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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결정, 저임 근로자와 소상공인 우선 배려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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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저임금의 합리적 결정을 위한 제언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 경제학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 경제학

최저임금 결정이 올해에도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정부와 노동계의 노·정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건설노조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응, 고공 농성 근로자 강제 진압 등을 이유로 한국노총까지도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불참을 선언하면서 노·정 갈등은 악화일로다.

게다가 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한 노사 간 시각차가 너무 크다.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4.7% 오른 1만2000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경영계는 동결되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이 시간당 9620원인데, 3.95% 오르면 내년도 최저임금은 1만원이 넘게 된다.

노동계와 경영계 의견 차이 커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 키 쥐고
업종별 최저임금제 시행 필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해야

시장경제 체제에서 최저임금제의 목적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임금으로 최소한의 생활도 유지할 수 없는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최저임금은 시장임금(marketing clearing wage) 위에서 정해지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고용주는 사업을 접거나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근로자를 해고하여야 한다. 결과적으로 일부 근로자는 직장을 잃거나 일하는 시간이 줄어 소득이 떨어진다.

이런 이유로 일자리 충격을 고려하여 최저임금제를 신중하게 운용하는 나라가 많다. 독일은 최저임금제 도입을 주저하다 2015년에야 도입했고, 이탈리아는 법정 최저임금제가 없다.

중위임금의 62.2%, OECD 8번째

202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중위임금 대비 62.2%로 최저임금제도가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8번째로 높다. OECD 평균은 55.2%, (이탈리아를 제외한) 주요 7개국(G7) 평균은 49.2%다. 2018년부터 22년까지 우리나라의 누적 최저임금 인상률은 41.6%로 G7 국가인 캐나다 32.1%, 영국 26.0%, 일본 13.1%, 독일 19.0%, 프랑스 7.4%보다 월등히 높았다. 미국(연방정부)은 오르지 않았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우리나라가 최저임금제를 1986년에 도입할 때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에서는 반대했다. 정치적 고려로 최저임금제를 적용해 임금을 끌어올렸던 대부분의 남미 국가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시장에서 근로자 실질임금이 지속해서 올랐기 때문이다. 1982년부터 87년까지 우리나라 실질임금은 연평균 6.8%씩 상승했다.

1987년 ‘6·29선언’을 계기로 노조 세력이 신장하면서 1989년부터 최저임금 논의는 노조 보호를 받는 근로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노동계와 경영계 간 대립의 장으로 변질했다. 취약한 저임 근로자 보호가 우선돼야 할 최저임금제가 도입 목적과 궤도를 한참 이탈한 대표적 사례가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이다.

문 정부, 최저임금 과속 고용 참사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서 최저임금은 2018년 16.4%, 2019년 10.9% 올랐다. 정부는 높아진 최저임금 수준을 감당할 수 없는 영세 사업장의 근로자 급여를 재정으로 일부 보전하여 주기까지 하였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를 비롯한 여러 석학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는 우리 정부의 급속한 최저임금 인상과 재정을 통한 소득보전에 대해 크게 우려했는데, 이들의 우려는 결국 현실화했다.

2년간 30% 가까이 올라간 최저임금으로 고용주들은 근로자를 줄이거나 고용시간을 단축했고, 고용상황은 참사 수준으로 악화했다. 2018년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10만개 아래였고, 고용률은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하락했다. 주로 재정으로 만든 고령자 일자리만 늘었다. 2018년에 없어진 일자리 4개 중 1개는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일자리가 줄면서 저소득층의 소득이 감소해 분배구조가 오히려 악화했다. 저소득층의 경우 재정보조 등 이전소득이 근로소득을 추월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취업자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자영업자에겐 치명적이었다. 근로자와 소상공인 사이에 ‘을(乙)끼리 전쟁’이 벌어졌다. 특히 주휴수당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는 정부의 주휴수당 관련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이 큰 타격을 안겼다.

