박하는 카드를 고무줄로 꽁꽁 묶어둔 게 보도되자, “상품 가치를 떨어뜨렸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지난 3일엔 토야마(富山)현에서 30대 회사원이 포켓몬 카드를 위조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피카추 카드 등 5장을 28만엔에 팔았는데, ‘카드 반짝임이 다르다’는 이유로 구매자가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했다가 가짜로 판명됐다. 결국 경찰에 넘겨졌다.

포켓몬 카드 열풍에 대해 이영훈 한국콘텐츠진흥원 일본센터장은 “시스템의 힘”이라고 분석했다. “게임기용 게임으로 시작한 포켓몬이 만화, 카드 게임, 완구, 의류 등 다양한 사업으로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특유의 미디어 믹스(media mix) 시스템 덕”이라는 설명이다. 일본은 한 콘텐트를 만들 때 방송 출판 등 다양한 분야의 회사가 참여하는 ‘제작위원회’를 두는데, 이 시스템을 통해 만화나 영화, 카드·의류·완구 등 파생 시장에서의 상품 로드맵을 미리 만든다는 것이다.

이영훈 한국콘텐츠진흥원 일본비즈니스센터장.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이영훈 한국콘텐츠진흥원 일본비즈니스센터장. 사진 한국콘텐츠진흥원

미키마우스 총수익 누른 포켓몬 

이 센터장은 “이런 일본의 강점으로 인해 세계 캐릭터 시장에서도 포켓몬이 디즈니를 누를 정도로 수익이 높다”고 분석했다. 올해 3월 기준 타이틀맥스 집계에 따르면 포켓몬이 게임 출시 후 완구, 카드 등 다양한 사업에서 거둔 누적 총수익은 921억 달러(약 117조원). 1928년 탄생한 디즈니의 미키마우스(706억 달러·4위)보다도 높은 세계 1위다. 일본 캐릭터의 성공은 포켓몬 만이 아니다. 1974년 나온 헬로키티(800억 달러·2위), 1973년 선보인 앙팡맨(603억 달러·6위) 등이 세계 10위권에 들어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그래픽=신재민 기자

이 센터장은 “게임, K팝,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세계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지만, 그에 따른 2차, 3차 지식재산(IP) 사업으로 매출을 못 올리면서 우리나라도 최근 이 분야의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일본처럼 시장을 키워나가기 위해 우리도 파생 시장을 넓히는 시스템을 꾸준히 개발하고 관련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