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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사원' 찬성, '퀴어축제' 반대…홍준표 속 모를 계산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홍준표 대구시장이 17일 오전 대구 중구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리는 제15회 대구퀴어문화축제 현장을 찾아 ″퀴어축제 불법 도로 점거에 대해 대구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뉴스1

홍준표 대구시장이 17일 오전 대구 중구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리는 제15회 대구퀴어문화축제 현장을 찾아 ″퀴어축제 불법 도로 점거에 대해 대구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뉴스1

“대구의 상징인 동성로 상권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고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성문화를 심어줄 수 있는 퀴어(Queer·성소수자) 축제를 나도 반대한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지난 8일 페이스북에 이 글을 올릴 때만 해도 동성애를 반대하는 보수 진영의 정치인이 으레 쓴 글이란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 17일 대구 중심가인 동성로에선 대구시 공무원과 경찰이 물리적 충돌하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대구시청 공무원들이 현장으로 출동해 퀴어 축제 주최 측의 무대 설치를 “불법 도로점용”이라며 막아서자 경찰이 “신고를 마친 적법한 집회인 만큼 보호해야 한다”며 제지하는 과정에서 생긴 충돌이었다. 홍 시장은 행사가 끝난 뒤에도 “퀴어들의 파티장을 열어준 대구경찰청장은 대구시 치안 행정을 맡을 자격이 없다”며 김수영 대구경찰청장을 향해 연일 공세를 폈다.

23일엔 경찰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이유로 대구시청을 압수수색을 하자 또 다시 양측이 충돌했다. 경찰은 지난 2월 대구참여연대가 “대구시 공식 유튜브가 홍 시장의 개인 홍보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며 홍 시장과 담당 공무원 등을 고발한 데 따른 정당한 조치라고 밝혔다. 하지만 홍 시장은 “대구경찰청장이 이제 막 가는구나. 수사권을 그런 식으로 행사하면 깡패다. 어디 끝까지 가보자”며 격하게 반발했다. 홍 시장은 거기에 더해 대구경찰청 직원의 대구시청 ‘출입 금지령’도 내렸다.

17일 오전 대구 중구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리는 제15회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행정대집행에 나선 공무원들이 행사 차량의 진입을 막으려 하자 경찰이 이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공무원과 경찰이 충돌해 뒤엉켜 있다. 뉴스1

17일 오전 대구 중구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리는 제15회 대구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행정대집행에 나선 공무원들이 행사 차량의 진입을 막으려 하자 경찰이 이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공무원과 경찰이 충돌해 뒤엉켜 있다. 뉴스1

퀴어 축제 반대로 시작된 일이 이렇게 확전하자 정치권 안팎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홍 시장이 싸움을 끈질기게 이어가는 데엔 노림수가 있을 것”(대구권 A 의원)이란 이유다.

A 의원은 “기독교 진영이 홍 시장에게 그동안 꽤 뿔나 있다”며 “동성애 반대 노선을 분명히 해 보수 기독교 표심에 손짓을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홍 시장은 지난 8일 페이스북 글에서 “퀴어 축제 행사를 반대하는 대구 기독교 총연합회의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지지한다”는 내용도 덧붙였었다.

홍 시장은 그동안 기독교 신자 입장에서 다소 불편한 행보를 보여왔다. 지난해 11월 대구 스타디움에서 신천지 집회가 열릴 수 있게 대관을 허락한 게 대표적이다. 홍 시장은 “종교의 자유”라고 했지만 기독교계는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하며 배척하고 있다. 지난 4월엔 홍 시장이 국민의힘 지도부에게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의 ‘손절’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정통 기독교를 향해 “왜 이런 사람(전광훈 목사)을 이단으로 규정하지 못하느냐”고 말한 게 논란이 됐다. 일부 기독교인이 “홍 시장이 왜 우리에게 도발하느냐”는 불편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극우성향의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이끄는 자유통일당 당원들이 9일 대구시 동인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이슬람사원(모스크) 건립에 찬성 입장을 밝힌 홍준표 시장을 규탄하는 한편 오는 17일 대구 도심에서 열리는 대구퀴어문화축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극우성향의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이끄는 자유통일당 당원들이 9일 대구시 동인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이슬람사원(모스크) 건립에 찬성 입장을 밝힌 홍준표 시장을 규탄하는 한편 오는 17일 대구 도심에서 열리는 대구퀴어문화축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게다가 최근엔 기독교계 입장에서 상당히 민감한 이슬람교 문제까지 번졌다. 대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축 문제를 놓고 지역 주민과 경북대 이슬람 학생들 간의 갈등이 지난하게 이어져 온 상황에서 홍 시장이 사원 건축을 지지하는 발언을 잇따라 한 탓이다. 홍 시장은 지난 10일 페이스북에 “이슬람 포비아(공포)를 터무니없이 만드는 특정 사이비 기독교 세력들은 대구에서 추방돼야 한다”고 적었고, 지난달 30일엔 “글로벌 대구를 위해서는 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불식해야 한다. 일부 종교 세력의 반대에 함몰되면 대구의 폐쇄성을 극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7일엔 “이슬람도 기독교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니 서로 잘 지내면 좋겠다”는 주장까지 폈다. 그러자 일부 유튜브 채널에선 “기독교와 이슬람의 뿌리가 같다고 주장한 홍 시장을 규탄한다”(강석종 충령교회 목사 겸 자유대한애국수호단장)는 영상이 올라오는 등 기독교계의 반발이 상당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기독교계에 보수 유권자가 많이 포진한 만큼 홍 시장이 이들과 계속 대립각을 세우면 안 된다는 계산을 했을 수 있을 것”이라며 “동성애 반대야 말로 강력한 시그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21일 오후 대구 동구 신천동 대구정책연구원에서 열린 대구경북신공항 사업설명회에 참석해 사업대행자 선정 준비를 위한 기본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지역 기업 관계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홍준표 대구시장이 21일 오후 대구 동구 신천동 대구정책연구원에서 열린 대구경북신공항 사업설명회에 참석해 사업대행자 선정 준비를 위한 기본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지역 기업 관계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동성애 반대가 기독교계뿐 아니라 이슬람계에도 어필하는 ‘일거양득’이 될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대구권 B 의원은 “홍 시장이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할 때 ‘오일 머니’를 유치하려고 애쓰고 있다”며 “이슬람 역시 기독교 못지않게 동성애에 배타적인 종교인 만큼 퀴어 축제 반대는 이슬람권에 본인의 선명성을 보이려는 포석”이라고 해석했다. 결국 홍 시장이 이슬람 사원 건립을 찬성하고, 퀴어 축제 반대 메시지를 내고 있는 게 대구·경북 지역의 염원인 신공항 건설을 위한 계산된 정치 행보란 얘기다. 실제 홍 시장은 지난달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 벤치마킹 및 해외 자본 유치를 위해 아랍에미리트와 말레이시아 등 무슬림 국가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홍 시장의 퀴어 축제 반대를 다른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홍 시장 측 관계자는 “퀴어 집회를 반대한다고 해서 행사를 막으려 한 게 아니라 시위대의 도로 무단 점거를 반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실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을 추진하는 만큼 대통령실과 보폭을 맞춰 대구시에서 무분별한 거리 집회를 허용하지 않는 모습을 선제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정부와의 보조 맞추기란 뜻이다. 홍 시장도 지난 19일 기자 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치면서 집회와 시위 천국이 됐다”며 “주요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하는 불법이 일상화됐는데, 대구에서만이라도 그걸 바로잡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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