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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에, 가뭄에 널뛰는 날씨 …‘스펀지 도시’로 맞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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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쏟아진 기습 폭우. 도시 면적의 절반이 콘크리트로 덮힌 서울에 폭우가 쏟아지면 홍수로 이어진다. 반면 비가 그치면 곧바로 하천이 말라붙는다. 홍수와 가뭄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연합뉴스]

서울에 쏟아진 기습 폭우. 도시 면적의 절반이 콘크리트로 덮힌 서울에 폭우가 쏟아지면 홍수로 이어진다. 반면 비가 그치면 곧바로 하천이 말라붙는다. 홍수와 가뭄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연합뉴스]

111년 만에 최고 기온, 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 2018년 여름 날씨는 널뛰는 것처럼 변덕이 심했다. 극단적인 기상이변은 시민들에게 큰 시련도 안겨줬다.

[기후 급변 시대의 물관리-공기업 시리즈① 환경]

예년 날씨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란 기상청 장기예보와는 달리 올여름 장마는 아주 일찍 끝났다. 6월 19일에 제주도에서 시작해 7월 11일 중부지방에서 종료됐는데, 1973년 이래 두 번째로 짧았다. 장마 기간 전국 평균 강수량도 283㎜로 평년(356.1㎜)보다 적었다.

장마 뒤에는 폭염이 이어졌다. 지난달 1일 서울의 최고기온은 1907년 기상 관측 이래 111년 만에 가장 높은 39.6도를, 강원도 홍천은 41도를 기록했다.
폭염이 이어지면서 제주·호남·충남에서는 가뭄 걱정이 터져 나왔고 낙동강·금강은 짙은 녹조로 몸살을 앓았다. 충남 최대 곡창지대인 예당평야에 물을 대는 예당저수지의 저수율이 30% 밑으로 떨어지면서 금강∼예당저수지 도수로가 가동되기도 했다. 하루 최대 12만9600㎥의 금강 물이 예당저수지에 공급됐다.

지난달 26일부터는 ‘가을장마’가 시작됐다. 제주도 서귀포부터 서울과 경기 북부에 이르기까지 전국 곳곳이 물바다가 됐다. 제주 서귀포나 강원도 철원 등지에는 시간당 100㎜가 넘는 물 폭탄이 쏟아졌다. 서울에서도 중랑천 물이 갑자기 불어나면서 사망자도 발생했다. 하루에 30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지난달 28일 오후 갑자기 시작된 폭우로 서울 종각역 인근 도로가 물에 잠겼다. [뉴스1]

지난달 28일 오후 갑자기 시작된 폭우로 서울 종각역 인근 도로가 물에 잠겼다. [뉴스1]

당장 눈앞에 닥친 기후변화

수도권 지역에 이틀 연속 물폭탄이 쏟아지고 난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바라본 한강에 흙탕물이 가득하다. [뉴스1]

수도권 지역에 이틀 연속 물폭탄이 쏟아지고 난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바라본 한강에 흙탕물이 가득하다. [뉴스1]

먼 미래의 일로 여겨졌던 기후변화가 당장 눈앞에 나타나고,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발생하면서 정부·지방자치단체는 물 관리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1973년 이후 10년마다 전국의 평균 연 강수량은 32㎜씩 증가했는데, 여름은 22㎜, 가을은 11㎜씩 증가했지만, 겨울철 강수량은 그대로이고, 봄철 강수량은 2㎜ 오히려 줄고 있다”고 말한다.

또, 김성준 건국대 사회환경공학과 교수는 지난 3월 ‘통합 물관리 비전 포럼’에서 주제 발표를 통해 “강수량이 늘고 있지만, 정작 하천 유량은 과거보다 10% 정도 줄었다”며 “산림이 우거지면서 나무의 증발산이 늘었고, 기온 상승으로 토양 증발량도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침식으로 토양 두께가 얇아져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능력도 줄었다.
비가 오면 한꺼번에 쏟아지는데, 저장 능력은 줄어 물이 바로 바다로 흘러간다. 이 때문에 여름과 가을에는 홍수가, 봄에는 가뭄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기후 급변 시대의 물관리-공기업 시리즈① 환경]

도시도 새로운 물 관리 전략 필요

서울시 양천구에 대형 빗물터널이 마무리 공사에 한창이다. 대형 홍수를 대비해 현대건설이 시공한 빗물터널은 약 100년 간 이용이 가능하다. 최승식 기자

서울시 양천구에 대형 빗물터널이 마무리 공사에 한창이다. 대형 홍수를 대비해 현대건설이 시공한 빗물터널은 약 100년 간 이용이 가능하다. 최승식 기자

도시도 마찬가지다. 현재 서울 등 대도시의 경우 빗물이 땅속으로 침투되지 못하는 불투수 표면이 전체 도시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폭우가 쏟아지면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그대로 도로나 하천으로 쏟아진다. 반대로 비가 조금만 내리지 않으면 하천이 말라붙고, 숲도 시들시들해진다.

