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진의 기억] 안개가 감추고 있는 것들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45호 31면

DMZ_철원군 풍천원 들판, 2010년. ©박종우

DMZ_철원군 풍천원 들판, 2010년. ©박종우

안개 자욱한 숲에 키 큰 나무들이 무리를 이룬 모습이 어느 먼 나라의 원시림 같기도 하고, 꿈에서 본 장면을 화가에게 그리게 했다는 몽유도원도의 풍경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곳을 직접 방문했던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가 ‘목가적 풍경 속에서 부조리극이 공연되는 극장’ 같다고 말한, 바로 한반도의 비무장지대 DMZ이다.

지난 2010년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서 국방부가 비무장지대의 현재를 기록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사진가 박종우와 그의 카메라에 DMZ를 개방했고, 60년간 민간인 출입이 불가하던 그곳에서 최초의 사진 촬영이 이루어졌다.

남과 북 사이 폭 4㎞의 중립지대. 한반도의 허리를 자르며 임진강 하구로부터 동해안까지 248㎞ 길이를 따라 이어지는 철책. 박종우는 때로는 날 선 시선으로, 때로는 애잔한 마음으로 철책과 초소들, 무장 군인들과 시설, 동물들과 자연 생태까지, 비무장지대의 여러 면면을 1년 여에 걸쳐 촬영했다.

그 ‘DMZ’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이 사진은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박쥐OP에서 늦가을 새벽에 찍은 철원군 풍천원 들판의 풍경이다. 천여 년 전에는 후고구려의 궁예도성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지만 이제는 토성도 석탑도 사라지고, 덩굴이 덮고 나무뿌리가 밀어내면서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마저 지워졌다. 일제 강점기까지 농사를 지은 기록이 남아있는 논자리들도 늪으로 바뀐 지 오래다.

사진에서는 안개에 가려져 있지만, 그 속에 수많은 두루미가 들어있다는 이야기를 사진가로부터 들었다. 발목만 잠기는 것을 좋아하는 두루미들에게 딱 맞는 발목쟁이 늪이 너르게 펼쳐진 때문이다. 두루미의 풍경보다 더 아래, 지층에 묻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인지뢰들은 사진 속 안개가 감추고 있는 또 하나의 실재다.

6.25 전쟁의 결과로 만들어졌으나, 인간의 발길이 닿을 수 없었기에 역설적이게도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지대로 남은 DMZ. 사진을 찍은 그때보다 숲은 더 두터워졌을 것이고, 주기도 해마다 쌓여 어느덧 정전 70주년을 맞고 있다. 저 숲에 들어서 두루미들처럼 발 디딜 날은 어느 해일까.

박미경 류가헌 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