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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좌판 열고도 네이버는 뒷짐…여당 "포털에 책임 묻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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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임전국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임전국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 지난 2월 A씨는 온라인쇼핑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브랜드 향수를 시가보다 2만원 싸게 샀다. 하지만 판매자는 배송을 차일피일 미뤘고 A씨는 한달 만에야 상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정품이 아닌 가품(假品)이었다. A씨는 “판매자 평점이 4.9점(5점 만점)이었고, 네이버 후기도 괜찮았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셈”이라고 했다.

#. B씨는 최근 스마트스토어에서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스포츠 브랜드 운동화를 30여만원에 구입했다. 하지만 불량품이어서 환불했고, 다른 판매자에게 같은 상품을 구입했다. 이번에는 상태가 조악한 중국산 ‘짝퉁’이었다. B씨는 판매자를 네이버에 신고했다.

이처럼 온라인 쇼핑에서 짝퉁과 불량품이 속출하자 여권이 정비작업에 나선다. 가짜상품의 경우 포털에도 책임을 물리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국민의힘 미디어정책조정특위위원장인 윤두현 의원은 ‘포털 쇼핑 연대책임법’(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13일 대표 발의한다. 판매자에만 부과하는 손해배상 책임을 포털에도 지우는 ‘연대 책임’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현재 포털이 운영하는 쇼핑몰은 ‘판매자-포털-소비자’의 3중 구조인데, 판매자의 가짜상품 판매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해도 포털은 책임지지 않는 구조다.

윤 의원은 “네이버 등 포털은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중개업자로서 제품 하자에 대한 법적책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며 “소비자 편익 향상을 위해 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①가짜상품 실태 어떻길래

여권이 온라인쇼핑몰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포털이 소비자 보호에 소홀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윤 의원실이 특허청에서 받은 ‘온라인쇼핑몰 가짜상품 적발현황’에 따르면 2019~2022년 가장 적발개수가 많은 쇼핑몰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18만5024개)였다. 쿠팡(12만3130개), 위메프(6만6376개)보다 월등했다.

국내 온라인쇼핑몰 가짜상품 적발 현황. 자료=특허청

국내 온라인쇼핑몰 가짜상품 적발 현황. 자료=특허청

지난 3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거짓 후기 2700여건을 올린 혐의(표시·광고 공정화 법률 위반)로 판매자인 건강기능식품 기업에 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1억4000만원을 부과했다. 네이버는 제재 대상에서 빠졌다. 네이버 측은 “가짜상품이 많아지면 소비자 외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정 노력 중”이라고만 했다. 하지만 여권 관계자는 “법적 책임을 부여하지 않으면 결국 소비자 편익은 뒷전으로 밀릴 것”이라고 했다.

②돈을 벌면서 책임은 회피?

네이버는 온라인쇼핑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다. 지난 5월 네이버가 발표한 올해 1분기(1~3월) 매출 현황을 보면, 온라인쇼핑이 포함된 ‘커머스’ 부문 매출액은 6059억원으로 전체 매출액 2조2804억원 중 26.6%를 차지했다. ‘검색광고’(37.4%) 부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비중이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국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장에서 네이버는 쿠팡과 1·2위를 다투고 있다. 교보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쿠팡(24.5%), 네이버(23.3%), SSG닷컴·지마켓(11.5%), 11번가(7%), 카카오(5%), 위메프(3.9%), 티몬(2.8%) 순이었다. 포털업계 관계자는 “안정적인 영업유지를 위해서는 ‘점유율 30%’ 달성이 필요한데 네이버가 이에 사활을 거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네이버는 경쟁업체인 쿠팡보다 판매 수수료를 낮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판매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네이버의 판매 수수료는 1.98~3.63%로 쿠팡(4~10.8%)보다 낮은 수준이다. 여권 관계자는 “판매 수수료가 타사보다 적다 보니 입점에 부담이 없는 편이어서 가짜상품을 유통하려는 판매자가 많은 경향이 있다”고 했다.

네이버는 가짜상품 판매를 구제하기 위해 ‘분쟁조정센터’ 등 장치를 운영하고 있지만, 판매자가 약 55만명(지난해 12월 기준) 수준이어서 관리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온라인쇼핑몰마다 수십명의 모니터링 요원이 수십만명의 판매자를 관리하는 상황이라 사실상 역부족”이라고 했다.

③혼란 주는 댓글형 광고

네이버는 지난 4월부터 광고와 쇼핑을 연계하고 있다. 취미나 특정 주제를 위해 이용자가 모인 카페에 ‘커뮤니케이션 애드’라는 새 광고방식을 도입하면서다.

