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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기록조차 없는 아동 2236명, 출생신고 사각지대 없애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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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설치돼 있는 베이비박스. 교회에 따르면 2009년 베이비박스 설치 이후 총 2076명의 아기가 맡겨졌다. [연합뉴스]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 설치돼 있는 베이비박스. 교회에 따르면 2009년 베이비박스 설치 이후 총 2076명의 아기가 맡겨졌다. [연합뉴스]

23명 샘플 중 4명 이미 사망, 전수조사 필요성

국민 87.4% 찬성 ‘출생통보제’ 도입 서둘러야

그제 경기도 수원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가 발견됐다. 용의자는 친모인 30대 여성 A씨다. 그는 2018년과 2019년 출산 직후 두 아이를 살해하고 냉장고에 보관해 온 혐의를 받는다. 남편과 세 자녀를 키우고 있는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워 아기를 낳자마자 살해했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경남 창원에서 태어난 B군은 생후 76일께 영양결핍으로 사망했다. B군은 병원 진료나 복지 혜택 등을 받지 못했다. 경기도 화성에서는 20대 여성 C씨가 경찰 조사에서 “2021년 출산 뒤 키울 능력이 되지 않아 인터넷을 통해 아이를 넘겼다”고 했다. 이 아이들 모두 출생신고가 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얼마 전 감사원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출생등록이 안 된 영유아 2236명을 발견했다. 이 중 23명을 조사했는데 아동 4명이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나머지 2200여 명도 생사여부를 모르고, 살아 있어도 학대나 유기 위험에 노출돼 있을 가능성이 커 전수조사 필요성이 제기된다.

가뜩이나 저출산 문제로 신음하는 나라에서 이미 태어난 아이들조차 ‘유령 아동’처럼 살게 하는 것은 정부가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게 한다. 현재 의료기관은 정부에 출생 사실을 통보할 의무가 없다. 1개월 안에 신고하지 않은 부모에게만 5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뿐이다. 형사처벌도 물론 없다.

‘유령 아동’은 보건·교육 혜택에서 소외되는 것은 물론, 방임이나 학대 위기에 놓이기 쉽다. 지난 3월 친모의 방치로 사망한 3개월 영아도 출생신고가 없었다. 2021년 친모에 의해 살해된 8세 여아 역시 출생등록이 안 돼 있다. 정부의 미비한 행정체계가 ‘유령 아동’ 양산을 방조해 온 셈이다.

당장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알리는 ‘출생통보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는 도입 의사를 밝혔지만 의료계의 반대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러나 국민권익위 조사 결과 87.4%가 이 제도를 찬성하는 만큼 실시할 명분이 충분하다. 다만 출생등록을 꺼리는 임신부의 병원 밖 출산 우려가 있어 신원 노출 없이 출산할 수 있는 ‘보호출산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혼외자 출생신고는 생모만 가능케 한 가족관계등록법 46조 2항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지난 3월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후 2025년까지 법 개정을 주문했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국회의 의지만 있으면 당장 개정이 가능하다. 출생신고는 인간의 천부적 권리다. 유엔아동권리협약(7조)도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돼야 한다”고 규정해 놨다. 더 이상 ‘출생 미등록 아동’이 나오지 않도록 정부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조속한 해결책을 내놓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