처음엔 부정적 효과를 강하게 부정했던 정부도 고용 상황이 참사 수준으로 악화하자 결국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2018년 5월 정부는 노동계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부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법 개정을 해 정책 실패를 자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7월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최저임금위 결정은 존중하나 정부 의지만으로 안 돼 1만원 목표는 어려워졌다”면서 사실상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의 포기를 선언했다.

근로자 12.7%가 최저임금 못 받아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이 너무 높다는 것은 최저임금 미만의 시간당 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300만 명 내외라는 것에서 확인된다. 2022년 현재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12.7%인 275만6000명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전체 근로자의 3분의 1이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고 있다. OECD에 따르면 최저임금 이하의 근로자 비중은 우리나라가 멕시코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다. 2001년에는 전체 근로자의 5% 미만인 57만7000명이 최저임금 수준 아래의 급여를 받았는데, 2018년 300만 명을 넘었고, 2021년에는 321만5000명이었다.

최저임금을 지키면 폐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많은 소상공인이 범법자가 되고 있다. 일부 온라인 구직 사이트엔 아르바이트생에게 최저시급 이하 급여를 지급하겠다는 구인 공고가 버젓이 올라와 있다.

‘정책임금’이 ‘교섭임금’으로 변질

최저임금은 저임 근로자와 소상공인을 우선 배려해 결정돼야 한다. 그것이 제도의 취지에 맞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달리해야 한다. 업종마다 지급능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법에도 규정돼 있다. 그러나 노동계 압력에 밀려 1989년 최저임금 결정 이래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업종별 최저임금을 시행하기는 내년이 적기다.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3%대인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는 소상공인을 고려하여 일률적으로 동결하거나 아주 낮은 수준의 인상률을 고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최저임금의 결정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이는 법 개정을 해야 하는 사안이다. 작년까지 위원 전원의 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된 해는 일곱 번에 불과하다. 어느 해는 근로자 위원, 어느 해는 사용자 위원이 중도에 사퇴하거나 표결에 불참했다.

조직근로자를 대표하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노동계를 대표하고 경영계도 대기업, 중견기업을 주로 대표하는 것이 현행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는 취약한 저임 근로자를 위한 일자리는 무시된다는 것이 최저임금제 운용의 경험이다. ‘정책임금’인 최저임금이 ‘교섭임금’으로 변질하여 상대적으로 고소득자인 조직근로자의 높은 임금 인상을 보장하고 지원하는 현재의 최저임금제를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 혹은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이 노사 양측의 입장을 좁히는 노력을 하는 현재 구조보다는 노사 의견을 참조하여 현재 법에 명시된 4개의 기준 외에 ‘고용에 대한 영향 등’을 포함한 보다 합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거 선례도 있다. 최저임금제 시행 초기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표준생계비가 최저임금 결정의 가장 중요한 준거였다. (표준생계비는 일본 제도를 따라서 일본 인사원의 생계비 추정방법에 기초해 산정했다.) 생계비 산정기관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었고 생계비 산출과정에 노사가 수시로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는 것으로 노사정이 합의한 바 있다.

매년 정하기보다 격년제 고려해야

또한, 최저임금에 포함되는 임금의 범위를 대폭으로 확대해야 한다. 기본급 비중이 낮은 우리나라 임금체계의 특성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임금 근로자가 혜택을 보고 저임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분배구조가 악화하는 등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화한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2016년 기준 연봉 6000만원이 넘는 근로자 5만 명이 최저임금의 적용대상이 되어 임금이 2017년과 2018년에 적어도 30% 가까이 올랐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과도한 임금 격차로 청년들은 중소기업을 기피해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정년 연장 등과 맞물려 논의되고 있는 임금체계 개편에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도 포함돼야 한다. 산입범위가 확대돼야 최저임금 인상으로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가 확대되는 일이 없어진다.

끝으로 매년 최저임금을 정하기보다는 미국 등과 같이 필요하면 인상하거나 혹은 ‘2년마다’ 정하는 것 등을 고려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예외적인 최근 몇 년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근원적 물가상승률은 2% 내외로 매우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박영범 한성대 명예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