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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체르노빌' 공포…우크라 "러, 자포리자 원전에 폭발물 설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원전을 둘러싸고 긴장이 감돌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서로 상대방이 원전 공격을 계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자포리자 원전 인근의 카호우카 댐이 폭파된 데 이어 원전 파괴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제2의 체르노빌 참사’에 대한 공포심이 커지고 있다.

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CNN,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유엔 핵 감시기관인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날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몇 주간의 현장 시찰을 마무리한 뒤 원전 시설에 대한 추가 접근 권한을 촉구했다. 자포리자 원전은 개전 직후인 지난해 3월 이후 이 지역을 점령한 러시아군이 통제 중이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자포리자 원전의 모습.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은 서로 원전을 공격할 것이라고 비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자포리자 원전의 모습.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은 서로 원전을 공격할 것이라고 비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군사적 긴장이 증가함에 따라 전문가들이 현지 상황을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성이 생겼다”면서 “특히 3호기와 4호기의 옥상, 터빈홀의 일부와 발전소 냉각 시스템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IAEA는 이번 현장 조사에서 지뢰나 폭발물 등의 흔적은 찾아보지 못한 채 통상적인 시찰만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젤렌스키 "러군, 자포리자 원전에 폭발물 설치" 

앞서 전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정보국 자료를 인용해 러시아군이 자포리자 원전 지붕에 ‘폭발물과 유사한 물체’를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군은) 원전에 대한 공격을 시뮬레이션하는 계획일 수 있으며, 다른 시나리오도 갖고 있을 것”이라며 “전 세계는 원전을 점령 중인 러시아의 도발을 억제하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국제 사회에 호소했다.

같은 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포리자에서 점령군(러시아군)이 위험한 도발을 준비 중”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자신과 마크롱 대통령이 IAEA와 함께 상황을 최대한 통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일 수도 키이우를 방문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와 회담한 뒤 기자들에게 “러시아가 기술적으로 (자포리자 원전 인근에) 국지적 폭발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며 “이는 심각한 위협”이라고 밝힌 적 있다. 그는 지난달에도 “러시아가 ‘자포리자 원전 테러 공격 시나리오’를 고려 중이란 정보를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러시아 "우크라가 원전 공격할 것" 

반면 러시아는 “자포리자 원전 파괴 공작을 꾸미고 있는 건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타스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키이우 정권의 원전에 대한 사보타주 위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상황이 매우 긴박하다”면서 “이는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의 원전 운영사인 로스에네르고아톰의 레나트 카르차아 고문도 러시아 국영방송 로시야24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장거리 정밀 장비와 자폭 공격 드론 등을 이용해 자포리자 원전을 공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 로이터=연합뉴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 로이터=연합뉴스

"폭발시 체르노빌 10배 피해"

자포리자 원전은 단일 시설로 유럽 최대 규모인 원전이다. 유럽에서 외국 군대가 점령 중인 최초의 원전이기도 하다. 지난해 개전 직후 러시아가 이곳을 차지하면서 원전 인근에서 양측의 교전이 격화되면서 방사능 유출 등에 대한 우려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자포리자 원전을 통제하고 있는 러시아군의 모습. AFP=연합뉴스

자포리자 원전을 통제하고 있는 러시아군의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해 9월 원자로 6기 중 5기는 냉온 정지(cold shutdown), 1기는 여전히 화력을 생성하는 고온 정지 상태로 전체 가동이 멈춘 상태다. 하지만 원자로와 사용후 핵연료 냉각을 위해선 외부 전력과 냉각수 공급이 필수적이다. 전력이 차단되거나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면 원자로 과열로 핵연료봉 다발이 녹는 노심용융(멜트다운)과 방사성 물질 유출이 일어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가 원전 3호기와 4호기 지붕, 냉각수 저수조에 지뢰 등 폭발물을 설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원자력 안전 전문가 올리거 코샤르나는 “특히 냉각수 저수조에 지뢰를 배치한 것이 원전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면 고온정지 상태의 원자로에서 방사능이 유출되기까지 27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포리자의 냉각 시스템이 폭발하면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처럼 원자로가 녹아내리는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만약 폭발이 일어난다면 1986년 체르노빌 사고보다 10배 큰 피해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 자포리자 원전 일대는 세계적인 곡창지대이자 곡물 수출항도 있다. 때문에 폭발 사고 시 세계적인 식량난도 가중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코샤르나는 “러시아의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협박과 위협은 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을 중단시키기 위한 밑작업”이라고 주장했다.

4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지역에서 밀을 수확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지역에서 밀을 수확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핵 사고 일으키는 건 자살행위"

다만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공격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윌리엄 앨버크 전략·기술·군축 국장은 “바람이 동쪽으로 불고 있기 때문에 방사능이 유출되면 어떻게든 러시아 영토에도 해가 될 것”이라면서 “어떤 핵사고도 자살행위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CNN은 지난 3월 러시아를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쓰지 말 것을 직접 언급했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를 인용하며 “군사·전략적인 것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핵 사건을 일으키는 것은 러시아 입장에서 역효과를 부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카네기러시아유라시아센터의 알렉산더 가부에프 소장은 “중국조차도 푸틴을 완전히 제지할 수 없을 수 있다”며 “핵무기는 푸틴이 이 전쟁에서 파국적으로 패하는 것에 대비한 마지막 보험”이라고 FT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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