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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행복은 신기루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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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황주리 화가

황주리 화가

부쩍 무언가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가끔 집안에 블랙홀이라도 있는 것처럼 잘 놔둔 물건이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이다. 어쩌면 너무 깊숙이 잘 두어서 오히려 못 찾는 그 물건은 아쉬움이 증폭되어 포기할 수 없어진다. 요즘은 그냥 찾는 걸 취미로 삼기로 했다. 하긴 인터넷에서 계속 새로운 정보를 찾는 것도 취미가 아닐 수 없다. 이왕 찾는다면 즐겁게 찾자고 생각한다.

잠깐이지만 도벽이 심한 도우미와 함께한 적이 있다. 그녀가 가져가지 못하게 나는 더 깊은 곳에 아끼는 것들을 감추었다. 그러다 정작 너무 깊은 곳에 두어 나조차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 나는 이 시를 떠올렸다.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거다.’(조병화의 ‘천적’)

타이탄 잠수정 희생자의 최후
그들이 좇은 행복은 과연 뭘까
언제나 재미있게 살고 싶을 뿐

삶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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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누구든 자신의 흔적에 오롯이 둘러싸인 자신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수없이 찍어대는 스마트폰 속의 사진은 또 얼마나 많이 쌓여 가는가. 나의 공간은 보물섬이고 나는 그 섬으로 가는 보물섬 호의 애꾸눈 선장이다. 이게 내 그림이야? 이런 그림도 있었어? 잊어버리고 있었던 낯선 듯 낯익은 듯 반가운 물건을 찾을 때가 있다. 보물들은 하나씩 둘씩 신대륙을 발견하듯 새로 발견된다.

1912년 4월 14일에 침몰하여 탑승자 2224명 가운데 1514명이 사망한, 전설의 타이타닉호의 잔해를 관광하기 위해 북대서양 심해 4000m 아래로 내려가 다섯 명 전원이 사망한 타이탄 잠수정을 떠올린다. 1인당 3억4000만원 정도의 거액을 내고 살아 돌아오지 못한 다섯 명은 물론 아주 부자들이었다. 나는 엉뚱하게도 배에 귀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비극이 남에게 구경거리가 된다는 건 귀신 입장에서는 화날 것 같다.

인간의 처참한 기억의 장소가 훗날 꼭 가봐야 할 인생의 버킷리스트가 되는 건 아이러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킬링필드가, 9·11 참사가 벌어진 월드트레이드센터가 그렇지 않은가. 그때의 비극을 오늘에 되새겨 다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육적 목적 외에도 인간은 타인의 비극을 구경하면서 “그래도 나는 행복해” 하고 위로를 받는 건 아닐까.

타이탄 잠수정을 운영하는 오션게이트의 최고 경영자인 스톡턴 러시는 생전에 “안전은 쓰레기 같은 것이며 위험을 감수해야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게다가 탑승자들은 사망 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서명까지 하고 관광을 떠났다. 그렇게 황망한 뉴스를 들으며 문득 ‘행복은 신기루’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진짜 그 행복의 신기루를 좇다가 해저 깊은 곳에서 생을 마감한 건지도 모른다.

행복이 신기루라는 걸 새삼 일깨워준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의 저자인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45년 전 친구의 주치의셨다. 친구와 함께 나는 수업을 마치고 마음의 병을 앓아 병원에 입원한 친구의 병문안을 가곤 했다. 불투명한 미래를 등에 업고 불안한 청춘을 보내는 중이던 우리는 아픈 친구를 보면서 거꾸로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잠을 며칠째 계속 자지 못하는 병, 일상을 제대로 보낼 수 없는 병, 우리는 그 친구가 입도 대지 않는 병원의 식사 쟁반을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지금도 생각나는 미역국과 심심한 김치와 시금치 무침과 달걀찜은 미친 듯 우울했던 우리들의 청춘을 기념하는 인상 깊은 삽화 중 하나로 남아있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 친구는 우리가 먹는 모습을 보며 “많이 먹어” 했었다. 본 지 오랜 그녀는 나이 들어 조금은 행복해졌을까. 이상하게도 미술 전공자 중에 마음의 병을 앓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인생의 통과의례인 청춘의 방황과는 다르게 그 병은 쉽게 낫지 않았고, 몇십 년을 앓다가 빨리 늙어 죽어버린 친구도 있다. 다행인 건 내게 삶의 낙이 많았다는 거다. 행복이란 먹고 싶은 게 있는 것이고, 굳이 사람이 아니라 해도 보고 싶은 존재가 있는 것이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완전한 행복이란 신기루가 아닐 수 없다. 생의 마지막 날을 향해 하루하루 가까이 가는 게 삶이라면, 그 사실을 늘 잊지 못한다면 누군들 행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일 삶에 끝이 없다면 우주선을 탐사해봤자 달에 가봤자 행복도 불행도 없을 것이다. 작은 낙들을 개발하는 일도 행복이 신기루라는 걸 아는 사람들의 몫이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 물건을 찾다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다른 물건을 찾기도 한다. 이건 찾는 일의 즐거움의 덤이다. 대단한 구경거리가 아니더라도 내 안의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 나선다. 나도 진짜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황주리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