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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무슨 뜻?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어릴 적 배가 아파 약국에 갔을 때 일이다. 무심코 “배 아픈 약 주세요”라고 했더니 약사님이 “배가 아프게 하는 약을 달라고?”라고 반문하셨다. 내가 당황해하니까 웃으면서 “배 아픈 데 먹는 약 주세요”라고 해야 한다고 알려 주셨다.  아마도 빨리 얘기하다 보니 중요한 요소를 빠뜨리고 “배 아픈 (데 먹는) 약 주세요”라고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다루기 위해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나중에 아파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 두는 서류를 가리킨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간단하게 얘기하면 연명 치료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미리 기록하는 문서다. 그렇다면 ‘거부’를 넣어 ‘사전연명의료거부의향서’라고 해야 의미가 통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오히려 연명치료를 받겠다는 의향서가 돼 말이 되지 않는다.

‘사전연명의료거부의향서’라고 하면 너무 길어서 ‘거부’를 생략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거부’는 의미의 핵심 부분이어서 생략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거부’를 빼면 의미가 반대가 된다. 연명치료를 해달라는 얘기가 된다.

‘사전연명의료거부의향서’가 너무 길어 줄여야 한다면 ‘사전’을 생략해 ‘연명의료거부의향서’라고 하든가 ‘연명거부의향서’라고 하는 등 부수적 요소를 생략해야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중요한 공공언어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도록 이름을 바꾸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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