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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 바뀌자 "위상 추락했다"…유학 메카 '훈몽재' 무슨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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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몽재에서 대학생들이 한학 등 유학을 배우고 있다. [사진 훈몽재]

훈몽재에서 대학생들이 한학 등 유학을 배우고 있다. [사진 훈몽재]

하서 김인후가 후학 가르치던 곳…순창군, 2009년 중건

전북 순창군 쌍치면에 자리한 ‘훈몽재(訓蒙齋)’는 조선 중기 대표 성리학자이자 인종의 스승인 하서 김인후(1510~1560년)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송강 정철을 비롯해 당대 내로라하는 학자들을 가르친 하서는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뤘다.

훈몽재는 임진왜란·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완전히 소실됐다. 순창군이 2009년 11월 하서 후손으로부터 훈몽재 옛 터를 기증받아 17억원을 들여 다시 지었다. 시가 직영하는 훈몽재 1년 예산은 인건비·관리비 등 1억~1억5000만원이다. 2012년 훈몽재 자취가 남은 유지(遺址)는 전라북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189호로 지정됐다.

이후 훈몽재는 국문·한문·역사·민속학 등을 전공하는 교수·대학생은 물론 청소년·일반인도 한학과 유학 정신을 배우러 오면서 ‘유학 교육 중심지’로 불린다. 인구 소멸 지역인 순창군(5월 기준 인구 2만6855명)의 ‘생활인구’를 늘리는 데도 도움이 되고 있다. 생활인구는 통근·통학·관광·업무 등을 목적으로 지역을 월 1회 이상 방문하는 체류인구를 포함한다.

2017년엔 훈몽재와 한국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 생가터 등을 잇는 ‘선비길’까지 완공되면서 연간 1만2000~1만8000명의 관광객이 훈몽재를 찾고 있다.

전북 순창군 쌍치면에 자리한 '훈몽재'. 조선 중기 대표적 성리학자인 하서 김인후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강학당을 순창군이 2009년 옛 터에 중건했다. [사진 훈몽재]

전북 순창군 쌍치면에 자리한 '훈몽재'. 조선 중기 대표적 성리학자인 하서 김인후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강학당을 순창군이 2009년 옛 터에 중건했다. [사진 훈몽재]

“中대학생 연수 계획 불투명”…군 “지원키로”

그러나 최근 훈몽재를 둘러싸고 “위상이 추락했다”는 말이 나온다. 순창군수가 바뀌면서 주요 사업이 멈추고 예산이 삭감되면서다. 25일 훈몽재 등에 따르면 오는 8월 베이징대·인민대 등 중국 8개 대학 교수·학생 40여명이 훈몽재에서 12일간 연수할 계획이다. 중국 대학 측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여름 2주씩 훈몽재에 머물며 유학을 공부해 왔다. 코로나19 여파로 3년간 교류가 중단됐다가 올해 재개됐다.

하지만 순창군은 몇 달씩 초청 여부조차 결정하지 않았다는 게 훈몽재 측 주장이다. 이에 현지 대학 측은 비자를 발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김충호(75) 훈몽재 산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지난 4월부터 순창군 측에 수차례 ‘중국과 학술 교류를 속개할 테니 지원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아직 답이 없어 연수 계획이 불투명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면 하서 선생이 유학의 뿌리를 심어 놓은 훈몽재가 폐지되는 건 시간 문제”라고도 했다.

훈몽재 산장인 고당 김충호(오른쪽 둘째) 선생이 중국 대학 교수·학생 등을 상대로 강의하고 있다. [사진 훈몽재]

훈몽재 산장인 고당 김충호(오른쪽 둘째) 선생이 중국 대학 교수·학생 등을 상대로 강의하고 있다. [사진 훈몽재]

40억 연수관 건립 백지화…“기존 시설로 충분”

또 전임 황숙주 군수 시절 군의회 동의를 얻어 세운 훈몽재 연수관(가칭 어암관) 건립 계획도 백지화됐다. 군이 40억원을 들여 훈몽재 뒤편에 교육 시설을 추가로 짓기로 했으나, 지난해 7월 새로 취임한 최영일 군수가 사업을 취소했다.

이에 대해 순창군은 “(중국 대학 방문 계획은) 내부 검토와 조율 과정을 거치느라 늦어졌다. 최근 예산 지원도 결정됐다”며 “다음 주에 훈몽재 측에 알리고, 중국 대학 측에도 초청장을 발송할 예정”이라고 반박했다. 연수관 건립 예산 삭감에 대해선 “훈몽재 강습생은 연간 300~400명 수준으로 기존 시설로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최 군수는 취임 이후 전임 군수를 탓한 적이 없다. 예산 삭감과 무관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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