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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재훈의 음식과 약

커피가 암을 유발한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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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유튜브 세계는 희한하다. 3~4년 전에 논란이었던 문제가 마치 요즘 일인 양 다시 떠오른다. 커피에 발암물질이 들어있다는 이야기가 그렇다. 커피를 볶는 과정에서 아크릴아미드라는 물질이 생겨난다. 탄수화물 함량이 높은 음식을 고온으로 가열할 때 생겨나는 물질이다. 커피에서 아크릴아미드를 제거하는 방법은 없으며 커피를 마시면 아크릴아미드를 섭취하게 된다.

하지만 매우 적은 양이며 이 물질이 암 유발 위험을 높이는가도 의문스럽다. 동물실험에서 암 유발 위험을 높이는 결과가 나오긴 했으나 사람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사람이 도저히 섭취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을 실험동물에게 먹였을 때 나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커피 공장에서 원두를 고르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베트남 커피 공장에서 원두를 고르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아크릴아미드는 탄수화물 함량이 높은 식품을 고온에서 조리할 때 생겨난다. 아미노산의 하나인 아스파라긴과 당이 반응하여 생성되는 물질이다. 프렌치프라이에 대표적으로 많이 들어있다. 하지만 아크릴아미드가 암 위험을 높일 정도로 감자튀김을 많이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매일 감자튀김 75㎏을 2년 동안 먹어야 동물실험과 비슷한 조건이 된다.

집에서 요리할 때도 아크릴아미드가 생겨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전분질 음식을 볶고 굽고 튀기면 아크릴아미드가 만들어진다. 빵, 과자, 차, 기타 농산가공품에도 들어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섭취하는 아크릴아미드의 양은 매우 적은 편이다.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바탕으로 식약처에서 추산한 바에 따르면 하루 체중 1㎏당 0.1㎍ 수준으로 다른 나라(0.16∼2㎍/㎏)와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최근 연구 결과는 암 유발 위험을 주장하며 커피를 마시지 말라는 일부의 주장과는 정반대 쪽에 서 있다. 하루 2~3잔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건강하다는 쪽이 다수이다. 2020년 리뷰 연구에서 다수의 논문을 분석한 결과, 커피는 간암, 전립선암, 파킨슨병, 심장병, 2형 당뇨병, 우울증 위험 감소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말기 대장암 환자 1171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하루 한 잔 커피를 마신 사람이 안 마신 사람보다 생존율이 11% 높아졌다. 디카페인 커피를 마셔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암 예방이나 치료를 위해 커피를 마시라는 말은 아니다. 식품 연구의 한계상 커피를 마시는 것과 암 위험 감소에 인과관계를 알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커피를 마신다고 암 위험이 높아질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먹는 어떤 음식에든 수천 종의 다양한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커피 속에도 카페인뿐만 아니라 폴리페놀과 항산화물질이 풍부하다. 특정 음식이나 성분을 극단적으로 악마화하기보다 골고루 적당히 즐기는 게 건강에도 최선이다. 그런 정답은 변하지 않는다.

정재훈 약사 · 푸드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