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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배터리' 잘 나간다는데, 무역 적자 벌써 9200억…무슨 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해 3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인터배터리' 전시회에서 관람객이 전기차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지난해 3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인터배터리' 전시회에서 관람객이 전기차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전기차에 들어가는 한국산 2차전지, 일명 ‘K-배터리’의 해외 진출이 눈부시다. 하지만 해외에서 배터리를 역(逆)수입하는 경우가 늘면서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섰다. 앞으로 더 가속할 이 상황, 두고만 봐도 괜찮은 걸까.

22일 한국무역협회의 5월 리튬이온 축전지(2차전지) 수출입 통계를 분석한 결과 무역수지가 2억4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적자 규모가 역대 최대로 불었다. 수출(5억8900만 달러)은 1년 전보다 2.6% 줄었는데, 수입(8억2900만 달러)이 같은 기간 112% 늘어난 영향이다.

2차전지 무역수지는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12년 16억 달러 흑자를 낸 뒤 매년 흑자 행진을 이어왔다. 2019년 34억2900만 달러 흑자를 내 ‘정점’을 찍더니 지난해 16억4600만 달러 흑자로 반 토막 났다. 그러더니 올해 들어 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누적 적자만 7억1600만 달러(약 9200억원)에 달한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전기차와 비교하면 더 두드러진다. 전기차(EV)·하이브리드차(HEV) 수출은 2018년 35억6600만 달러에서 2022년 144억4000만 달러로 305% 늘었다. 같은 기간 2차전지 수출은 43억8800만 달러에서 73억4100만 달러로 6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수출 통계만 놓고 보면 국산 전기차는 훨훨 나는데, 전기차 원가의 40~5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인 2차전지는 굼뜬 모양새다.

무역수지 적자 구조에는 ‘통계의 착시’ 측면도 있다. 신용민 산업통상자원부 배터리전기전자과장은 “LG에너지솔루션(LG엔솔)·SK온 같은 국내 배터리 업체가 중국 공장에서 배터리를 만들어 한국으로 역수입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 공장에서 만든 배터리를 국산 전기차에 넣어 수출할 경우 2차전지 수출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2차전지 수출은 줄었지만, 핵심 소재인 양극재 수출은 지난달 11억9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17.5% 늘었다. 수출 규모 자체도 배터리보다 크다. 과거보다 배터리 완제품 수출이 주춤해 보일 수 있지만, 관련 부품·소재 수출이 늘어난 만큼 배터리 산업의 수출 기여도가 여전히 크다는 얘기다.

한국이 올해부터 배터리 수입국으로 돌아선 건 해외 생산량을 공격적으로 늘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다. 전기차 3대 시장인 중국·미국·유럽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하려면 현지 생산이 유리하다. 최근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보조금을 받고,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현지 공장 신설이 불가피해졌다.

한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배터리 업계는 완성차가 철저히 ‘갑’인 구조다. 국내에서 배터리를 생산해 수출하기보다 완성차 업체 주문에 따라 해외 현지 공장에서 생산해 즉시 공급해야 수주 계약을 따는 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현실적인 한계라지만, 미래 핵심 산업 생산기지의 잇따른 해외 진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도체와 마찬가지로 국내 일자리 창출 문제뿐 아니라 기술 보안 문제도 걸려있어서다. IRA의 경우 지정학적 문제가 얽힌 만큼, 향후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언제든 불확실성에 노출될 수 있다.

현대기아차처럼 해외에 생산 공장이 있고, 국내 2차전지 업체와 합작한 경우엔 배터리 수급이 원활하지만, 규모가 작은 르노나 KG모빌리티(옛 쌍용차)의 경우 국산 2차전지 수급 문제가 현실로 다가왔다. 귀도 학 르노 부회장은 지난 2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본사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을 만나 “르노차 부산공장에 연간 20만대 규모 전기차 생산 설비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르노코리아 관계자는 “국산 전기차가 자유무역협정(FTA) 효과를 누리려면 국산 배터리를 탑재해야 하는데 배터리 수급 부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KG모빌리티는 올해 출시할 전기차에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할 예정이다.

정부가 각종 세액공제, 투자지원 혜택을 주며 국내 생산을 장려하는 전기차 산업과 달리 2차전지 분야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 2차전지 공장 신·증설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전기차 산업과 비슷한 수준으로 인센티브를 늘려야 한다”며 “국내를 고성능·차세대 2차전지 생산 거점으로 만들고, GM을 비롯한 해외 전기차 생산 공장을 한국으로 유치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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