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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마음 남겨둘 수 있는 시조…이공계 진학에도 도움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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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9회째를 맞은 중앙학생시조백일장(7월 15일 본심 개최)을 앞두고 2014년 열린 제1회 백일장 당시 중등부 대상을 수상한 서창현(22)씨를 서울 강남구 한 서점에서 만났다. 김종호 기자

올해로 9회째를 맞은 중앙학생시조백일장(7월 15일 본심 개최)을 앞두고 2014년 열린 제1회 백일장 당시 중등부 대상을 수상한 서창현(22)씨를 서울 강남구 한 서점에서 만났다. 김종호 기자

“어릴 때부터 시조를 쓰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풀어내본 경험이 지금도 도움이 되죠. 글을 쓸 때 한 번씩 번뜩이는 표현이 떠오르는 식으로요.”

2014년 개최된 제1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에서 중등부 대상을 수상했던 서창현(22)씨의 말이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서씨는 ‘아버지’라는 제시어를 받아들고 2시간 동안 현장에서 써내려간 시조로 “매우 정제된 음률과 군더더기 없는 형식으로 아버지의 사랑과 고단한 삶을 잘 그리고 있다”는 심사평을 받으며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당시 수상에 대해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문에 이름도 실려보고, 되게 기분 좋은 자랑거리가 생긴 경험이었다”고 돌이켰다.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최근에는 육군 최전방에서의 군복무도 마쳤다는 그를 지난 15일 만나 시조백일장에서 수상한 경험, 그리고 학창시절 시조 짓기에 몰입해본 경험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9회째 열리는 시조백일장, 1회 대상 수상자는 지금… 

중앙학생시조백일장은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를 알리고 계승하려는 취지로 중앙일보가 주최(한국시조시인협회 주관, 교육부 후원)하는 대회로, 코로나19 여파로 건너뛴 2020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열려 올해로 9회째를 맞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조 쓰기를 배웠던 서씨는 처음부터 줄곧 시조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의 권유로 제1회 백일장에 참가했다고 한다. 9년 전 일이지만, 대상 수상자로 불렸던 순간을 그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수상자가 가작부터 점점 더 큰 상이 불리는 식으로 발표되잖아요. 저는 초반에 제 이름이 안 불려서 ‘아, 나는 상을 못 타나 보다’라고 단념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상 때 이름이 불리더라고요. 현실이 아닌 것 같아 어안이 벙벙했죠.”

미국 보스턴대 기계공학과에 재학 중인 서씨는 "고등학교, 대학교 진학 시 백일장 수상 이력으로 '문·이과 통합형' 인재라는 어필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미국 보스턴대 기계공학과에 재학 중인 서씨는 "고등학교, 대학교 진학 시 백일장 수상 이력으로 '문·이과 통합형' 인재라는 어필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수상작은 마트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쓴 것으로, 아빠의 손바닥에 밴 땀으로 꽃송이가 피어나고, 그 꽃이 자신이라는 비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서씨는 “‘아버지’ 하면 항상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이 생각나 그걸 토대로 썼던 것”이라며 “마트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옆에서 많이 봐왔는데, 열심히 물건 옮기시고 장부 작성하시던 모습이 뇌리에 남았던 것 같다”고 기억을 되짚었다. “지금 쓰라고 하면 절대 안 나올 것 같은, 그 나이대여서 할 수 있었던 표현 같아요. 제가 다시 읽어봐도 ‘어떻게 이렇게 썼지?’ 싶더라고요. (웃음)”

진학에도 도움된 시조…“어릴 때 시작할수록 좋아” 

초등생 때부터 시조를 쓸 정도라면 영락없는 ‘문학소년’일 것 같지만, 그는 실은 유치원 시절부터 기계를 좋아하던 이과생이다. 지금도 미국 보스턴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며 미래엔 개발자를 꿈꾼다. 그렇게 이공계열 진로를 추구하는 길에는 뜻밖에도 시조백일장에서의 수상 이력이 큰 도움이 됐다고 그는 말했다. “백일장 수상 기록 등 문학적 자질을 부각함으로써 ‘과학에만 치중하지 않은 문·이과 통합형 인재’라는 식으로 어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씨는 “실제로 시를 배우기 전에는 기계와 같이 감정 없는 것들에 치중했었는데, 시조를 배우면서 조금이나마 (문·이과 성향이) 균형이 맞춰졌다”며 “번외로 시작한 시조이지만, 시조를 쓰는 순간은 고통스럽기보다는 즐거웠던 기억밖에 안 남아있다”고 말했다.

특히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일반 시와 달리 형식을 맞춰야 하는 시조를 쓰는 과정은 그에게 생각의 깊이를 넓혀준 경험이었다. “저는 동시보다 정형적인 시조를 쓸 때 오히려 제한된 틀 안에서 생각을 풀어내야 한다는 게 즐겁더라고요. 특히 (글자 수) 3-5-4-3을 맞춰 써야 하는 종장에 어떤 단어가 어울릴까 고민하는 과정에서는 생각도 깊어지고 어휘력 향상에도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군대에서 휴가 나왔을 때 본 미술 작품 등 일상 속 인상 깊은 장면을 요즘도 시조로 남겨 놓는다는 서씨는 “시조는 어릴 때 시작할수록 좋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자기도 모르는 순수한 마음을 남겨 놓을 수 있는 집합체가 시조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 쓴 시조를 모아둔 노트를 가끔 들춰보는데, 지금은 결코 나올 수 없는 상상력이 눈에 띄더라고요. 꼭 대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학생 때 한 번쯤 자신의 감정을 시조로 써보는 경험을 한다면 훗날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올해 제9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은 30일까지 예심 응모를 받는다. 본심 진출자 명단은 다음 달 2일 중앙일보(joongang.co.kr)와 한국시조시인협회(www.hankuksijo.com) 홈페이지에서 발표되고, 본심은 다음 달 15일 서울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공연장에서 열린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다음 링크(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755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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