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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중 정책"vs"中도 안 줘"…외국인 투표권 제한, 與 당론 추진

중앙일보

입력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국민의힘이 중국인의 지방선거 투표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한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2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 국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국가의 국민에게만 우리도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이 상호주의 차원에서 맞다”며 “이에 ‘외국인 투표권 제한법’을 당론 법안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김기현 대표가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밝힌 ‘상호주의에 입각한 외국인 투표권 제한’ 방침의 후속 조치다. 김 대표는 연설에서 “중국에 있는 우리 국민에게는 참정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며 “왜 우리만 빗장을 열어줘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현행법은 영주권을 취득하고 3년이 지난 만 18세 이상 외국인에게 지방선거(기초·광역의원 및 단체장) 투표권을 부여한다.

권성동·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2월 외국인 투표권 제한법(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여권은 이를 당론으로 채택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2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외국인 투표권 제한법을 야당이 동조하지 않으면 차기 총선 공약으로 앞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①혐중인가, 상호주의인가

그러나 쟁점이 만만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3월 기준 외국인 선거권자는 총 12만7623명으로 이 가운데 78%인 9만9969명이 중국 국적자다. 또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가 ‘베팅’ 발언을 한 이후 불거진 사안이다. 야당이 “혐중 정책”이라고 반격하는 이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일 저녁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예방해 인사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일 저녁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를 예방해 인사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여당은 “상호주의에 입각한 방침일 뿐 특정 국가를 향한 감정적 조치는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한국이 2006년 지방선거부터 자국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자 스페인은 상호주의에 따라 한국 국적자에게 투표권을 줬다”며 “외국인 투표권도 국제 기준이나 관례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2005년 법 개정 때와 상황이 달라진 점도 여권은 부각하고 있다. 당시 법 개정은 일본 정부의 재일교포 참정권 부여를 촉구하기 위한 성격이었는데, 아직 일본 정부는 투표권을 주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개정된 법의 실익이 적어서 원상복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고 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외국인도 세금을 내는 만큼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참여시켜야 한다”며 “한국이 다문화 시대로 진입했기 때문에 외국인의 정치적 권리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②“중국인이 기초단체장 당락 결정”

그렇다면 실제로 외국인 유권자가 판세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까. 외국인 유권자는 2006년 6726명에서 2022년 12만7623명으로 크게 늘었다.

지난 5월 방한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트뤼도 총리는 올해 3월 중국이 캐나다 집권여당 자유당 후보를 지원했다는 선거개입 의혹에 대해 특별 독립조사를 지시했었다. 김현동 기자

지난 5월 방한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트뤼도 총리는 올해 3월 중국이 캐나다 집권여당 자유당 후보를 지원했다는 선거개입 의혹에 대해 특별 독립조사를 지시했었다. 김현동 기자

여권은 특히 외국인 유권자가 많이 거주하는 서울 남부권이나 인천 혹은 경기 남부 지역 등이 이들의 집단적 의사표시로 당락이 바뀔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중국이 캐나다·호주 등에서 친중(親中) 성향 정치인을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개입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며 “중국인이 집단표를 행사하면 기초단체장 선거에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③미·중·일은 안 주는 외국인 투표권

현재 미국·중국·일본은 외국인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는다. “투표권은 국민 주권의 원리에 따라 국적자에게만 부여된 고유의 권리”라는 논리다. 아시아 국가로 한정했을 때도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반면에 유럽 국가들은 외국인 투표권을 광범위하게 부여하고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인 아일랜드·스웨덴·덴마크·네덜란드·벨기에 등은 국적을 불문하고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준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은 EU 회원국 국적자에 한해서, 영국·호주 등은 영연방국가 국적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유럽 국가는 이민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 이민을 받는데 다소 소극적인 국내와는 사정이 다르다”고 했다.

④“野의 친중행보는 표 때문” vs “집단표 나오기 어렵다”

법안 개정 시 여야의 득실은 어떻게 될까. 현재로서는 “민주당은 중국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여권)는 의견과 “중국인이라고 특정 정당을 지지하진 않아 법 개정의 영향력은 한정적일 것”(야권)이라는 주장이 갈린다.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TV토론회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왼쪽)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당시 장영승 전 화교협회 사무국장은 박 후보 지지 연설을 해 논란을 샀다. 오종택 기자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TV토론회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왼쪽)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당시 장영승 전 화교협회 사무국장은 박 후보 지지 연설을 해 논란을 샀다. 오종택 기자

아직 외국인 투표권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뚜렷한 분석은 없다. 다만 신경전은 적지 않았다. 특히 2021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대만 국적의 화교(華僑)인 장영승 전 화교협회 사무국장은 박영선 민주당 후보 지지연설을 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중국인 도움을 받는 박 후보는 ‘현대판 민비’”라고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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