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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상하수도 시설 교체 시급한데 재정 여건은 갈수록 나빠져"

중앙일보

입력

중부지방의 한 하수처리장 모습. 하수처리장은 1990년대 이후 전국에 집중적으로 건설됐는데, 오는 2035년이면 전체 하수처리장의 94.5%가 설치된 지 30년을 초과한 노후 시설이 될 전망이다. 중앙포토.

중부지방의 한 하수처리장 모습. 하수처리장은 1990년대 이후 전국에 집중적으로 건설됐는데, 오는 2035년이면 전체 하수처리장의 94.5%가 설치된 지 30년을 초과한 노후 시설이 될 전망이다. 중앙포토.

국내 상하수도 시설에 대한 투자가 본격화한 지 30년이 지나면서 관련 시설이 빠르게 노후화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 여건이 갈수록 열악해지면서 낡은 시설을 제때 교체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더욱이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관련 예산과 인력을 지원해도 지자체 행정에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다른 분야로 전용되는 경우도 많아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것으로 지적됐다.

이런 지적은 한국환경연구원(KEI·원장 이창훈)이 출범 30주년을 맞아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우리나라 물 관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나왔다.

2035년 인프라 66.2%가 노후화

7일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는 한혜진 KEI 선임연구위원. 강찬수 기자

7일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는 한혜진 KEI 선임연구위원. 강찬수 기자

주제 발표에 나선 한혜진 KEI 선임연구위원은 "상하수도 등 물 관련 인프라를 한꺼번에 설치한 탓에 한꺼번에 노후화될 것"이라며 "오는 2035년에는 전체 물 인프라 가운데 댐·저수지·양수장 등 66.2%가 설치한 지 30년을 넘기게 된다"고 말했다.

하수처리장의 경우 2035년 94.5%가 30년을 넘겨 낡은 시설이 된다.
물 관리 예산의 대부분을 물 관련 시설에 투자하는 상황에서 집단 노후화와 그에 따른 대대적인 시설 교체와 개보수는 물관리 재정의 건전성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 정부는 각 부처 예산을 대폭 줄여 건전 재정을 확보하기로 해 상하수도 재정 여건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한 위원은 "물 관리 사업을 지방으로 이양했지만, 재정적 성과를 따지는 관리체계가 미흡해 이양된 사업이 지역 특성에 맞게 잘 관리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역 인구가 감소하면서, 망(網)기반 사업의 특성대로 수도사업도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해 재정 상태가 더욱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한 위원은 "수도사업 서비스의 형평성 제고를 위해 수도요금 현실화하고, 상수도 광역화를 통해 비용 절감이 필요하다"면서 "지자체의 관리가 미흡한 경우 (중앙정부가 다시 맡는) 기능 재배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돈 보내도 '블랙홀'처럼 사라져  

7일 열린 세미나에서 지정 토론회이 진행되고 있다. 단상 왼쪽부터 공동수 경기대 교수, 김고응 환경부 물정책총괄과장, 김익수 환경일보 편집장, 백선재 한국환경공단 물환경본부장, 이병국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좌장), 이상은 국토연구원 안전국토연구센터장, 최동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최지용 서울대 교수. 강찬수 기자.

7일 열린 세미나에서 지정 토론회이 진행되고 있다. 단상 왼쪽부터 공동수 경기대 교수, 김고응 환경부 물정책총괄과장, 김익수 환경일보 편집장, 백선재 한국환경공단 물환경본부장, 이병국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좌장), 이상은 국토연구원 안전국토연구센터장, 최동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 최지용 서울대 교수. 강찬수 기자.

경기대 생명과학과 공동수 교수도 "물 관련 업무 지방 이양 이후 인력·예산을 지원해도 지자체들은 '블랙홀'처럼 다른 데 배치하기도 하고, 실태 파악도 잘 안 된다"고 거들었다.

최동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토론에서 "우선순위를 높이는 등 지자체 차원의 물 관리 행정 개편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환경부 김고응물정책 총괄과장은 "전체적으로 환경부 내년 예산을 30% 삭감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다른 분야에서 더 줄이는 대신 가뭄·홍수 대비 등 시급한 물 분야는 예산을 더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제 발표 중인 이창희 명지대 교수. 강찬수 기자

주제 발표 중인 이창희 명지대 교수. 강찬수 기자

이날 세미나에서 명지대 환경에너지공학과 이창희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 30년 동안 환경부의 수질 관리 정책은 단순히 수질만 관리하던 데에서 수생태로, 다시 물 환경으로 점차 범위가 넓어졌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비(非)점오염원 관리, 수질오염 총량관리, 수생태계 정책이 도입됐고, 수질과 수자원 통합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향후 물 관련 연구는 물환경·이수·치수 등 부문별 접근에서 벗어나 학제적(學際的·학문 간의 경계를 뛰어넘는) 접근이 필요하고, 환경부만이 아닌 여러 부처가 협동하는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도시 외부 수자원 의존도 낮춰야 

자료: 한국환경연구원.

자료: 한국환경연구원.

KEI 김호정 통합물관리연구실장은 '미래 도시의 물 관리 방향'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도시 바깥에서 물을 끌어와 쓰고 버리는 지금의 도시 물 관리 방식으로는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특히 "국내 도시에서도 빗물 이용 시설을 설치하고 있지만, 빗물의 재이용 상황에 대해서는 체크를 하지 않아 설치만 해놓고 가동하지 않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시설 설치 때는 용적률에 인센티브를 부여하지만, 정작 빗물을 활용하는 데는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제 발표 중인 김호정 한국환경연구원(KEI) 통합물관리 연구실장. 강찬수 기자

주제 발표 중인 김호정 한국환경연구원(KEI) 통합물관리 연구실장. 강찬수 기자

그는 "국내 도시에서 물을 이용할 때 한국수자원공사의 광역 상수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데, 외부 수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수처리수를 재이용, 기후변화에도 영향받지 않는 수자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녹조 연구에 인공지능 활용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미래의 물관리 기술에 대해 발표하고 있는 조경화 UNIST 교수. 강찬수 기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미래의 물관리 기술에 대해 발표하고 있는 조경화 UNIST 교수. 강찬수 기자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조경화 교수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미래의 물관리 기술'이란 주제를 발표했다.

녹조를 일으키는 남세균(남조류) 세포 수를 사람이 현미경으로 하나하나 세던 것을 AI에게 맡기기도 하고, 드론이나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녹조의 규모를 파악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처리 공정 모델링이나 수처리 공정 자율 운전시스템에도 AI를 활용할 수도 있다.
조 교수는 "AI를 활용하면, 노동집약적이고 반복적인 물 환경 관련 업무를 자동화·간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그린바이오과학기술원 최지용 교수는 토론에서 "소양댐이나 팔당댐이 건설된 지 50년이 됐고, 당시 도입된 입지 규제가 아직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상수원인 팔당호 주변에 위치한 공장의 경우 96%가 개별 입지인데, 지역 단지로 옮기고 그 단지를 철저히 관리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KEI 원장을 지낸 박태주 부산대 명예교수와 안병옥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한국ESG학회장인 고문현 숭실대 교수 등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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