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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국의 현재도, 미래도 질식시킬 과도한 사교육 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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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학원에 수능 시험과 관련된 광고 문구가 쓰여져 있다.   정부는 '공교육 제고 방안'을 발표하고 최근 논란이 된 수능 킬러문항 등과 관련해 이날부터 2주간 학원 과대·과장 광고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 연합뉴스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학원에 수능 시험과 관련된 광고 문구가 쓰여져 있다. 정부는 '공교육 제고 방안'을 발표하고 최근 논란이 된 수능 킬러문항 등과 관련해 이날부터 2주간 학원 과대·과장 광고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 연합뉴스

소득 관계없이 사교육비가 식비·주거비 능가

코로나 와중에도 학원수 급증, 사교육만 번창

한국은 지금 사교육에 짓눌려 있다. 가구 소득이 많든, 적든 마찬가지다. 경기는 유례없는 불황인데 사교육 산업만 점점 번창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계소득 최상위 20%인 5분위 가구 중 만 13~18세 자녀가 있는 가구의 월평균 학원·보습 교육 소비지출은 114만3000원이었다. 해당 가구 월평균 총지출이 653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지출의 17.5%를 사교육에 쓰고 있는 것이다.

이들 가구의 월평균 식료품·비주류 음료 소비 지출은 63만6000원, 주거·수도·광열비 지출은 53만9000원이었다. 중·고교 자녀 사교육비가 밥값과 주거비를 합친 것과 맞먹는다는 얘기다. 현실에선 더한 경우도 많다. 학원비로 월 수백만원이 들어간다는 40~50대 중산층 가구가 부지기수다.

사교육비 때문에 허리가 휘는 사정은 1~4분위 가구라고 다르지 않다. 특히 최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월 사교육비 지출액도 48만2000원에 달해 식음료 지출(48만1000원)이나 주거비 지출(35만6000원)보다 많았다. 저소득층마저도 식비나 주거비보다 학원에 내는 돈이 더 많은 현실, 이것이 과연 정상인가. 이럴 거면 의무교육, 공교육은 대체 왜 있는 것인가. 사교육은 어느새 한국 사회의 ‘필수재’가 됐다. 지난 3월 정부가 내놓은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전국 기준 78.3%, 서울은 84.3%나 된다. 역대 최고다. “주변에서 다 사교육을 시키니 우리 아이도 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이러니 사교육만 호황이다. 심지어 코로나19 와중에도 몸집을 불렸다. 중앙일보 취재 결과 지난 5월 기준 서울 전역의 학원은 총 2만4284개로 서울 편의점 수의 세 배에 달한다. ‘학원 공화국’ ‘사교육 공화국’이란 말이 절대로 지나치지 않다. 지난해 초·중·고생 사교육비 지출 총액은 26조원, 국내총생산(GDP) 2150조원의 1.2%가 넘는다. 학생 수 감소에도 전년보다 10.8% 늘어났다.

사교육은 한국의 현재만 질식시키는 것이 아니다. 세계 최저 출생률의 핵심 요인이다. 최근 신한라이프 조사에서 만 25~39세 남성이 저출산 원인으로 꼽은 첫 번째 항목이 ‘과도한 육아 및 교육 비용’이었다. 여성은 ‘직장생활과 자녀 양육을 병행하기 쉽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에 이어 두 번째 항목으로 이를 지목했다. 자녀 사교육 부담에 젊은 층이 출산을 망설이게 된 것이다. 사교육이 학생과 생계비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현실, 망국병이 따로 없다. 학교 수업만 성실하게 받아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거나 원하는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것, 모든 국민의 숙원이다. 무엇보다 공교육 정상화에 역점을 둔 총체적인 교육개혁이 시급하다. 사교육 공화국을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