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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마처 세대’ 새로운 가족주의의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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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태인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박태인 정치부 기자

서울 강남의 ‘○○가든’을 가면 ‘완벽한 가족’을 엿볼 수 있다. 고급 국산차를 탄 노부부와 그 뒤를 따라 중형 외제차에서 내린 자녀 부부가 오순도순 대화를 나눈다. 양념갈비를 뜯으며 열리는 손자 손녀의 생일잔치. 계산은 할아버지의 신용카드가 한다. 특별한 날 아내를 위해 큰맘 먹고 찾은 ‘○○가든’ 풍경이 머릿속을 오래 맴돈다.

‘판교 신혼부부’란 말이 있다. 부유한 양가의 지원 속에 판교에 자기 집을 마련한 젊은 부부를 가리킨다. ‘판교’를 서울 다른 지역으로 바꿔도 큰 차이는 없다. ‘OO가든’에는 그런 가족이 많아 보였다. 다른 식당보다 노부부의 발언권이 셌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서비스에 대한 평가와 항의도 그들의 몫이었다.

지난해 6월 수원시 노인 일자리 채용 행사에서 한 어르신이 휴대전화로 관련 자료를 찍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 수원시 노인 일자리 채용 행사에서 한 어르신이 휴대전화로 관련 자료를 찍고 있다. [연합뉴스]

‘완벽한 가족’은 이제 특권이란 주장이 있다. 효와 가족주의가 거래와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한 칼럼에서 ‘과도한 가족주의’ 논란을 제기한 전상인 서울대 명예교수는 기자에게 “앞으로 가족주의와 효를 감당할 계층은 굉장히 국한될 것”이라고 했다. 자녀를 평생 부양할 수 있는 부유한 부모만이 치사랑을 받는다는 말이다.

‘○○가든’에서 내려와 주변을 둘러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대한민국의 부모 대부분은 계층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전력을 다해 자녀를 부양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서글프다.

돌봄 시간이 늘어나 여성 경력단절의 최대 위기라 불리는 이른바 ‘초1 절벽’. 이른 오후에 하교하는 아이를 맞으려면 조부모의 등판이 절실하다. 그걸 대신할 이모님은 월 300 수준이다.

초등학교 앞에서 손녀를 기다리는 할아버지의 구슬픈 얼굴. 버릇없는 손주와 엘리베이터를 탄 이웃 할머니의 소리 없는 탄식은 우리를 처연하게 한다. 그들이 꿈꿨던 노후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은퇴 자금을 털어 자녀를 돕고, 증여세를 피하려 건네는 이자를 용돈이라 자랑하는 부모는 또 한둘일까. 알면서도 모른 척, 국가는 출생부터 양육, 돌봄과 교육까지 삶의 모든 주기를 방치하며 가족주의에 외주하고 있다.

은퇴 뒤에도 자녀를 부양하는 베이비부머는 자신을 ‘마처 세대’라 부른다. 마지막으로 부모를 부양하고, 처음으로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세대란 뜻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60대 이상 근로자 수는 337만5000명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20대 이하(322만3000명)를 앞질렀다. 불안한 노후에 전력하는 부모 세대의 절실함이 담긴 숫자일 테다. 아비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의 나라라지만, 요즘은 그 반대 양상이다. 은퇴한 부모가 장성한 자녀와 또 그의 자녀까지 부양하는 시대. 아비와 어미가 공양미 삼백석을 바치고 심청이를 위해 몸을 던지는 시대. 바야흐로 신(新) 가족주의의 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