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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교육부 구태 드러낸 국립대 사무국장 돌려막기 인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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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7개 자리 중 13곳에서 부처 간 ‘스리 쿠션’ 인사

대학 자율과 독립 위한 상징적 조치 무력화시켜

27개 국립대의 사무국장은 대학의 예산 편성·운영과 교직원 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중요한 자리다. 이전 정부까지는 교육부 출신 고위공무원(2급)이나 부이사관(3급)이 독식해 왔다. 본부보다 업무 부담이 적어 고위 공무원에 승진한 이들이 가는 ‘꽃보직’으로 여겨졌다. 지난해 대통령직 인수위는 대학에 대한 정부 규제를 푸는 상징적 조치로 이 자리의 개방을 추진했고,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 업무보고에도 올렸다. 대학의 자율성·독립성을 중시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새 출발에 잘 어울리는 조치였다.

그런데 중앙일보가 오늘 보도한 인사 실태를 보면 어이가 없다. 27개 국립대 사무국장 자리를 외부에 개방했지만 13곳은 부처 간 인사교류 방식으로 다른 부처 공무원들이 차지했다. 대신 교육부 공무원은 해당 부처에 자리를 얻었다. ‘스리 쿠션’으로 돌려막기를 한 셈이다. 대통령에게까지 보고한 개혁 조치가 제자리를 지키려는 교육부 관료의 철옹성 앞에 힘을 잃었다. 국립대는 전문성이 부족한 다른 부처 관료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받아야 했다.

교육부는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한 고육책이고 부처 간 인사 교류를 하더라도 최대한 전문성을 살리려 했다고 해명했다. 해수부 출신을 해양대, 국토교통부 출신을 교통대, 문화체육관광부 출신을 한국체육대 사무국장으로 발령했다는 얘기다. 다른 부처 관료가 새로운 시각으로 업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대체 교육부 관료가 내려갔던 과거에는 어떠했기에 시너지까지 운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주호 교육부총리는 지난해 야인 시절, “대학을 마치 산하 기관처럼 취급하는 교육부의 관료적 통제”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또 “윤석열 정부에서도 대학을 교육부의 통제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대전환에서 결코 선도자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랬던 그의 입장이 교육부총리 청문회를 앞두고 ‘교육부 해체론’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교육부를 폐지하자는 게 아니라 대학에 자유를 주자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립대 사무국장 자리에 다른 부처 관료를 앉힌 행태가 대학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이 부총리는 부인했지만 교육부 해체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7년 대선 때도 당시 문재인·안철수 등 유력 주자들이 교육부 해체·폐지를 주장했다. 어떻게 해서든 대학 위에서 군림하고 싶어 하는 교육부의 자기반성 없이는 교육부 해체론이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기지가 돼야 할 대학은 절대 관료들의 산하기관 꼴이 돼서는 안 된다. 창의적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대학 자율을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규제를 없애겠다며 대학규제개혁국까지 신설한 현 정부의 교육개혁 다짐을 되돌아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