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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과 투쟁이냐, 당 혁신이냐…난데없는 野 '난닝구·빽바지' 논쟁

중앙일보

입력

윤석열 정부와의 투쟁이 우선인가. 당 혁신이 중요한가. 난데없는 노선 싸움이 167석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일 페이스북에 “당대표 끌어내리기를 놓고 자중지란만 반복하는 지금 민주당의 모습으로는 제대로 싸울 수도, 혁신할 수도 없다“ 고 지적했다. 사진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기본사회위원회 광역위원장 임명장 수여식 발언 모습. 뉴스1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일 페이스북에 “당대표 끌어내리기를 놓고 자중지란만 반복하는 지금 민주당의 모습으로는 제대로 싸울 수도, 혁신할 수도 없다“ 고 지적했다. 사진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기본사회위원회 광역위원장 임명장 수여식 발언 모습. 뉴스1

4선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15일 페이스북에 ‘지금은 오만무도한 검찰 공화국과 제대로 싸워야 할 때’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우 의원은 “국정 운영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온갖 야당발 정치사건으로 총선 요행수를 바라는 것이 윤석열 정권의 본질”이라며 “검찰 공화국을 막지 못하면 국민의 삶과 민주당의 미래를 지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 의원은 특히 “당대표 끌어내리기를 놓고 자중지란만 반복하는 지금 민주당의 모습으로는 제대로 싸울 수도, 혁신할 수도 없다”며 비명계를 직격했다. “소모적인 내부갈등을 중단하고 윤석열 정권의 무도함에 맞서도록 힘을 모으자”며 “분열하면 백약이 무효임을 명심해야 한다”라고도 했다.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는 투쟁과 혁신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두고 설왕설래하느라,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못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은 지난 3월 31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송 최고위원의 모습. 뉴스1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는 투쟁과 혁신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두고 설왕설래하느라,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못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은 지난 3월 31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송 최고위원의 모습. 뉴스1

이날 우 의원의 글은 전날 송갑석 최고위원의 발언과 맞물려 묘한 파문을 낳았다. 비명계로 분류되는 송 최고위원은 14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투쟁과 혁신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가야 하는 문제”라며 “윤석열 정권과 맞서 싸우면서 혁신하고, 혁신하면서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송 최고위원은 또 “당원의 목소리는 매우 중요하지만, 국민의 목소리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며 “혁신기구의 의제도 당의 주인인 국민의 의사가 무엇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간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뭉치라는 게 당원의 명령”이라고 주장해 온 친명계에선 곧장 반격했다. 친명계 서은숙 최고위원은 이날 저녁 자신의 SNS를 통해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듯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며 “이를 ‘당은 더 많은 국민에게 지지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이유로 부정하는 건 균형감각을 잃은 사고”라고 비판했다.

당내 친명·비명이 합세해 윤관석·이성만 의원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직후 외려 공개적인 갈등이 불거진 건 새 혁신위 출범을 앞둔 기 싸움 측면이 강하다. 비명계는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코인 사태’로 무너진 도덕성 회복을 혁신 과제로 보지만, 친명계는 ‘대의원제 폐지’, ‘권리당원 권한 강화’에 방점을 찍고 있다. 친명계 내부엔 비명계에 대해 “이 대표 거취 논란 같은 얘기를 하느라 대정부 투쟁 전선을 흐트러뜨렸다”는 불만도 팽배하다.

당의 진로를 둘러싼 노선 투쟁이 시작됐다는 시각도 있다. 친명계의 한 의원은 “대의원·당원 권한을 조정하자는 건 당의 의사 결정에서 현역 의원의 기득권이 과다 투영되고, 이 때문에 180석의 의석을 갖고도 개혁 입법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라며 “이런 구조를 바꾸라는 게 권리당원 다수의 요구”라고 주장했다. 반면 비명계에서는 “그런 식이라면 당명을 ‘이재명당’, ‘처럼회당’으로 차라리 바꾸는 게 나을 것”이라며 “‘검찰 개혁 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정권을 내주더니 이젠 사당화(私黨化)를 하려 한다”고 반발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다툼을 두고 당내 일각에선 “2005년 열린우리당의 ‘난닝구 대 빽바지’ 논쟁과 똑같다”(서울 지역 의원)는 탄식도 나온다. 2005년 4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유시민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진보파가 구(舊)민주당과의 통합을 주장하는 실용파를 향해 “난닝구는 민주당으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이에 실용파가 “우리가 난닝구면 너희는 빽바지”라며 맞붙던 양상과 유사하다는 취지다.

2003년 9월4일 당시 민주당 당무회의장에서 한 당직자가 러닝셔츠 차림으로 ‘민주당 사수’를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2003년 9월4일 당시 민주당 당무회의장에서 한 당직자가 러닝셔츠 차림으로 ‘민주당 사수’를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난닝구’는 2003년 9월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러닝셔츠 차림의 당직자가 회의장에 난입해 “민주당 사수”를 외친 장면에서 유래했다. ‘빽바지’는 2003년 4월 재보선 당선 직후 유 전 의원이 흰색에 가까운 면바지 차림으로 국회에 등원한 모습에서 비롯된 단어다. 당시 진보파가 당 지도부를 향해 “152석의 다수 의석을 기간당원제(권리당원제의 전신)를 폐지하는 데 허송세월했다”고 비판한 점도 현재와 유사하다는 평가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국민이 관심 없는 사안을 두고 사생결단하며 ‘강성 투쟁이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을 펼치는 건 여전히 운동권식 사고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며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2003년 4월 29일 유시민 당시 개혁당 의원(왼쪽)이 캐주얼 차림으로 국회 본회의에 등원해 선서를 하려 하자 일부 의원이 복장을 문제삼아 선서가 불발되는 촌극이 빚어졌다. 중앙포토

2003년 4월 29일 유시민 당시 개혁당 의원(왼쪽)이 캐주얼 차림으로 국회 본회의에 등원해 선서를 하려 하자 일부 의원이 복장을 문제삼아 선서가 불발되는 촌극이 빚어졌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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