명품 관련 네이버카페의 한 게시물에 달린 댓글형 광고(빨간 상자안). 네이버카페 캡처

명품 관련 네이버카페의 한 게시물에 달린 댓글형 광고(빨간 상자안). 네이버카페 캡처

자동차 관련 네이버카페에 올라온 광고성 게시글(빨간 상자 안). 네이버카페 캡처

자동차 관련 네이버카페에 올라온 광고성 게시글(빨간 상자 안). 네이버카페 캡처

문제는 해당 게시물·댓글이 일반 게시물인지, 광고인지 판별이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2일 오후 4시 회원수가 19만명인 자동차 관련 네이버 카페에 올라온 ‘상태 별로인 중고차 걸러내는 꼼수 알려드릴게요’라는 제목의 글을 클릭하면 중고차 거래 쇼핑몰로 연결된다. 회원수가 65만명인 명품 관련 네이버 카페에 올라온 ‘비싼 관리를 받는 느낌 대박~!’이라는 댓글을 누르면 피부 관리 쇼핑몰로 연결된다. 댓글을 가장한 낚시성 광고인 셈이다.

여권 관계자는 “‘광고’ 혹은 ‘AD’라는 작은 배너만 옆에 달려 있기 때문에 소비자는 혼동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네이버 측은 “소비자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선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플랫폼 책임 강화 한목소리지만 규제방식엔 업계-국회 딴 소리

카카오 남궁훈, 홍은택 각자대표(왼쪽부터)가 지난해 10월 1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카카오 아지트에서 열린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장애' 관련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카카오 남궁훈, 홍은택 각자대표(왼쪽부터)가 지난해 10월 1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카카오 아지트에서 열린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장애' 관련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네이버·카카오·쿠팡 등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 강화하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문제는 ‘자율 규제’를 주장하는 업계와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안’(일명 온플법) 등을 통해 ‘강제 규제’를 하려는 국회의 입장이 엇갈린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공정거래위원회는 온플법 제정 등을 통해 통제를 강화하려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뒤 민간 분야의 자율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름이 바뀌면서 정부 내부의 강제 규제 논의는 주춤한 상태다. 특히,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회의를 주재하면서 “기업인들의 투자 결정을 막는 결정적 규제, 즉 킬러 규제를 팍팍 걷어내라”고 지시하면서 온플법을 둘러싼 기류도 신중해지고 있다. 올해 초부터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율 개선을 위한 전문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는 공정위는 당초 이달 TF를 마무리하고, 온플법 등 규제법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킬러 규제’ 발언 이후 입장 정리가 순연되는 분위기다.

업계는 이 틈을 파고들고 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윤 대통령의 발언 이틀 뒤인 지난 6일 “우리나라 디지털 생태계를 죽일 수 있는 대표적 킬러 규제인 온플법이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회가 지난 10일 개최한 ‘온라인 플랫폼 규제 동향 국제 세미나’에 참석한 해외 석학들은 “구글과 아마존이 서로 다른 수익모델을 지닌 것처럼 플랫폼 사업자는 각각 비즈니스 모델이 다르다. 동일한 규제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크리스토퍼 유 미 펜실베니아대 교수)는 식의 주장을 폈다.

하지만 국회의 입장은 다르다. 지난해 10월 15일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 메신저는 물론 뱅크·페이의 기능까지 전면 중단되면서 택시기사와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걸 목격한 국회는 온플법 논의에 다시 고삐를 죄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대형포털의 무차별적인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독과점 시장구조가 먹통을 불렀다”며 온플법 제정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미 국회엔 총 18건의 온플법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국회 정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백혜련 의원 등 민주당 소속 의원의 법안이 대부분이고, 국민의힘에선 윤두현 의원 등도 같은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법안별로 차이가 있지만 ▶온라인플랫폼과 소상공인 간 표준계약서를 통한 거래조건 투명화 ▶플랫폼의 검색·배열순위 결정 원칙 공개 ▶부당한 가격제한 및 보복조치 금지 ▶법률 위반 시 판매업자에게 대한 배상책임 등이 주요 내용이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네이버 사옥 전경. 뉴스1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네이버 사옥 전경. 뉴스1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정책국장은 “플랫폼과 판매자 사이의 공정한 관계뿐만 아니라, 온라인플랫폼들의 독과점 문제에 대해서도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윤정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율규제 방식은 플랫폼 독과점을 규제하기에 역부족이며, 불공정 거래행위를 막기 위한 당사자 간 합의를 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온플법이 국회 문턱을 넘기 위해선 여권의 입장 정리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윤두현 의원은 “온플법이 킬러 규제라는 건 기업의 입장”이라며 “온플법은 공정한 경쟁을 막는 게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이 강행하고 있는 민주화유공자법으로 인해 관련 논의가 멈춰진 상태”라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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