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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 나오는 수돗물…시설만 늘고 전문 인력은 부족한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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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인천 시내 일부 수돗물에서 깔따구 유충이 나오면서 수돗물 불신이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먹는 샘물 수요가 급증하고, 샤워기 필터를 찾는 사람도 늘었다.

공촌정수장 어처구니없는 실수 #26년 전 화명정수장 부실 그대로 #유해 화학물질 누출사고도 반복 #경험 쌓은 인력 있어야 사고 예방

전국에서 유충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잇따랐지만, 핵심은 인천 공촌정수장 문제였다. 이곳에서는 오염물질 제거를 위해 고도처리 정수시설인 활성탄 여과지(池)를 지난해 9월부터 운영하면서도 함께 가동해야 할 오존 소독시설은 설치 중인 탓에 가동하지 않았다. 오존 소독을 했다면 강한 냄새 때문에 시설을 밀폐했을 것이고, 깔따구 같은 곤충은 접근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과지에서 부화한 깔따구 유충은 활성탄 속에서 살다가 그대로 수도관을 타고 가정 수도꼭지로 나왔다.

현장을 살펴본 한 전문가는 “방충망도 없었고, 날아든 벌레가 주변에 죽어있는 게 쉽게 눈에 띌 정도로 너무 지저분하게 관리되고 있었다”고 전했다. 당장 몸에 해롭지 않다고 해도, 수돗물에서 유충이 나온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깔따구 유충이 처음 발견된 인천 공촌정수 사업소에서 한 관계자가 침전지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깔따구 유충이 처음 발견된 인천 공촌정수 사업소에서 한 관계자가 침전지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공촌정수장의 이런 모습은 26년 전 기자가 찾았던 부산 화명정수장을 떠올리게 했다. 국내 최초 고도처리 정수장의 시범 가동을 독자들에게 소개할 생각으로 1994년 가을 방문했던 현장은 예상과 너무 달랐다. 당초 노천에 설치하려던 활성탄 여과지 둘레에 벽을 치고 천장을 앉혔지만, 햇빛이 들면서 활성탄 표면에 이끼가 자랐다. 빛을 가리기 위해 공사장에서나 볼 것 같은 천막을 얼기설기 덮어놓고 있었다. 암모니아 제거 효율도 턱없이 낮았다. 그 겨울 갈수기에 낙동강 암모니아 농도가 치솟자 고도처리했다는 수돗물이 암모니아 기준도 맞추지 못했다.

공촌정수장은 지난해 5~6월 발생했던 인천 지역 붉은 수돗물 사고의 진원지다. 당시 취수장 공사로 수돗물 생산을 못 하게 되자 다른 정수장 수돗물을 공급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정수장끼리 잇는 대형 수도관의 수돗물을 평소와는 반대 방향으로 보냈다. 너무 갑작스럽게 수압을 올리는 바람에 수도관 속의 녹·찌꺼기가 벗겨져 정수장 시설을 오염시켰다.

환경부 상수도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수돗물 가운데 41%가 고도 정수처리를 통해 생산되고 있다. 4대강에 녹조와 비린내 발생이 잦아지면서 고도정수처리 시설은 지난 10년간 두 배로 늘었다. 20여년간 경험도 쌓였을 법한데 초창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해 경북 포항 남구 일원에 공급된 수돗물에서 검붉은 물이 나와 수도꼭지 필터가 사용 2시간 만에 갈색으로 변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경북 포항 남구 일원에 공급된 수돗물에서 검붉은 물이 나와 수도꼭지 필터가 사용 2시간 만에 갈색으로 변했다. [연합뉴스]

실수가 반복되기는 화학사고도 마찬가지다. 화명정수장 고도정수시설은 낙동강 페놀 오염사고 때문에 도입됐다. 경북 구미의 두산전자에서 1991년 봄 두 차례나 원료인 페놀을 낙동강에 유출했다. 페놀은 정수장에서 소독제인 염소와 반응, 악취를 내는 클로로페놀이 됐다. 영남 주민들은 큰 고통을 겪었다.

페놀 사고의 악몽은 2012년 9월 구미 불산 사고로 되살아났다. 구미 4공단의 업체 휴브글로벌에서 탱크로리의 불산을 옮기는 과정에서 누출사고가 일어나 노동자 5명이 사망했다. 공단 주변으로 불산이 퍼지면서 농작물이 누렇게 말라죽었고, 인근 주민 3000여 명도 건강 피해를 보았다.

인천 시내 일부 수돗물에서 발견된 깔따구 유충.

인천 시내 일부 수돗물에서 발견된 깔따구 유충.

불산 사고 이후 환경부가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을 제·개정하면서 전체적으로 화학사고 건수가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당장 21일 새벽에도 구미의 반도체 제조업체 KEC 공장에서 트리클로로실란이 유출돼 근로자 등 7명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한때 주민대피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그래서 시설 투자나 제도 도입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사람”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평상시 시설을 꼼꼼히 챙기는 것도, 시설을 제대로 운영한 것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조치로 피해를 줄이는 것도 모두 사람의 몫이라는 것이다.

고도 정수 처리 시설 비율

고도 정수 처리 시설 비율

수돗물 시민 네트워크 염형철 공동대표는 “정수장이든, 환경부의 상수도 관련 부서든 한 곳에서 오래 일하는 직원이 드물다”며 “현장에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오랜 기간 경험을 쌓고 일할 수 있도록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상수도 공무원노동조합 연합회 김성용 위원장은 “시설 자동화로 인력이 줄고 있는데, 최근 2~3년 경험 많은 베이비 붐 세대 기술직이 대거 퇴직했다”며 “정수장은 24시간 가동해야 하는데 주 52시간 근무 상한제 때문에 인력 부족이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유충이 발견되자 이번에는 ‘정밀 여과 장치’를 도입하겠다며 다시 시설 투자를 내세웠다.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새로운 시설을 도입해도 이를 제대로 운영·관리할 사람이 없다면 소용이 없다. 인력 부족으로 가장 기본인 청소도 안 되는 상태에서 서비스 개선만 강조하면 엉뚱한 곳에서 사고가 터지고, 더 큰 불신만 초래하게 된다.

94년 여름 일본 도쿄의 한 고도처리 정수장을 방문했을 때 기자에게 시설을 안내한 사람은 안전모 아래로 흰머리와 주름진 얼굴이 드러난 현장 작업반장이었다. 복잡한 정수장 설비 사이를 빠르게 오가던 그에게서 자신감과 자긍심이 배어났다. 정수장마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장마다 그런 ‘터줏대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