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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의료계의 질서, 플랫폼에 맡기고 싶습니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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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치원 카카오벤처스 상무(내과 전문의)

김치원 카카오벤처스 상무(내과 전문의)

3년이 넘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우리나라에서 비대면 진료가 처음 시행됐다. 감염병 대유행 탓에 병원을 찾을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면서, 기다리는 번거로움 없이 진료를 받는 편리함을 모두가 누렸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 출구를 앞둔 지금, 재진 중심의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사실상 제도적으로 시행되는 첫 비대면 진료이다.

그러나 재진 중심의 원칙에 대해 의사의 기득권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초진 허용 등 제약 없는 비대면 진료를 주장하는 플랫폼 업체들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국민의 편의 증진 및 병원 선택권 확대 등을 주된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의사로서의 임상 경험과 디지털 헬스케어 비즈니스를 모두 경험한 입장에서 플랫폼 업계의 주장은 우려되는 지점이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가치보다 편의를 중시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지 예를 들어보자. 의료 이용과 관련해 대표적인 문제로 지방에서 소아암 환자가 진료를 받기 힘들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가능한 큰 서울의 병원에서 진료받고자 하는 선택이 일반화하고, 지방 병원을 찾는 환자가 끊기다시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며 항암 치료를 받고 고향으로 내려온 소아암 환자들이 응급 시 갈 수 있는 집 근처 병원이 사라지고 있다.

비대면 진료에 대해 초진을 대폭 확대할 경우에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비대면 진료에 최적화된 전문의원이 우후죽순 생기며 전국의 환자를 쓸어갈 것이다. 환자가 찾지 않는 동네병원은 도태되고, 집 근처에서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은 줄어드는 게 불 보듯 뻔하다.

비대면 진료에 초진을 허용할 경우 예상되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의료계의 질서를 의료진이 아닌 플랫폼이 좌우한다는 점이다. 초진을 대폭 허용할수록 의사의 의료적 판단보다 환자의 선택을 앞세운 플랫폼 업체, 즉 알고리즘이 결정권을 거머쥔다. 이미 각종 민간 플랫폼에 광고가 범람하는 현실에서도 알 수 있듯, 비대면 진료 플랫폼 또한 초진 환자가 특정 병원에 쏠리도록 알고리즘을 설계할 가능성이 크다.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코로나19 비상사태 동안에도 일부 플랫폼 업체는 의사가 특정 약품을 처방하도록 유도한 바 있다.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의료서비스는 대면 중심으로 하되, 신체적인 제약이나 비상상황 등에 한해 보조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비대면 진료의 초진 확대에 관심이 크신 분들께 질문드린다. 의료계의 질서를 의료진에게 맡기고 싶습니까, 아니면 플랫폼 업체들에 맡기고 싶습니까.

김치원 카카오벤처스 상무(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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