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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수능? 사교육 상담은 되레 늘었다"…딜레마에 빠진 교육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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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으로 입장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한겨레 윤운식 기자]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으로 입장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한겨레 윤운식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한 발언을 두고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150여일을 앞두고 교육부는 ‘변별력’과 ‘쉬운 수능’이라는 모순된 과제를 떠안게 됐다. 어려운 수능은 학생 선별에 용이하지만 사교육을 유발할 수 있다. 쉬운 수능은 특정 성적 구간에 학생이 몰리며 대입 전략을 세우기 어려워진다.

사교육 부르는 킬러문항…“1문항에 250만원”

윤 대통령의 수능에 대한 문제의식은 치솟는 사교육비에서 출발했다. 수능이 어렵기 때문에 학생, 학부모가 학원을 찾는다는 것이다. 지난 3월 교육부와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는 전년 대비 10.8% 늘어난 26조원을 기록했다. 2007년 조사 시작 이래 최고치다.

최근 몇년간 수능 난도를 높인 원인으로 꼽히는 게 ‘킬러문항’이다. 킬러문항은 오답률이 높은 초고난도 문항을 뜻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수능 국어 과목에서 가장 어려운 문항은 지문에서 ‘클라이버의 기초 대사량 연구’를 다뤘다. 제대로 이해하려면 수학·과학적 개념까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수학 과목은 객관식 마지막 문항, 주관식 마지막 문항에 킬러문항이 주로 배치된다.

윤석열 대통령. 뉴스1

윤석열 대통령. 뉴스1

학원가에서는 킬러문항 대비 프로그램을 내세워 학생을 유인하고 있다. 최상위권을 타깃으로 하는 킬러문항은 일반 고교에서는 대비할 수 없다는 게 업체들의 논리다. 한 학원가 관계자는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뀐 뒤부터 국어와 수학에서 킬러문항을 맞히느냐가 상위권 입시의 관건으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일부 대형 학원은 수강생들이 더 많은 킬러문항을 접할 수 있도록 문항 제작에 투자하고 있다. 대치동의 한 학원은 강사 뿐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킬러문항을 공모하고 우수 문항에 상금도 준다. 수학 문항 하나 당 100만~250만원의 상금을 주면서 킬러문항을 수집한다. 학원가 관계자는 “최상위권은 결국 한 문제 싸움이다. 다양한 킬러문항을 더 많이 풀어본 학생이 고득점을 받는 구조”라고 말했다.

수능 쉬워지면 입시 어려워져…“상위권 전략 안갯속”

지난달 20일 종로아카데미 주최로 서울 세종대학교에서 열린 '전국 초중 학부모 대상 대입 및 고입 입시설명회'에 참가한 학부모들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0일 종로아카데미 주최로 서울 세종대학교에서 열린 '전국 초중 학부모 대상 대입 및 고입 입시설명회'에 참가한 학부모들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킬러문항이 없는 평이한 수능에도 문제는 있다. 상위권에 수험생이 몰리면서 변별력이 약해지고 대입 전략을 짜기가 어려워진다. 이만기 유웨이 부사장은 “수능이 쉬워지면 절대평가 영어에서 수능 최저 등급을 충족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동점자도 늘어나기 때문에 수시모집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N수생도 변수다. 첨단학과나 의대를 선호하는 재수생이 늘어나는 가운데, 쉬운 수능은 또 다른 유인책이 될 수 있다. 이번 6월 모의평가 응시자 46만3675명 중 N수생 등 졸업생은 8만8300명(19%)으로 역대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재학생은 줄었지만 졸업생은 지난해 6월에 비해 오히려 1만1625명이 늘어났다. 쉬운 수능으로 부담이 줄어들면 '반수' 등 재도전을 하려는 N수생이 더 늘어날 수 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효원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이 답안지에 이름을 적고 있다. 연합뉴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효원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이 답안지에 이름을 적고 있다. 연합뉴스

입시 전문가들은 수험생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6월 모의평가는 정시와 수시모집 전략을 세우는 가늠자다. 그런데 모의평가가 끝난 뒤 수능 출제 경향이 달라진다는 메시지를 주면 수험생은 고민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진 대학미래연구소장은 “수능은 난이도가 어떻든 서열화된 순서 싸움이다. 쉬우면 상위권에, 어려우면 하위권에 학생이 몰려 있을 뿐이니까 자신의 위치에 맞게 입시를 치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는 수능 위주의 정시모집 비율을 40%까지 늘린 상황에서 ‘쉬운 수능’ 시그널이 나왔기 때문에 재수생이 다소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능 출제 기조가 갑자기 바뀌면 결국 사교육 수요가 늘어난다는 예상도 나온다. 한 재수종합학원 관계자는 “대통령 말이 나온 뒤에 학원 상담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수시모집 원서 접수 80여일을 앞두고 갑자기 변수가 생겼으니 수험생들이 누구를 찾아 오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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