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경외와 사랑이 숨쉬는 낙원의 기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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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고진하 시인·목사

고진하 시인·목사

오래된 한옥인 우리 집은 제비들의 여인숙. 해마다 찾아와 둥지를 틀고 여숙을 즐기다 가는 제비들은 정다운 순례자들. 명랑한 지저귐으로 적적한 시골 생활을 생기 차게 해주는 음유시인들이기도 하다. 요즘은 둥지 속에서 막 부화한 새끼들이 먹이를 물고 올 어미를 기다리며 노란 주둥이를 쩍쩍 벌리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둥지 밑에 싸놓은 제비 똥을 보며 문득 일어나는 궁금증. 알에서 깨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제비 새끼들이 어떻게 배변을 둥지 바깥으로 할 수 있었을까. 둥지의 위생을 지키는 배변의 방법은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제비의 DNA 속에 그런 놀라운 지혜가 들어 있었던 걸까. 정말 경이로운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제비 DNA에 있는 놀라운 지혜
만물의 신비 읊은 시인 휘트먼
인간은 신의 빛 깃든 ‘진흙등불’
회생 불능 상태에 빠진 지구별

삶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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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이란 시집을 쓴 월트 휘트먼도 우주만물의 경이로운 신비를 노래한 목소리의 거부로, 그는 작은 풀잎, 개미, 모래알 하나에서 우주를 보고, 지상의 만물 가운데 어느 하나 완전하지 않음이 없음을 찬미했다. 시인 휘트먼이 부른 노래를 들어보자.

‘풀잎 하나가/ 별들의 운행에 못지않다고 나는 믿네./ 개미 역시 똑같이 완전하고/ 모래알 하나, 굴뚝새의 알 하나도/ 그러하다고 나는 믿네./ 청개구리는 최고의 걸작이며/ 땅에 뻗은 딸기 덩굴은/ 천국의 객실을 장식할 만하다네./ 내 손의 작은 관절이라도/ 그것을 능가할 만한 기계는 세상에 없네./ 고개를 숙인 채 풀을 뜯는 소는/ 어떤 조각품보다도 훌륭하다네./ 그리고 한 마리 생쥐는/ 몇억의 무신론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기적이라네.’(‘나 자신의 노래’ 부분)

‘풀잎 하나가 별들의 운행에 못지않’고, ‘딸기 덩굴은 천국의 객실을 장식할 만하다’고? 이처럼 지나치다 싶을 만큼 과장법을 사용하는 우주적 상상력은 시인들이 누리는 특권일까. 인디언들의 상상력 또한 그에 못지않은데, 한 번은 어떤 사람이 진흙덩어리에게 물었다고. “너는 뭐니?” 진흙덩어리가 이렇게 대꾸했다지. “나는 진흙덩어리에 불과하지만, 장미 옆에 놓여 있어서, 장미 향기를 품고 있답니다.”

인간 또한 진흙으로 빚어진 존재임이 분명하지만 꽃과 나비, 바위, 구름, 해와 달, 별들과 더불어 있기에 생명의 환희와 향기를 품을 수 있는 것일까.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인간은 진흙덩어리에 불과하지만 하느님의 찬연한 빛을 품고 있기에 ‘진흙 등불’이라고 갈파했다.(『성 프란체스코』) 이처럼 하느님의 창조 신비에 눈뜬 작가가 빚어내는 문장들은 한 줄 한 줄 심장을 박동하게 하는 초록의 온도를 품고 있다. 이것은 그가 실낙원 속에 살면서도 경외와 사랑이 숨 쉬는 낙원의 기억을 몇 조각이라도 갈무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낙원의 기억을 몽땅 잃어버린 치매 환자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제 사람들은 만물 속에 깃든 창조의 아름다움을 회상하지 못한다. 장엄한 사원 중의 사원인 대자연조차 소유와 욕망의 대상으로 여겨질 뿐. 따라서 하느님의 몸인 지구별은 회생불능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하느님의 신성한 몸을 오로지 인간적 유용성으로만 가위질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른 것. 그 결과 하나뿐인 지구별이 맞게 된 총체적 파국의 위기. 한 인디언 시인의 탄식처럼 우리는 모든 것이 지구별 위에서 사라진 뒤에야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뒤에야/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뒤에야/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될 것인가./ 인간이 돈을 먹고살 수는 없다는 것을.’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건강한 세계를 담보하던 나무, 꽃, 바람, 땅과 근친(近親)인 인간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종달새에게 말을 걸고, 늑대들과 대화하고, 돌들과 집회를 갖고, 나무들과 토론회를 열던 성 프란치스코 같은 존재는 먼지 덮인 종교박물관 같은 데서나 찾아볼 수 있을는지!

이제라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우주 만물을 하느님의 몸으로 여기지 않은 결과 우리 삶이 얼마나 지리멸렬해졌는지! 다른 피조물들은 자신들의 운명에 고분고분 순응하는데, 오직 인간만이 조물주의 뜻을 거스른다면, 과연 엄청난 재앙과 불행과 수치스러움으로 끝날 파국의 종말을 생각이나 하는 것일까. 사도 바울은 “모든 피조물이 구원을 갈망한다”(로마서 8장 19~20절)고 했는데, 그 구원의 갈망이 혹 ‘지구 위에서 인간 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솟구치는 것은 나뿐일까.

고진하 시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