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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저작권 분쟁…이번엔 K소방차 애니, 구름빵·검정고무신 비극 반복되나

중앙일보

입력

국산 소방차 애니메이션을 두고 원작 동화작가와 애니 제작사 간 저작권 분쟁이 발생했다. 원작자 측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이 최근 수사에 나섰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국내 동화 원작의 아동 애니 ‘용감한 소방차 레이’의 원작자 심수진(55)씨와 심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출판사 연두세상의 고소장을 지난 4월 접수하고 애니 제작사 P픽쳐스를 저작권법 위반 및 업무상 배임·업무방해·사기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용감한 소방차 레이’는 EBS에서 지난 2016년 시즌1이 방영됐고 시즌2 방영을 앞두고 있다.

국산 EBS 애니메이션 ‘용감한 소방차 레이’의 해외 방영 당시 사진. 사진 연두세상

국산 EBS 애니메이션 ‘용감한 소방차 레이’의 해외 방영 당시 사진. 사진 연두세상

EBS 방영 K소방차 애니…“중국산 둔갑” 공방

원작자 측은 제작사가 해외에서 시즌2 애니를 국산 창작품이 아닌 중국산으로 둔갑시켰다는 의혹(저작권법 위반)을 제기하고 있다. 중국·베트남 등 해외 방영분에서 2010년 나온 원작 동화 ‘레이의 소방서’ 표기를 누락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한국 정부의 지원 사실 및 관련 한국 업체명을 지웠다는 주장이다. 또 영문·중문 제목을 ‘레이’라는 소방차 이름과 무관한 ‘Whee Wheels’와 ‘先锋威威队(선봉위부대)’로 동의 없이 바꿨다고도 주장했다.

연두세상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시즌2 제작·방영이 밀리며 1년간 감감무소식이던 제작사가 올초 갑자기 국내 방영 소식을 알려왔다”며 “의아하게 생각해 자체 조사를 해보니 처음 보는 이름으로 중국·홍콩·베트남·인도네시아·러시아 등에서 시즌2가 방영된 상태였고, 몇몇 국가에선 유튜브 조회수가 300만~6000만회에 달하는 등 흥행 수익을 거뒀을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수진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가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음에도 원래 이름과 원저작자가 철저하게 무시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석달 전 적응장애와 불면증을 진단받았다”고 언급했다.

반면 제작사 측은 “원작자 몰래 중국산으로 둔갑시켰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전면 부인하고 있다. P픽쳐스 관계자는 “해외 방영 계획과 제작 상황에 대해 2020년부터 e메일로 연두세상에 수 차례 안내했다”며 “중국산 판정은 해외 배급을 진행한 중국업체가 중국 내 사업을 위해 노력한 결과고, 이는 연두세상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목과 캐릭터 변경은 작품 현지화 일환으로 자주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P픽쳐스 측은 해외에 “크레딧을 제대로 보냈다”며 러시아 버전은 저작권 표기 누락이 없다고 주장했다. 사진 P픽쳐스

P픽쳐스 측은 해외에 “크레딧을 제대로 보냈다”며 러시아 버전은 저작권 표기 누락이 없다고 주장했다. 사진 P픽쳐스

정산 미지급·투자 미집행 다툼도

양측은 정산 미지급 여부를 두고도 공방 중이다. 원작자 측은 총매출의 3%인 원작지분료를 6년 이상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두세상 관계자는 “2016년 10월 이후 IPTV/VOD 방영 판매 대금, 2019년 이후 국내 유튜브 방영분, 2018년 이후 해외 방영분, 4년치 국내외 완구 판매금 등이 정산되지 않았다”며 “회사도 2018년부터 자본잠식 상태로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에 제작사 측은 “인력 부족이라 정산이 늦어졌다. 가급적 빠른 정산을 위해 노력 중”이라면서도 “연두세상도 투자금 20%를 넣기로 계약해놓고 아직 입금하지 않은 투자사다. 우리도 금전적 손해가 막심하다”라고 맞섰다. 이와 관련 연두세상은 “(투자금 미집행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외부 투자 유치에 필요한 자료를 P픽쳐스에 수 차례 요청했으나 차일피일 미뤄져 결국 투자가 무산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포경찰서는 지난달 초 고소인 1차 조사를 마쳤다. 향후 피고소인 조사를 진행하는 등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저작권 비극’ 구름빵·검정고무신 닮은꼴

지난달 15일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형설출판사 앞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장례 집회에서 고(故) 이우영 작가의 동생 이우진 작가가 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5일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형설출판사 앞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장례 집회에서 고(故) 이우영 작가의 동생 이우진 작가가 발언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업계에선 이번 사건을 두고 국내 창작계의 비극으로 꼽히는 ‘구름빵’ 소송, ‘검정고무신’ 분쟁을 잇는 또다른 저작권 다툼의 서막이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디테일은 다르지만, 큰 틀에선 모두 “원작자 패싱”을 주장하는 작가와 “2차 사업은 별도의 공력”이란 제작사 간 공방이라는 점에서다.

구름빵은 2004년 동화 원작을 출간한 백희나 작가가 출판사와 맺은 저작권 양도계약으로 인해 해외 판매,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등 2차 사업의 흥행 수익을 나눠받지 못하자 제기한 소송으로, 2020년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검정고무신의 이우영 그림작가는 출판·제작사 형설앤으로부터 ‘캐릭터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피소당한 뒤 3월 숨진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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