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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소송 직행'은 옛말?…노사 91% "대안적 분쟁해결 선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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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열린 '노동관계 발전과 ADR : 전문가 원탁토론회'. 중앙노동위원회 제공

지난 22일 열린 '노동관계 발전과 ADR : 전문가 원탁토론회'. 중앙노동위원회 제공

노사 분쟁이 발생했을 때 파업이나 소송보다는 화해·조정·중재 등을 일컫는 대안적 분쟁해결(ADR)이 더 선호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ADR 확산을 추진하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

25일 중앙노동위원회가 한국노동경제학회에 의뢰한 연구용역에 따르면 노동위를 경험해본 노사 91%가 “대안적 분쟁해결 제도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효율적인 분쟁해결 방법으로 ’당사자들의 자율적 해결’(44.2%)에 이어 ‘노동위원회를 통한 해결’(40.1%)이 가장 많았다. 뒤이어 ‘민간전문가를 통한 해결’(11.1%), ‘법원(소송)을 통한 해결’(4.5%) 순으로 이어졌다. 자율적인 해결이 안 되더라도 법정으로 곧장 달려가는 대신 노동위원회를 통한 조정을 선호한다는 비율이 높다는 의미다.

이미 한국노총 산하 서울시 버스 노조는 지난 3월 ‘교섭결렬→조정신청→조정중지→파업’이라는 전통적인 관행을 깨고 30년 만에 처음으로 사전조정을 통해 임금 협상을 평화롭게 마쳤고, 뒤이어 부산·대구·인천·울산 등에서도 잇달아 조기 타결이 퍼졌다. 민주노총 산하 일부 노조도 사전조정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대안적 분쟁해결은 실질적인 노동분쟁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노동분쟁 해결에 가장 큰 애로사항에 대해 근로자 측은 ‘시간이 걸린다’를, 사용자 측은 ‘감정대립’을 꼽았다. 김기승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안적 분쟁해결 제도를 활용하면 노동분쟁 평균 처리 기간을 절반 가량 단축할 수 있고, 집단적 노사분규 약 23%를 예방해 근로손실도 연간 약 1003일 단축할 수 있다”며 “소송 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연간 약 2591억원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분쟁 해결까지 걸리는 시간도 단축하고 중재자를 통한 감정대립도 완화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 현장에서 활약했던 전문가들도 파업 대신 조정으로, 심판·소송 대신 화해로 노동 분쟁 해결책이 변화할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 22일 열린 ‘노동관계 발전과 ADR 전문가 원탁토론회’에서 노동운동 1세대 문성현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우리나라 노사 문제는 과거 대립과 갈등, 투쟁의 단계에서 나아가 조율, 조정, 화합의 과정으로 넘어가고 있다. 일본, 영국 등 선진국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그 길은 간 것”이라며 “제3의 전문가 조정을 통한 노사 자율의 분쟁해결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길성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도 “노동분쟁을 법적인 처리가 아닌 화해, 조정 등
대안적 분쟁해결을 통해 해결하면 사회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실질적 권리구제가 가능하다”며 “대안적 분쟁해결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대안적 분쟁해결 확대를 위해선 노동위원회의 업무 과중도 해결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위원회엔 2007년 비정규직 차별 시정, 2019년 직장 내 괴롭힘, 지난해 성차별·성희롱 시정 등 새로운 업무가 계속 추가되고 있지만, 정작 조사관 수는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전국 지방노동위원회 조사관은 모두 158명으로, 연간 1만4144건의 사건을 처리했다. 1인당 약 90건꼴이다.

해외에선 노동관계 안정을 위해 대안적 분쟁해결 제도와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많은 편이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은 2007년 ‘재판 외 분쟁해결절차의 이용 촉진에 관한 법’, 일명 ‘ADR법’을 제정하고 관련 민간 전문가를 양성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안적 분쟁해결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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