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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작 시리즈물 연출·각본…영화 3편 연달아 찍는 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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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영화감독들이 각본은 물론 연출까지 맡는 OTT 오리지널 시리즈가 늘고 있지만, 몰입해 보게 만드는 플롯의 힘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사냥개들’. [사진 넷플릭스]

영화감독들이 각본은 물론 연출까지 맡는 OTT 오리지널 시리즈가 늘고 있지만, 몰입해 보게 만드는 플롯의 힘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사냥개들’. [사진 넷플릭스]

“여덟 편 쓰는 게 거의 지옥 같았어요. 각본 작업하는 동안 두통이 심해서 ‘그냥 어지러운 건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나중에 보니 목 디스크였더라고요.”

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사냥개들’을 만든 김주환 감독의 말이다. 565만 관객을 동원한 코믹 액션 ‘청년경찰’(2017)을 비롯해 ‘사자’(2019), ‘멍뭉이’(2023) 등 줄곧 영화만 만들어온 김 감독은 웹툰 원작의 ‘사냥개들’로 첫 드라마 연출에 도전하며 각본 작업까지 맡았다.

영화감독들이 각본은 물론 연출까지 맡는 OTT 오리지널 시리즈가 늘고 있지만, 몰입해 보게 만드는 플롯의 힘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택배기사’. [사진 넷플릭스]

영화감독들이 각본은 물론 연출까지 맡는 OTT 오리지널 시리즈가 늘고 있지만, 몰입해 보게 만드는 플롯의 힘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택배기사’. [사진 넷플릭스]

그는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원작이 있어도 이걸 8부작 시리즈로 옮기는 과정은 정말 큰 도전이었다”며 “온몸이 찢어진 상태에서 ‘청년경찰’을 세 번 연달아 찍는 느낌이었다”고 돌이켰다.

목 디스크뿐 아니라 탈모에 과민성 대장 증후군까지 앓았다는 김 감독의 웃지 못할 ‘시리즈물 도전기’는 비단 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들이 오리지널 시리즈를 앞다퉈 내놓으면서 영화감독들이 연출을 맡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글로벌 흥행작 ‘오징어 게임’(2021)의 황동혁 감독이 각본 집필과 연출을 해내며 “스트레스로 이빨이 6개 빠졌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황 감독 역시 ‘오징어 게임’ 전까지는 ‘도가니’(2011), ‘남한산성’(2017) 등 영화 연출과 각본 경험만 있던 터였다.

영화감독들이 각본은 물론 연출까지 맡는 OTT 오리지널 시리즈가 늘고 있지만, 몰입해 보게 만드는 플롯의 힘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카지노’. [사진 디즈니+]

영화감독들이 각본은 물론 연출까지 맡는 OTT 오리지널 시리즈가 늘고 있지만, 몰입해 보게 만드는 플롯의 힘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카지노’. [사진 디즈니+]

고군분투한 결과 ‘오징어 게임’처럼 작품성과 흥행 모두 달성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최근 들어서는 영화감독들이 내놓은 시리즈가 서사 면에서 혹평을 받는 사례가 누적되는 추세다. 지난달 공개된 넷플릭스 6부작 시리즈 ‘택배기사’는 영화 ‘감시자들’(2013), ‘마스터’(2016)의 조의석 감독이 처음 드라마에 도전하며 감독·각본을 겸한 작품으로, 한반도가 사막화돼 산소 배달이 필수가 됐다는 디스토피아적 설정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동명의 원작 웹툰에서 따온 세계관으로 흥미를 끌었을 뿐, 서사에는 구멍이 많다는 비판을 받으며 넷플릭스 공식 톱10 순위에서 3주 만에 자취를 감췄다. 조 감독 역시 인터뷰에서 “영화와 달리 에피소드마다 기승전결을 만들어야 하는 게 힘들었다. 드라마 감독들이 존경스럽더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영화감독들이 각본은 물론 연출까지 맡는 OTT 오리지널 시리즈가 늘고 있지만, 몰입해 보게 만드는 플롯의 힘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썸바디’. [사진 넷플릭스]

영화감독들이 각본은 물론 연출까지 맡는 OTT 오리지널 시리즈가 늘고 있지만, 몰입해 보게 만드는 플롯의 힘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썸바디’. [사진 넷플릭스]

이 밖에도 지난해 공개된 넷플릭스 ‘썸바디’(정지우 감독), 티빙 ‘욘더’(이준익 감독), 디즈니+ ‘카지노’(강윤성 감독) 등 유명 영화감독이 만들었지만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든 OTT 시리즈들이 수두룩하다. 이들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 보게 만드는 플롯의 힘이 부족하다는 시청자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가 많은 영화계 관습이 그대로 OTT 시리즈물에 적용되고 있지만, 2시간 안팎의 영화와 6~8부작 시리즈 간 호흡과 작법 차이를 이해하고 이를 극복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영화계 인력이 드라마로 들어오면서 제작 완성도가 높아진 장점이 있지만, 시리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전개가 너무 느슨하거나 개연성에 허점이 많은 작품도 늘어났다”며 “일부 제작자들은 ‘영화를 그냥 길게 늘려 놓으면 드라마가 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데, 전혀 아니다.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다음 회차를 기대하게 하는 이음새와 흐름이 중요하고, 캐릭터를 다채롭게 구성하되 각 인물의 서사를 깊이 있게 풀어야 전체 이야기가 앙상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도 “‘영화는 감독,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듯, 영화는 짧은 순간 인상을 남기는 이미지의 힘이 강하다면 드라마는 서사를 디테일하고 친절하게 풀어야 한다”며 “어떤 OTT 드라마 중에는 절반으로 줄였어도 무방했을 텐데, 수지타산을 고려해 억지로 늘린 인상을 줄 정도로 부실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사와 관련한 불만이 되풀이되는 상황에 대해 영화계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관계자는 “영화감독들이 만든 시리즈를 보면 초반엔 볼만하다가 갈수록 템포가 느려지면서 몰입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더라”며 “OTT 시리즈물을 어떤 호흡으로 쓰고 연출하고 촬영해야 하는지 특화된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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