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베트남전 기밀' 펜타곤 페이퍼 폭로한 내부고발자, 췌장암 사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다니엘 엘스버그가 '펜타곤 페이퍼' 폭로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1973년 당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다니엘 엘스버그가 '펜타곤 페이퍼' 폭로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1973년 당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때는 1969년, 미국 랜드(RAND) 연구소의 한 사무실. 미국을 대표하는 외교ㆍ안보 싱크탱크 중 하나인 이곳에서 한 연구자가 몰래 복사기를 켰다. 수백장에 달하는 복사를 몰래 한 그의 이름은 다니엘 엘스버그. 그가 몰래 복사한 기밀문서는 훗날 ‘펜타곤 페이퍼’라고 불리며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숨기고 싶어했던 사실들을 다수 폭로한다. 그가 이 문서를 처음엔 뉴욕타임스(NYT), 후엔 워싱턴포스트(WP)에 건네면서 베트남 전쟁의 진실이 드러났고, 반전 평화 운동에 불이 붙었다. 엘스버그는 내부 고발자의 아버지 격인 셈. 그런 그가 지난 16일 82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이코노미스트는 22일 최신호 오비추어리 기사에서 그에 대해 “역사학자이면서 정책 입안자였고 결의에 찬 운동가였다”고 평했다.

반전 평화 운동에 매진한 다니엘 엘스버그. 2010년 당시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반전 평화 운동에 매진한 다니엘 엘스버그. 2010년 당시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엘스버그는 하버드대 등을 졸업하고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부 장관의 오른팔이었던 존 맥노튼 아래에서 일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부설 국제연구소의 수석 연구원이었던 그는 처음엔 베트남 전쟁을 지지했다. 베트남에서 해군 장교로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펜타곤 페이퍼 작성에 관여하면서 그의 생각은 바뀐다. 펜타곤 페이퍼의 요지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확신이 없으면서도 장병들의 희생을 무릅쓰고 전쟁을 계속했다는 것이었다. 베트남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는 결정을 내리고, 계속 전쟁을 이어간 해리 트루먼과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대통령은 물론, 당시 현직 리처드 닉슨까지 모두가 감춰온 사실을 기록해놓은 이 문서는 총 47권에 달한다. 본문만 총 4000쪽이 넘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이 참전을 결정한 계기인 이른바 통킹만 사건부터 조작이었다는 것이다.

통킹만 사건은 1964년 발생했다. 미국 정보수집함대가 베트남 인근 통킹만에서 공격을 받았는데, 미국 정부는 이것이 북베트남, 즉 베트콩 측의 어뢰 공격이라고 단정해 보복 폭격을 했다. 이후 미 의회는 참전 결의를 채택했다. 그러나 베트콩의 도발은 미국의 조작이었다는 것이 1급 기밀 펜타곤 페이퍼에 적시돼있었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 등 동맹국의 젊은이들을 전장(戰場)으로 이끌었다는 사건이 조작이었던 셈이다. 한국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국 동맹국 중 가장 많은 인원을 파병했다. 베트남과 베트콩 측의 희생자까지 합하면 희생자들은 최소 300만 최대 500만명으로 추산된다.

영화 '더 포스트.'. 메릴 스트립은 베트남전 기밀을 폭로해야 한다는 기자들과, 하면 안 된다는 정부 및 지인들 사이에서 고심하다 기자들의 편에 서는 워싱턴 포스트(WP) 캐서린 그레이엄 발행인을 연기했다.

영화 '더 포스트.'. 메릴 스트립은 베트남전 기밀을 폭로해야 한다는 기자들과, 하면 안 된다는 정부 및 지인들 사이에서 고심하다 기자들의 편에 서는 워싱턴 포스트(WP) 캐서린 그레이엄 발행인을 연기했다.

엘스버그는 이 문서를 몰래 복사했지만 바로 폭로하지는 않았다. 국무부와 국방부(펜타곤)에서 일했던 그의 공무원으로서의 고뇌가 읽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는 학자부터 평화 운동가 등을 두루 만난 뒤, 이 기밀문서를 세상에 내놓기로 결심한다. 그가 제일 먼저 펜타곤 페이퍼를 건넨 NYT의 닐 쉬한 기자는 거대한 특종을 했고, 미 연방정부는 즉각 보도를 중단할 것을 요청하지만 NYT는 거부해 법정 소송에 이른다. WP 또한 보고서 입수에 공을 들이고, 보도 여부를 놓고 고심하는데, 그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가 ‘더 포스트’다.

워낙 자료가 방대했고 1급 기밀 문서였기에 엘스버그는 자료를 직접 건네는 대신, 자료를 둔 아파트 열쇠를 NYT 닐 쉬한에게 건넸다. 이후 그는 자신이 문서를 넘긴 내부 고발자임을 자진해 밝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 이 정보를 미국 국민에게 숨기는 일에 더는 협조할 수 없었다. 이(폭로)는 나 자신이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고 한 것이며 이 결심의 후과에 대해 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엘스버그는 이후 기소됐으나 펜타곤 및 미 연방수사국(FBI) 등의 그에 대한 도·감청 의혹 등이 터지면서 무혐의 처리됐다. 그는 이후 폭로 과정을 상세히 기술한 책을 펴냈고, 평화 운동가로 활약했다. 그의 가족은 16일 엘스버그의 공식 홈페이지에 “그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히 영면했다”고 전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