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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른 공직 돌려막기…감사관 절반이 내부 출신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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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공무원들이 정부세종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무원들이 정부세종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부처가 개방직으로 정해 공개 모집한 감사관의 절반을 내부 출신으로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개방직 공모 취지와 역행한 인사란 지적이 나온다. 최근 교육부의 국립대 사무국장 ‘짬짜미’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공직사회 전반으로 인사 개혁 불씨가 확산할 가능성이 커졌다.

중앙일보가 3일 정부 중앙부처 18곳이 개방형 직위(민간 또는 공무원)로 공모한 ‘감사관(감찰관)’의 인사발령 현황을 전수 분석한 결과 기획재정부·교육부·보건복지부·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 등 9곳이 감사관을 부처 내부 출신으로 임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통일부·행정안전부 등 5곳은 감사원, 고용노동부·법무부 등 2곳은 행정안전부·검찰(변호사) 출신으로 각각 자리를 메웠다. 공석(2곳)을 포함해 민간 출신을 감사관으로 채용한 부처는 한 곳도 없었다.

초대 인사혁신처장을 역임한 이근면 성균관대 특임교수는 “감사관을 비롯한 개방형 직위는 공모 형식을 띠지만 사실상 부처에서 내정한 내부 출신을 선발하는 경우가 많다”며 “타성에 젖은 공직 사회에 외부 피를 수혈해 활기를 불어넣자는 개방직 공모 취지가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정부 부처는 ‘개방형 직위 및 공모 직위의 운영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고위공무원의 20% 이내를 개방형으로 채워야 하는 ‘가이드라인’이 있다. 그중에서도 감사관은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공공감사법)’에 따라 개방직 공모가 의무다. 문제는 사실상 '무늬만 공고'를 해놓고 대부분 내부에서 채용하는 식으로 개방직 감사관을 운영한다는 점이다.

내부 출신 감사관을 순환 보직처럼 운영할 경우 (감사관이) 최종 인사권자(장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감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부처 한 인사운영과장은 “감사관은 과거 비(非) 행정고시 출신이 국장급으로 승진할 수 있는 자리였는데, 최근 인사 적체에 따라 고시 출신도 거쳐 가는 자리로 바뀌었다”며 “누구나 선호하는 요직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업무량이 적고, 감사관 특성상 ‘노 터치’라 인기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개방직 공무원 제도는 2000년부터 시행됐다. 서류-면접 심사를 주관하는 건 인사혁신처 중앙선발심사위원회(중심위)다. 비공개 심사인데 5명 이상인 심사위원 중 채용 기관 소속 공무원이 최대 2명까지 들어간다. 중심위가 선발한 1~3순위 인사를 부처에서 거부할 수도 있다. 부처 입맛에 따라 내부 출신을 채용할 수 있는 여건이다.

지난해 6월 한 경제부처 감사관직에 지원한 다른 부처 A 국장은 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중심위 심사에서 1순위로 선발됐다. 하지만 경제부처에선 “적임자가 아니다”란 이유를 들어 A 국장을 물렸다. 결국 지난해 10월과 올해 4월에 걸쳐 감사관 자리를 다시 공모했고, 지난달에서야 감사원 출신 인사를 감사관으로 채용했다. A 국장은 “내정자, 혹은 원하는 경력을 정해놓고 다른 지원자를 들러리 세운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감사원 출신을 감사관으로 채용하는 것도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 피(被)감사기관의 감사관이 감사원 출신일 경우 감사의 독립성을 떨어뜨릴 수 있어서다. 한 사회부처 인사담당관은 “내부 출신 채용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차라리 감사원 출신을 선호한다”며 “감사 건이 터졌을 때 ‘바람막이’ 내지는 감사원과 소통하는 ‘창구’ 역할을 기대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2010년 공공감사법 제정을 추진한 부처가 감사원이다. 감사원 직원이 사직서를 내고 다른 부처 감사관으로 나갔다가 감사원으로 복귀하는 식이라 감사원 스스로도 ‘밥그릇 챙기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감사원 관계자는 “다른 부처 감사관 임기를 만료한 직원은 ‘공무원임용시험령’ 특례에 따라 복귀를 보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부처보다 감시가 덜한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 감사관 자리는 난맥상이 더 심할 우려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수차례 “개방직 자리를 일부 부처 공무원이 돌려막는 행태를 바꿔야 한다”고 지시한 만큼 파장이 커질 수 있다. 윤 대통령은 3일에도 신임 차관들과 오찬에서 “우리 정부는 반(反) 카르텔 정부”라며 “이권 카르텔과 가차 없이 싸워달라”고 당부했다.

정부부처는 민간 전문가를 감사관으로 채용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조태준 상명대 공공인재학부 교수(전 한국인사행정학회장)는 “감사관 자리에 지원할 만한 경력을 가진 민간 전문가가 굳이 현재 공무원 수준의 급여와 처우 수준에 만족할지 따져봐야 한다”며 “제도 취지대로 우수한 민간 인재를 채용할 수 있도록 개방직 보상을 강화하고, 심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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