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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산율 이때 급격히 떨어졌다…2015년 대체 무슨 일이 [인구의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그해 상반기엔 영화 ‘국제시장’, 하반기엔 ‘베테랑’이 각각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6월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유행했다. 11월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눈을 감았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2015년’은 대한민국이 본격적으로 ‘저출산 국가’로 접어든 해이기도 하다. 이때를 변곡점으로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져서다.

구체적으로 2000년대 들어 1.09명~1.30명을 오르락내리락하던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하는 평균 출생아 수)이 정점을 찍은 해가 2015년(출산율 1.24명)이다. 이후로 출산율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내리막을 탔다. 결국 지난해 0.78명까지 추락했다. 마찬가지로 2000년대 이후 43만~49만명대를 오르락내리락한 출생아 수가 2015년(43만8420명) 정점을 찍은 뒤 완연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4만9000명을 기록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7월 11일 ‘인구의 날’을 맞아 인구학계에선 “물이 99도까지 끓지 않다가 정확히 100도가 돼야 끓듯이 2015년은 저출산이 가속하는 ‘티핑 포인트(기간을 두고 쌓인 작은 변화가 큰 영향을 초래하는 상태)’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2030 청년층의 삶과 인식에 커다란 구조적 변화를 일으킨 2015년에 대한 연구가 저출산 문제 해결에 시사점을 준다”고 말했다. 2015년을 전후로 경제·사회·심리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부동산 폭등(경제)=문재인 정부 출범을 앞두고 아파트값 폭등의 전조가 나타난 때가 2015년이다. 2012년 이후 4억 원대였던 서울 아파트 매매 중위가격이 2015년 처음 5억 원대로 진입했다. 이후로 2017년 12월(6억2583만원)→2019년 1월(7억8619만원)→2020년 1월(8억3920만원)→2021년 7월(9억4000만원) 꾸준히 올랐다. 올해 5월 기준 8억4200만원으로 다소 떨어졌지만 10년 전의 두 배 수준이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가 주택금융연구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중위소득 가구가 중간가격의 주택을 살 때 대출 상환부담을 나타내는 ‘주택구매 부담지수’가 서울의 경우 2015년 1분기 83.7로 저점을 찍은 뒤 계속 상승세다. 지난해 3분기에는 214.6으로 최고점을 기록했다. 마 교수는 “청년이 결혼을 미루거나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경제적인 부담”이라며 “가장 큰 고충이 ‘내 집 마련’이란 점을 고려할 때 집값 부담을 낮추지 않고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수도권 집중(사회)=청년 인구가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이 가속한 변곡점도 2015년이다. 젊은 층이 20대에 대학,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들어가더라도(서울 순 유입), 30대에는 지방으로 돌아가는(서울 순 유출) 경향이 있었는데 그 흐름이 약해졌다.

구체적으로 2010년 이후 2만~3만명대를 오가던 20대 서울 순 유입이 2015년 2만9615명으로 저점을 찍은 뒤 가파르게 늘었다. 지난해엔 20대 서울 순 유입이 6만818명으로 불었다. 반면 1만1000~1만4000명대를 오가던 30대 서울 순 유출은 2015년 1만4435명으로 정점을 찍고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난해 30대의 서울 순 유출은 9059명이었다. 다시 말해 서울로 진입하는 20대는 늘었는데, 서울에서 나가는 30대는 줄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2030 청년층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서 경쟁하느라 생존 본능이 재생산(출산) 본능을 누르고 있다”며 “인구와 자원의 수도권 집중, 수도권을 가야만 성공했다고 여기는 획일화한 가치관이 초(超) 저출산으로 접어든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확산(심리)=결혼이나 자녀 양육보다 화려한 싱글 라이프에 대한 환상을 갖게 하는 창구가 SNS란 지적이 나온다. ‘끊임없는 비교’가 특징인 인스타그램·페이스북 사용자가 국내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점이 공교롭게도 2015년이다. 2012년 12월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인스타그램은 2015년 월 활동사용자(MAU) 500만명을 넘겼다. 이후로 2016년 600만, 2017년 1000만명을 돌파하며 급성장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SNS 이용률은 페이스북 35%, 인스타그램 31%다.

SNS가 저출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도 있다. 핀란드 헬싱키대 연구진은 지난해 펴낸 논문에서 “SNS 사용은 이용자를 결혼·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태도와 경쟁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노출시켜 출산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상해교통대 연구진도 같은 해 펴낸 논문에서 “SNS를 활용한 의사소통이 부정적인 사회 뉴스를 증폭시켜 출산 의도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2015년에서 역으로 해법 찾아야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장도 지난달 중앙일보 리셋코리아 좌담회에서 "SNS 이용률이 한국이 세계 2위다. 과다한 비교, 대면 소통 단절, 혼자 사는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정보로 인해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됐다"며 "청년 간담회를 하면 ‘SNS에는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뿐이라 불안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낙담하는 청년에게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5년이 저출산 추세를 가속한 변곡점이라면, 역으로 해법도 찾을 수 있다. 마강래·조영태 교수와 이상림 연구위원은 “청년의 집값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저렴하고 질 좋은 공공임대 주택을 확대하고, 지방 일자리를 살리고 인프라를 확대하는 식의 수도권 집중 완화 대책을 마련하고, (SNS에서 접하기 어려운) 결혼·출산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확산하는 캠페인을 진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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