전문가들은 “시민들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홍수 예방, 수자원의 적절한 사용을 위해 새로운 물 관리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홍수 때는 물을 품고, 물이 부족할 때 천천히 내놓는 ‘스펀지 도시’로 도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빗물터널 조감도 [자료 현대건설]

빗물터널 조감도 [자료 현대건설]

이런 점에서 현재 서울시가 양천구 신월동 지하에 건설 중인 ‘빗물 터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하 45m 깊이에 건설되고 있는 이 빗물 터널은 지름이 5.5~10m, 길이가 4.7㎞에 이른다.
평상시에는 비워뒀다가 시간당 30㎜ 이상 폭우가 쏟아지고, 하수도가 역류할 상황이면 빗물을 받아들이게 돼 있다.
이곳에는 50m 수영장 160개 분량인 32만㎥의 빗물을 저장할 수 있다. 저장된 빗물은 비가 그친 뒤 목동 빗물 펌프장을 통해 안양천으로 배출된다.

이 사업은 지난 2010년 9월 21일 서울에 3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양천구·강서구 6000여 건물이 침수된 게 계기가 됐다.
2013년 5월 공사가 시작돼 1380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간다. 현재 전 구간 굴착은 마쳤고, 내년 6월 완공을 목표로 구조물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홍수 예방과 수질 개선…저영향 개발 주목

저영향개발 기법 사례. 전주 시범지역에 설치된 '식물재배화분' 식물이 자라는 작은 정원을 통해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든다. [사진 환경부]

저영향개발 기법 사례. 전주 시범지역에 설치된 '식물재배화분' 식물이 자라는 작은 정원을 통해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든다. [사진 환경부]

하지만 이 같은 빗물 터널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홍수 방지에 큰 도움은 되지만,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공사 기간도 길다.

지하 굴착 과정에서 소음이나 건물 균열 등을 우려한 주민들의 반발도 발생한다. 서울대 빗물센터장은 한무영 교수는 “건물 옥상이나 지하를 활용해 소규모 빗물 저장시설을 설치해 빗물을 잡아준다면 집중호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빗물을 수자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저영향 개발(LID, Low Impact Development) 기법이다.
도시가 개발되기 이전처럼 도시 내에서 물 순환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옥상 정원과 빗물 저금통으로 빗물을 잡아두고, 식생 수로와 침투 도랑, 투수성 포장을 통해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도록 한다.

저영향개발 기법 사례. LH 토지주택연구원 구내에 설치된 '투수성 포장'. 미세한 구멍을 통해 빗물이 토양에 침투할 수 있다. [사진 환경부]

저영향개발 기법 사례. LH 토지주택연구원 구내에 설치된 '투수성 포장'. 미세한 구멍을 통해 빗물이 토양에 침투할 수 있다. [사진 환경부]

미국·독일 등에서는 1980년대부터 LID기법이 도입됐고, 국내에서도 10여년 전부터 김포한강·아산탕정 신도시, 에코델타시티, 송산그린시티, 행복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 등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저영향개발 기법 사례. LH 토지주택연구원 구내에 설치된 '식생수로'. 빗물이 수로를 흐르며 땅속으로 흡수된다. [사진 토지주택연구원]

저영향개발 기법 사례. LH 토지주택연구원 구내에 설치된 '식생수로'. 빗물이 수로를 흐르며 땅속으로 흡수된다. [사진 토지주택연구원]

최종수 LH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은 "LID를 통해 홍수 때 하천으로 들어가는 물의 양을 줄이고, 지하수 고갈과 하천이 마르는 건천화도 예방할 수 있다"며 "토지나 도로에 쌓여 있던 오염물질이 빗물에 씻겨 하천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어 수질오염 정화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오창시범단지의 경우 유출되는 빗물의 양이 14.4% 굴었고, 지하수위는 12.3㎝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LH연구원 부지 내에 설치된 LID 기법 시설에서는 지난해 8월에 기온을 1.65~2.25도 낮춘 '열섬 저감 효과'를 보인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 6월 수량·수질 등 정부 물관리 업무가 일원화된 것을 계기로 환경부도 LID에 적극적이다.
김현주 환경부 수생태보전과 사무관은 "환경부에서는 2020년까지 5개 물 순환 선도 도시를 조성하고, 그 결과를 평가해서 전국적으로 LID 기법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개발사업에 LID 기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인센티브 제공이나 의무화 등 적극적인 정책 발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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