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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대 걸쳐 살았는데…일본, 재일동포에 '투표권 불허' 이유

중앙일보

입력

한국에서 외국인 지방선거 투표권 관련 논란이 일면서 일본의 상황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당초 2005년 국회에서 외국인 투표권을 허용하는 공직선거법이 통과될 당시, 일본 내 재일동포들의 참정권 요구를 국가적으로 지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재일동포 1000여명이 2001년 6월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 민단 주최로 열린 ‘영주 외국인의 지방참정권 부여 결의 대회’에 참석해 일본 국회에 관련 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중앙포토

재일동포 1000여명이 2001년 6월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 민단 주최로 열린 ‘영주 외국인의 지방참정권 부여 결의 대회’에 참석해 일본 국회에 관련 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중앙포토

결론적으로 일본의 경우 중앙선거와 지방선거 양쪽 다 외국인의 투표권을 허용하지 않는다. 일본 헌법 제15조는 '공무원을 선정하고 이를 파면하는 것은 국민 고유의 권리'라고 규정하고 있고, 이에 따라 일본 국적을 가진 성인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한다. 따라서 외국인이 선거권을 취득하려면 일본으로 귀화해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게 필수다.

재일동포들의 참정권이 일본 사회 이슈가 된 것은 여느 영주권자와는 다른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에 따르면 한국 국적을 지닌 채 일본 영주권을 가진 사람은 현재 약 45만 명이고, 이 중 30만명은 '특별영주권' 소지자다. 특별영주권을 가진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한반도 출신과 그 후손들로, 길게는 4~5세대에 걸쳐 일본 땅에 터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단순 이주가 아닌 정주민에, 일본인들과 똑같이 납세의 의무를 다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일정 수준의 참정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왔다. 민단은 1990년대 이후 중점 운동으로 '재일동포 지자체 참정권 획득 운동'을 전개하며 소송까지 진행했지만 1995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에서 결국 패소했다. 그러나 당시 최고재판소는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도 "외국인 영주권자에 대한 지방선거 선거권 부여는 위헌이 아니며 입법 정책상의 문제"라는 의견을 냈다.

이에 따라 일본 최대 야당인 입헌민주당 일부 의원들과 일본공산당 등이 1998년 '영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자치단체 선거권 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자민당 보수파와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통과는 번번이 좌절됐다.

2018년 8월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일본 정부에 재일 한국인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지자체 선거권을 갖지 못하는 것은 '차별적 상황'이라 지적하며 참정권 부여를 권고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민단의 조연서 부국장은 "지금도 일본 각 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등에 재일동포의 투표권을 요구하는 서한 등을 정기적으로 보내고 있다"면서 "2010년대 들어 한·일 관계가 악화한 후론 관련 논의가 좀처럼 진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국인들 몰려올 것" 

외국인의 정치 참여에 대한 일본 사회의 거부감은 여전하다. 지난 2021년에는 도쿄(東京)도 무사시노(武蔵野)시 의회가 3개월 이상 거주한 외국인들에게 지방 행정과 관련한 주민투표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조례안을 제출했다가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지자체 소관의 주민투표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보수파들은 "외국인 참정권 요구로 이어질 것", "중국인들이 대거 무사시노로 몰려들 것"이라며 거세게 반대했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는 이미 외국인을 주민투표에 참여시키고 있다. 무사시노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일본 전국 기초자치단체 1741곳 중 주민투표제를 도입한 곳은 78곳, 이 중 43개 지자체가 외국인에게 투표 자격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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