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찾는 킬러문항 없앤다”…尹의 ‘공정수능’ 사교육킬러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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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학교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협의회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학교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협의회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정부와 여당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이른바 '킬러문항'이라 불리는 초고난도 문제를 출제하지 않기로 했다. 킬러문항이 치솟는 사교육비의 근본 원인이라는 이유에서다.

국민의힘과 교육부는 19일 학교 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협의회를 열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정부가 방치한 사교육 문제에 대해 학생, 학부모, 교사가 모두 힘든 와중에 학원만 배를 불리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대통령께서 여러 차례 문제를 지적했음에도 신속히 대책을 내놓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하면서 ‘쉬운 수능’ 논란이 커졌다. 이에 대해 이 부총리는 “대통령이 발언한 ‘공정한 수능’은 ‘물수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학원으로 아이들 내몰지 않도록 하는 수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킬러문항은 사교육 근본 원인”이라며 “앞으로는 공정한 수능이 되도록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출제를 배제하겠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앞서 3월부터 초고난도 문항 배제를 지시했지만, 지난 1일 치른 6월 모의평가에서 지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수능과 모의평가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이규민 원장은 이날 “6월 모의평가와 관련하여 기관장으로서 책임을 지겠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 원장은 “2024학년도 수능의 안정적인 준비와 시행을 위함”이라며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오답률 높은 킬러 문항…“교육과정 밖 출제가 문제”

킬러문항은 수능 각 과목에서 가장 어려운 문항으로, 최상위권 변별력의 핵심으로 여겨진다. 통상 국어는 철학, 경제, 과학 등 전문 지식을 포함한 비문학 문항이 킬러로 꼽히고, 수학은 주관식과 객관식 마지막 한두 문항이 킬러문항으로 출제된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고에서 학생들이 교실에서 시험 시작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고에서 학생들이 교실에서 시험 시작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예를 들어, 2023학년도 수능 국어에서는 독서 부문의 '클라이버의 기초 대사량 연구'를 다룬 과학 문항(17번)이 킬러문항으로 꼽힌다. 상용로그, 기울기, 편차 등의 용어가 나와 문과 학생들이 특히 어려웠다는 평이 많았다. 이 문항의 정답률은 EBS 추정 15.1%에 그쳣다. 2022학년도 수능 국어에서 나온 '헤겔의 변증법' 관련 문항도 난해한 소재의 킬러문항으로 꼽히는데, 추정 정답률이 31.1%였다.

교육계에서는 킬러문항이 고교 수준을 넘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난해 수능 수학 46개 문항 가운데 8개(17.4%)가 고교 교육과정의 수준과 범위를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최수일 사교육걱정 수학교육혁신센터장은 “단순히 어렵다고 해서 킬러인 것은 아니다”며 “수능의 킬러문항은 미적분, 통계 등 너무 많은 개념을 혼합해서 출제하곤 하는데, 이런 경우는 교육과정을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과정의 선후가 분명한 수학, 과학에 비해 국어는 킬러문항이 교육과정을 벗어났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2020학년도 수능 국어에서 논란이 된 경제 지문은 '자기자본', '위험가중자산', '바젤협약' 등의 생소한 용어가 등장하는 킬러문항으로 꼽히지만, 교육과정을 준수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교과서 집필 경험이 있는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독해력을 평가하는 수능에서 교과서 밖의 지문을 출제하는 건 당연하다”며 “지문이 생소하다는 이유만으로 교육과정을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사교육비 당연히 줄 것” vs “풍선효과 우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치러진 1일 서울 용산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치러진 1일 서울 용산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교육계에서는 킬러문항 배제에 대해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교육과정을 위반한 수능 문항 금지는 평가의 상식”이라며 “대통령 발언을 초석으로 이제라도 '배운만큼 평가한다'는 원칙이 지켜질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수일 소장은 “수능 난이도는 사교육비에 영향을 준다. 학원을 가지 않아도 수능을 보는데 문제가 없으면 확실히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사실상 킬러문항을 대비하기 어려운만큼, 이번 조치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충남의 한 고교 교사는 “학교는 내신, 수행평가 하기도 바쁘다보니 킬러문항을 따로 대비할 여유가 없다”며 “공교육 정상화 측면에서 수능과 공교육의 주파수를 맞추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능 출제진과 수험생의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만기 유웨이 부사장은 “문제를 너무 꼬거나 조건을 너무 많이 넣지 않기만 해도 난이도를 낮출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변별력도 갖춰야 한다는 메시지가 나왔기 때문에 출제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고교 교장은 “수능은 쉬우면 쉬운대로,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학생이 불안할 수 밖에 없다”며 “수능이 150여일 남았는데 당장 올해 수능에 대한 메시지가 나오면 혼란스럽다”고 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수능 난이도 조절이 일시적인 사교육비 절감 해법이 될 수 있다”면서도 “어차피 서열화가 해결되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는 쉬운 수능에서도 비교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암기 등에 필요한 학원을 찾고 학교생활기록부 등 다른 전형 기준을 충족하는 데 사교육비를 쓸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종로아카데미 주최로 서울 세종대학교에서 열린 '전국 초중 학부모 대상 대입 및 고입 입시설명회'에 참가한 학부모들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0일 종로아카데미 주최로 서울 세종대학교에서 열린 '전국 초중 학부모 대상 대입 및 고입 입시설명회'에 참가한 학부모들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외고·자사고 존치, 학력 진단 강화

이날 당정 협의에서는 외국어고와 자율형사립고, 국제고를 존치하는 내용의 고교 교육력 제고 방안도 논의됐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2019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2025학년도부터 자사고와 외고를 폐지하고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한 바 있다. 자사고, 외고 등이 설립 취지에 맞지 않게 입시기관으로 변질됐고 일반고를 황폐화 시켰다는 이유다.

당시 진보 교육감이 있는 교육청들은 자사고 재지정을 취소하고 자사고 지위를 박탈했다. 하지만 부산 해운대고, 경기 안산 동산고와 서울의 8개 자사고가 취소 무효 소송을 냈고 1심에서 자사고 10곳이 모두 승소했다. 2심에서도 첫 소송이었던 부산 해운대고가 승소를 거두자 서울, 경기교육청은 항소심을 중단했다.

2021년 5월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서울시 8개 자사고 교장단이 서울교육청에 1심 항소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중앙포토

2021년 5월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서울시 8개 자사고 교장단이 서울교육청에 1심 항소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중앙포토

윤석열 대통령은 외고, 자사고 존치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학부모의 선택권을 존중하고 소송 등으로 인한 현장의 혼란을 줄이자는 취지다. 교육부 관계자는 “기존 학교 지위를 유지시켜 주면서 학생들의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보장해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데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당정은 또 수능 입시 대형 학원의 거짓·과장 광고로 학부모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일부 학원의 불법 행위에도 엄중 대응하기로 했다. 이어 사교육 수요를 흡수할 방안으로 EBS를 활용한 지원을 강화하고, 방과 후 교육 자율 수강권 지원도 확대하기로 했다.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예방하고 국가가 기초 학력을 책임지고 보장하도록 학력 진단을 강화하고, 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맞춤형 학습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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