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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대통령 경고도 먹히지 않는 교육부의 철밥통 지키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전국 27개 국립대 사무국장은 힘센 자리다. 교직원 인사관리, 대학예산 편성·운영, 국유재산·시설 관리, 자체 감사 등 권한을 쥐고 있어서다. 문재인 정부까지만 해도 교육부에서 고위 공무원(2급) 또는 부이사관(3급)으로 승진한 간부가 한 번쯤 거쳐 가는 자리였다. 정부와 대학을 잇는 ‘가교’ 역할이지만, 일방적으로 교육부 지시를 전달해 대학 자율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립대에선 “대학 직원은 총장보다 사무국장을 더 무서워한다”는 말이 돈다.

상황을 꿰뚫어 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국무회의에서 “교육부에서 지방 국립대에 사무국장을 보내 총장이 눈치 보게 하는 게 정상이냐. 사무국장 파견제도를 없애지 않으면 교육부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기득권 타파를 강조한 현 정부의 교육개혁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교육부는 같은 해 9월 개편안을 내고 당시 사무국장을 일제히 대기발령 조치했다. 빈자리에 교육부 출신을 발령하는 대신 다른 부처나 민간 전문가로 문을 넓히기로 했다.

10개월이 지난 뒤 드러난 결과는 사무국장 자리 절반(13곳)가량을 부처 편의에 따라 1대1 인사 교류하는 방식으로 메운 ‘짬짜미’였다. 교육부가 국민권익위원회 고위 공무원에게 공주대 사무국장 자리를 주는 대신, 교육부 고위 공무원이 권익위 고충민원심의관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교육부가 사무국장 자리를 인사 적체를 해소하는 ‘징검다리’쯤으로 여기지 않고서야 물밑에서 흥정하는 식의 부처 간 인사 교류를 설명할 수 있을까. 부처 간 인사 교류를 우선하다 보니 남은 사무국장 자리 12곳이 공석이다. 대통령의 경고조차 먹히지 않은 셈이다.  〈중앙일보 6월 28일자 1면〉

결과적으로 모두가 불행해졌다. 2014년 국립대 총장을 역임한 한 명예교수는 “‘수퍼 갑’인 교육부가 내려보낸 사무국장의 전문성이 떨어지더라도 총장이 거부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한 정부부처 국장은 “사무국장을 지원하고 싶어도 교육부가 찜한 부처가 아니라서 기회가 없다”고 털어놨다.

교육부는 드러난 짬짜미 실태에 대해 묵묵부답이다. 공식 입장은 내지 않았지만 내부에선 “인사 적체를 해소하려면 어쩔 수 없다”며 현행 인사제도를 유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하다. 대통령의 교육개혁 의지에 반할 뿐만 아니라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지금은 ‘꽃보직’을 놓친 억울함을 호소하기보다 사무국장 인사권을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는 원칙에 따라 모두가 수긍할 해법을 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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