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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막판까지 고심…'불체포특권 포기' 결단 내린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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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지난 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재석의원 297명 중 ‘찬성 139, 반대 138, 기권 9, 무효 11’로 박빙 부결된지 112일 만이다. 돈봉투 의혹, 김남국 코인 등으로 당 전체가 도덕성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새 혁신기구 출범을 앞둔 이 대표가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이 대표는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저에 대한 정치 수사에 대해 (국회의원의)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검찰의 무도함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사전 배포한 연설문에는 없던 내용이다.

이 대표는 이날 48분간 진행된 연설 대부분을 윤석열 정부 비판에 할애한 뒤, 마지막 6분을 남겨놓고 자신의 불체포특권 포기를 언급했다. 그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소환한다면 10번 아니고 100번이라도 응하겠다”며 “압수수색, 구속기소, 정쟁을 일삼는 무도한 ‘압구정’ 정권의 실상을 국민께 드러내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발언에 민주당 의원은 손뼉을 쳤고, 국민의힘 의원은 야유를 쏟아냈다.

이 대표 측에 따르면, 이 대표는 불체포특권 포기를 미리 별도 원고로 준비해 둔 상황에서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했다. 대부분 당 지도부도 이 대표의 결심을 이날 오전 비공개 당 최고위원회에서 전해 들었다. 당내에선 20일 출범하는 ‘김은경 혁신위원회’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이 대표가 결단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귀국하는 시점(24일)을 앞두고 자신의 거취를 둘러싼 당내 불협화음을 선제적으로 차단한 측면도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9일 국회에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교섭단체 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9일 국회에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교섭단체 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선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이 대표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받아볼 만하다는 계산이 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은 지난 3월 이 대표의 대장동 개발 비리 관련 배임 혐의와 성남FC 뇌물 혐의 등을 재판에 넘겼으나, 이 대표 측은 최근 “검찰의 유일한 동아줄인 유동규의 (법정) 진술이 갈팡질팡하고 있다”(박찬대 최고위원)는 등 부쩍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한 친명계 의원은 “주변에선 불체포 특권을 섣부르게 포기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이 대표는 불체포 특권 폐기가 자신의 대선 공약이었다는 점에서 고민이 많았다”고 전했다.

비명계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비명계 재선 의원은 “이렇게 한쪽 팔을 내놓고 싸워야 승산이 있다. 이제야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 인사청문회 등 대여 공세로 전환하기에 앞서 사법리스크 이슈를 최소화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물론 정의당에서도 “뒤늦은 조치”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말로만이 아니라 실천하면 좋겠다”며 “이제 와서 지나간 버스를 다시 세우겠다는 건데, 지금까지 불체포 특권을 남용했던 민주당 사람들의 체포동의안을 국회에서 지금 다 다시 처리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만시지탄”이라면서 “돈 봉투 의혹 체포동의안 표결 이전에 이 선언이 나왔더라면, 진작 대선 공약이 제대로 이행됐더라면 하는 생각을 떨굴 수 없다”고 적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7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의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7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의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이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윤석열 정부에 대해 “민생, 경제, 정치, 외교, 안전을 포기했고, 국가 그 자체인 국민을 포기했다”며 “한마디로 ‘5포 정권’, 국민 포기 정권”이라고 혹평했다. 특히 경제 분야에 대해 “무역수지는 15개월째 적자” “역대급 세수 펑크”라고 했다.

대신 제시한 것은 ‘돈 풀기’인 확대재정정책이었다. 이 대표는 “민생과 경제회복을 위해 35조원 규모의 추경편성을 추진하겠다”며 “국채를 다소 늘려서라도 재정이 경제회복을 위한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경제 당국이 “국세 수입이 수십조원 부족하다고 우려하면서 35조원 상당의 추경을 하자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음에도, 재차 국채 발행을 통한 추경 편성을 요구한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와 관련해선 “(일본의) 비용이 문제라면 방류를 반대하는 국제사회와 함께 보관 비용을 지원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중 관계에 대해선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중국의 역할도 중요하다”며 “국익을 최우선으로 한 ‘전략적 자율외교’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중국에 대한 굴종 외교도 모자라, 이 와중에 중국에 간 의원들이 잘하고 있다며 성과를 나열했다”며 “이게 이 대표가 이야기하는 ‘전략적 자율외교’인지 묻고 싶을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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