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기업 합숙 면접의 사투를 아시나요...『연수』로 돌아온 'MZ 대표 작가' 장류진

중앙일보

입력

"1~2년 차에는 아무 생각 없이 회사에 다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1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일까', '저 꼭대기에 올라가는 사람은 누굴까' 생각하게 되잖아요. 회사의 결정이 언제나 합리적인 것은 아니라 엉뚱한 사람이 위에 올라가기도 하고요. 그런 관찰과 고민이 이어져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신작 『연수』로 돌아온 소설가 장류진. 사진 신나라

신작 『연수』로 돌아온 소설가 장류진. 사진 신나라

판교 IT 업계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은 『일의 기쁨과 슬픔』, 코인으로 인생역전을 노리는 청춘을 그린 『달까지 가자』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한 'MZ세대 대표 작가' 장류진(37)이 새 단편집 『연수』(창비)를 출간했다.

『연수』는 장류진 특유의 흡입력 있고 가독성이 뛰어난 문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대기업 합숙 면접에서 벌어지는 취준생들의 불꽃 튀는 눈치 싸움, 정규직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턴 기자의 이야기, 주니어 사원이 부장으로 승진하기까지 17년간 회사 생활의 희로애락 등 단편 6편을 담았다.

생존 서바이벌 같은 대기업 합숙 면접을 다룬 단편의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펀펀페스티벌'이다. 장류진은 "합숙 면접에 참여한 구직자라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 상황에서 춤과 노래를 시키고 웃고 떠드는 상황이 기이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연수』(창비) 표지. 장류진 지음

『연수』(창비) 표지. 장류진 지음

합숙 면접에 참여한 지원과 같은 조의 찬휘는 장기자랑으로 노래를 부르기로 하고 보컬 역을 두고 경쟁한다. 필사적으로 서로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소셜'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몸부림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짠하게 느껴진다.

장류진은 "제가 대학 졸업을 앞둔 시기에 그런 장기자랑을 하는 합숙 면접이 유행했다"며 "주변의 후일담과 상상력을 결합해 쓴 이야기"라고 했다.

책 제목은 운전 연수에 인생을 빗댄 표제작 '연수(硏修)'에서 가져왔다. 주인공 주연은 큰 굴곡 없이 차곡차곡 성공 가도를 달려온 젊은 회계사. 그의 유일한 고민은 클라이언트의 사무실까지 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연수'는 주연이 맘카페에서 '일타강사'로 유명한 운전 강사에게 연수를 받으며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작달막한 단발머리 아주머니 강사는 소문대로 뛰어나지만, 초면에 주연의 자녀계획까지 세워주며 "남편 아침밥은 안 차려줘도 되냐"는 질문으로 신경을 긁는다. 삐걱거렸던 첫 만남과 달리 이들은 운전 연수를 거듭하면서 서로를 향한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된다.

장류진은 판교의 한 IT 기업에서 10년 동안 서비스 기획자로 일했다. 첫 소설집이 나온 뒤에도 한동안 직장 생활을 병행했다. 내면의 사색에 천착하는 일부 전업 작가들과 달리 그의 작품은 조직의 생리와 회사원의 일상적 고민을 샅샅이 훑는다. 첫 소설집『일의 기쁨과 슬픔』이 '판교 하이퍼 리얼리즘', '스타트업 호러'로 입소문을 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신작 『연수』에도 회사 생활에 대한 고찰이 담겼다. '공모'는 보수적인 문화의 대기업에서 부장 자리까지 올라간 여성 간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동계올림픽'은 지방 방송사에서 일하며 정직원 전환을 노리는 인턴 기자의 분투기다.

소설가 장류진. 사진 신나라

소설가 장류진. 사진 신나라

장류진 특유의 맛깔 나는 대화 진행과 유머 속에 반전도 숨겨져 있다. 우리 회사의 김 모 부장으로 치환해도 어색하지 않은, 어느 회사에나 있을 법한 디테일한 캐릭터 설정도 별미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판교 문학', '블라인드 소설'이라고 혹평하는 이들도 있다. 문학적 상상력이 결여된, 고학력 화이트칼라 직장인의 일기장 같은 소설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류진은 "'무엇무엇 같다'는 것은 개인의 생각이니까 어쩔 수 없다"면서도 "단편 한 편에 한 달을 매달려 문장 하나하나를 붙들고 씨름한 결과물이 『연수』"라고 했다. 그러면서 "충분한 답이 아닐 수 있겠지만, (혹평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뿐"이라고 덧붙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