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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해마다 반복되는 비 피해 참사, 후진국형 공공재난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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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 발주 공사장 둑 허물어 오송 지하차도 침수

시청·구청은 호우경보 속에 교통 통제 손 놓아

관청의 관행·형식적 호우 대응 전면 쇄신해야

공공기관 입사 시험 보러 가는 처남을 격려하려고 역으로 가는 버스에 함께 오른 30세 초등학교 교사, 세종시에서 오창읍으로 출근하던 47세 치과의사, 친구들과의 여행을 위해 오송역으로 향하던 24세 작업치료사. 어제 충북 청주시 오송읍 지하차도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들이다. 초등학교 교사는 두 달 전에 결혼한 새신랑이었다. 치과의사는 노모에게 이틀에 한 번꼴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은 효자이자 쌍둥이를 포함한 세 아이의 아빠다. 외동딸인 작업치료사는 거동이 어려운 노인 환자를 미소로 대하던 성실한 젊은이였다.

우리들의 착한 이웃을 한순간에 저세상으로 데려간 것은 삽시간에 불어난 지하차도 물이었다. 물은 인근의 미호강(지난해 미호천에서 미호강으로 명칭 변경)에서 넘쳐 왔다. 둑이 제대로 서 있었다면 강물이 거기까지 올 수는 없었다. 강물이 범람 수위까지 차지는 않았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기존의 미호천교 옆에 추가로 다리를 놓는 공사를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제방 일부를 허물었다. 교각 설치 공사 때문이었다. 최근에 장마철이 다가오자 부랴부랴 시공사는 대충 흙으로 둑을 만들어 놓았고, 그제 새벽 집중호우로 미호강 수위가 올라가자 포클레인으로 흙을 더 쌓는 작업을 벌였다. 결국 그곳이 터졌다. 물이 오송 지하차도를 꽉 채우는 데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안에 차량 15대가 갇혔고, 어제 저녁까지 9명의 사망이 확인됐다. 희생자가 더 나올 가능성이 있다.

청주시나 관할 구청(흥덕구청)이 지하차도 통행을 제한했다면 끔찍한 불행을 막을 수 있었다. 그날 새벽 이 지역에는 호우경보가 발령됐다. 금강홍수통제관제소는 지하차도 침수 두 시간 전에 청주시와 흥덕구청 등에 교통 통제와 주민 대피를 권했다고 밝혔다. 연락받은 구청 직원은 담당 과에 전달했다고, 시청 측은 도청 소관 업무로 봤다고 주장했다.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 호우로 하천이 위험 수위로 급속히 상승하는 상황에서 지하차도에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것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장마와 태풍이 잦은 여름에 제방이 사실상 뚫려 있었다. 관할 자치단체가 이를 몰랐어도 문제고, 알고도 방치했다면 더 큰 문제다.

물론 비가 많이 내렸다. 그렇다고 막지 못할 천재지변은 아니었다. 과욕이 부른 민간 영역에서의 인재도 아니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관이 주도한 공사에서의 안전 무시, 지자체의 안일함, 정부의 재난 관리 감독 부실이 만든 공공 재난이다. 지난 수일간의 집중호우에 40명 가까이 숨지고 9명이 실종됐다. 경북의 산사태에 많은 인명 피해가 났다. 예천의 피해 지역은 지자체의 사전 점검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 각 지역의 산사태 예방 점검이 형식적 연례행사였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기후변화의 영향 때문인지 기록적 집중호우가 매년 반복된다. 피해 양상도 비슷하다. 알고도 당하는 후진국형 재난이다. 관행적 대응에서 탈피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호우 대책 쇄신이 필요하다. 늘 하던 대로 땜질만 대충 하면 선량한 시민들이 물난리 속에서 허무하게 희생되는 여름철 비극을 끊어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