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90% 이상 명문大 엘리트였던 이들..의무소방대 사라진다

중앙일보

입력

고지대에서 로프를 타고 저지대로 내려오는 현수하강(레펠) 훈련 중인 의무소방원. 의무소방원은 입소하면 중앙소방학교에서 후반기 훈련 도중 레펠 기술을 연마한다. [사진 소방청]

고지대에서 로프를 타고 저지대로 내려오는 현수하강(레펠) 훈련 중인 의무소방원. 의무소방원은 입소하면 중앙소방학교에서 후반기 훈련 도중 레펠 기술을 연마한다. [사진 소방청]

‘충성!’
전국 주요 소방서를 방문하면 기동복을 착용한 소방관이 정문에서 군인처럼 큰소리로 거수경례했다. 이들은 엄밀히 소방공무원이 아니라 대체복무하던 군인이었다.

지난 21년 동안 소방공무원과 함께 화재를 진압하고 구조·구급 활동을 하던 이들을 앞으로 볼 수 없게 됐다.

충북 제천시 하소동 8층 스포츠시설 건물 화재 당시 출동한 의무소방대. [사진 소방청]

충북 제천시 하소동 8층 스포츠시설 건물 화재 당시 출동한 의무소방대. [사진 소방청]

의무소방대, 21년 만에 폐지

최근 4년간 의무소방대 출동 실적. 차준홍 기자

최근 4년간 의무소방대 출동 실적. 차준홍 기자

소방청은 26일 “제73기 의무소방원 92명이 지난 13일 전역했다”며 “이들을 마지막으로 의무소방대 운영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의무소방대는 부족한 현장 소방 인력 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한 제도다. 2001년 3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주택화재 현장에서 소방공무원 6명이 순직한 사고를 계기로 도입했다. 같은 해 8월 14일 ‘의무소방대설치법’을 제정·공포했고, 2002년 3월 29일 최초로 제1기 의무소방원 209명이 뽑혔다.

의무소방대는 현역병 자원 중 국어·국사·상식 등 필기시험과 체력검정·면접시험 등을 거쳐 선발했다. 군사특기는 육군 보병 소총수다. 복무가 끝나면 육군 병장 계급을 받는다.

의무소방대는 지원한 광역자치단체 관할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장점 등으로 지원자가 몰려, 경쟁률이 14:1을 넘나들기도 했다. 소방 내부에선 ‘차세대 엘리트 군단’이나 ‘제2의 카투사’로 불린다. 실제 의무소방대원의 90% 이상이 서울대·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명문대 출신이었다. 올해 퇴소한 73기까지 총 1만2128명이 중앙소방학교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 전국 소방서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국방부가 현역 입영 대상자가 부족해지자 2018년 전환복무·대체복무 제도를 폐지하면서 의무소방대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런 정책 영향을 받은 건 의무경찰(의경)도 마찬가지다. 의경은 지난달 17일 마지막 기수 208명이 전역했다.

경기소방본부 소속 의무소방대가 굴절차 등 소방특수차에 탑승해 고층 화재 진압 훈련에 참가했다. [사진 소방청]

경기소방본부 소속 의무소방대가 굴절차 등 소방특수차에 탑승해 고층 화재 진압 훈련에 참가했다. [사진 소방청]

의무소방, 연간 26만~52만건 출동

최근 4년간 화재 진압에 참여한 의무소방대 실적. 차준홍 기자

최근 4년간 화재 진압에 참여한 의무소방대 실적. 차준홍 기자

의무소방대는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약 10년 동안 소방공무원 화재 진압 작전을 도왔다. 2003년 경북 청도 버섯농장 화재 당시 7일 동안 활약했고, 2006년 경기도 서해대교 29중 추돌 사고 현장 등에서 구급차에 동승해 부상자를 날랐다.

상황이 달라진 건 2012년 경기도 고양시 한 제조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였다. 당시 진압 활동을 보조하던 일산소방서 의무소방원이 2층 건물 5m 높이에서 추락해 머리·척추를 심하게 다쳐 순직했다. 이후 화재 진압 업무에 투입하는 의무소방원이 감소했다.

일각에서는 의무소방대 폐지로 소행 행정이나 구급 분야에서 업무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24시간 소방서에서 근무하며 야간·새벽 등 손이 부족한 시간에 업무를 거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강화도 등 인력은 부족한데 관할지는 넓은 일부 도서 지역에서는 의무소방원이 사실상 소방공무원 역할을 대체하기도 했다.

의무소방대원 대신 소방관 채용키로 
이에 대해 정부는 의무소방대 폐지 이후 부족한 인력을 공무원(소방관)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박근혜 정부 말 4만4148명이던 소방직 공무원은 문재인 정부 말 6만6587명으로 2만명 이상 늘었다. 이에 따라 소방직 공무원 인력은 지난 5년간 모든 부처 중 가장 많이 증가했다.

남화영 소방청장은 “국민 안전에 기여한 의무소방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아쉽지만, 이들의 헌신·열정은 소방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며 “의무소방대 폐지 이후 현장 대응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력을 재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