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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14분 버틴 죽음의 작전…'스미스 특임부대' 오산 죽미령 전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950년 7월 초 스미스 특임부대의 오산 이동과정을 형상화 한 전시물. 오산 유엔군 초전기념관에서 볼 수 있다. 사진 오산시

1950년 7월 초 스미스 특임부대의 오산 이동과정을 형상화 한 전시물. 오산 유엔군 초전기념관에서 볼 수 있다. 사진 오산시

1950년 7월 5일 새벽 경기도 오산 죽미령고개. 전날 북한군이 수원을 함락하면서 경부국도(현 1번 국도)는 피난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피란민 행렬 방향과 거꾸로 미8군 24사단 소속 스미스(Charles B. Smith) 특수임무부대가 죽미령으로 이동했다. 유엔(UN) 안보리에서 “북한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한국에 모든 지원을 하자”는 제83호 결의안이 통과된 지 일주일만이었다.

죽미령 전투에 참전한 스미스 부대원들이 무반동총으로 북한군의 전차를 조준하고 있다. 사진 국가보훈부

죽미령 전투에 참전한 스미스 부대원들이 무반동총으로 북한군의 전차를 조준하고 있다. 사진 국가보훈부

북한군 남진 지연시키는 임무 

스미스 중령을 포함한 특임부대 540명에게 부여된 핵심 임무는 북한군 남진을 지연시키는 것이었다. 죽미령은 전략 요충지였다. 경부국도 외 인근에 경부선 철로도 지난다.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부산~여수~목포 방향으로 이어지는 주요 남진 경로다. 죽미령 봉우리 중 하나인 반월봉에선 이 ‘길목’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스미스 특임부대는 경부국도 양옆 능선과 철로를 따라 배치됐다.

죽미령 교전 당시 스미스 부대원들의 배치도. 사진 유엔군 초전기념관

죽미령 교전 당시 스미스 부대원들의 배치도. 사진 유엔군 초전기념관

이날 오전 7시30분쯤 소련제 T-34 전차 8대를 선두로 한 북한군 제107 전차연대가 스미스부대 관측망에 들어왔다. 특임부대는 전차가 부대 보병 진지 1.8㎞ 앞 병점리(현 화성 병점동) 부근까지 접근하자 105㎜ 곡사포를 쐈다. 오전 8시 16분, 이렇게 전투가 시작됐다. 특임부대는 75㎜ 무반동총, 2.36인치 로켓포 공격까지 이어갔다.

6시간 14분 버틴 '죽음의 작전'  

하지만 북한군 지상군 병력 5000여명도 오산에 왔다. 당시 이들을 태운 트럭 행렬만 10㎞에 달할 정도였다고 한다. 기습에 당황했던 북한군은 전열을 가다듬었다. 스미스 부대를 점점 포위하듯 감쌌다. 이날 오후 2시 결국 북한군은 반월봉에서 북으로 뻗은 능선을 점령했다. 동시에 죽미령 좌·우로 돌아 스미스 부대를 완전히 포위하기에 이른다.

스미스 특임부대는 고립됐다. 통신이 끊겨 후방에 포병 지원사격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궂은 날씨에 항공지원도 불가했다. 탄약도 바닥났다. 스미스 중령은 5일 오후 2시 30분쯤 부대원이 전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결국 철수를 명령할 수밖에 없었다. 부대는 병력·전투장비가 열세인데도 6시간 14분을 버텨냈다. 더글라스 맥아더 초대 유엔군사령관은 회고록에서 죽미령 전투를 “부산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피할 수 없었던 ‘죽음의 작전’이었다”고 평가했다.

특임 부대원 540명 가운데 181명(33.5%)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북한군도 127명이 죽거나 다쳤다. 전차 33대 중 7대가 완파 또는 반파됐다. 특히 남침 선봉장 중 한명이었던 105전차사단 문화담당 부사단장인 안동수 대좌가 목숨을 잃었다.

인천상륙작전 65주년을 맞은 2015년 인천 중구 월미도 앞 해상에서 열린 인천상륙작전 재연행사에서 해군의 공기부양정(LSF)이 해상돌격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인천상륙작전 65주년을 맞은 2015년 인천 중구 월미도 앞 해상에서 열린 인천상륙작전 재연행사에서 해군의 공기부양정(LSF)이 해상돌격 하고 있다. [중앙포토]

낙동강 방어선 구축으로 이어져  

25일 오산시에 따르면 죽미령 전투 덕분에 국군과 유엔군은 열흘가량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는 ‘낙동강 방어선’을 가능하게 했고, 결국 ‘인천상륙작전’ 발판이 됐다.

이와함께 죽미령 전투는 6.25전쟁에서 한미동맹의 첫 작품이었다. 스미스 중령 역시 1981년 12월 7일에 남긴 회고문에서 “죽미령 전투는 우방과 동맹국이 파멸하도록 절대 방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데 기여했다”고 썼다.

스미스 특임부대원 초전기념비. 540명 부대원을 상징하는 540개의 돌을 쌓아 만들었다. [사진 오산시]

스미스 특임부대원 초전기념비. 540명 부대원을 상징하는 540개의 돌을 쌓아 만들었다. [사진 오산시]

6·25전쟁 72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오전 경기 오산시 유엔군초전기념관으로 현장학습을 나온 아이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뉴스1

6·25전쟁 72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오전 경기 오산시 유엔군초전기념관으로 현장학습을 나온 아이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뉴스1

현재 오산 죽미령 고개엔 스미스 특임부대 540명의 넋을 기리는 ‘초전기념비’ 등이 서 있다. 기념비는 부대원 한명 한명을 상징하는 540개의 돌을 쌓아 만들었다고 한다. 죽미령 전투 참전 역사를 기록한 ‘유엔군 초전기념관’과 ‘스미스평화관’도 있다. 오산시는 매년 7월 5일 죽미령평화공원에서 ‘유엔군 초전 기념식 및 스미스 부대 전몰장병 추도식’을 열고 있다.

이권재 경기 오산시장(왼쪽)이 9일 서울지방보훈청에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을 악수하며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오산시=연합뉴스

이권재 경기 오산시장(왼쪽)이 9일 서울지방보훈청에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을 악수하며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오산시=연합뉴스

"한미동맹 상징 초전 기념식, 국가주도로 키워야"  

올해는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의미가 특별하다. 이권재 오산시장은 이달 초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을 만나 초전 기념식을 국가 주도 행사로 격상해줄 것을 건의했다. 박 장관은 “죽미령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이 6·25전쟁에서 처음 전사한 유엔군인 만큼 잘 살펴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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