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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사무총장 아들 특혜 채용 놓쳤다…선관위 수사 머쓱한 경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선거관리위원회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 관련 국민권익위원회가 채용비리 전담조사단을 구성해 지난 12일 현장 조사를 벌였다. 사진은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모습. 연합뉴스

선거관리위원회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 관련 국민권익위원회가 채용비리 전담조사단을 구성해 지난 12일 현장 조사를 벌였다. 사진은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모습. 연합뉴스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전·현직 간부들의 ‘아빠 찬스’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감사원 감사 및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조사 결과를 종합한 뒤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15일 밝혔다.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 권한을 가진 경찰의 본격적인 수사 시점이 감사·조사 이후로 미뤄진 셈이라,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을 둘러싼 선관위 안팎의 혼란도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선관위 특혜 채용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날까지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 등 총 14명을 수사 대상에 올려놓고 있다. 선관위가 지난달 자체 특별감사를 거쳐 중앙선관위의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 신우용 제주선관위 상임위원, 김정규 경남선관위 총무과장 등 4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수사 의뢰했고, 시민단체 등에선 이들과 함께 김세환 전 사무총장과 윤재현 전 세종선관위 상임위원 등 전직 간부 2명을 포함해 총 6명을 고발했다.

또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대법관) 등 위원 8명은 감사원 감사를 거부했다는 이유(감사원법 위반)로 고발됐다. 노 위원장은 지난 2일 선관위원 전원 회의를 연 뒤 위원 만장일치 의견으로 감사원의 직무 감찰을 거부한다고 밝혔다가 비난 여론이 일자 ‘직원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한정해 부분 감사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감사원법에 따르면, 감사 대상이 이를 거부하거나 자료제출 요구에 따르지 않은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아직 수사 의뢰나 고발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전직 간부 4명도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을 받고 있고, 시민단체 측 실수로 고발장에서 이름이 누락된 선관위원까지 추가로 고발된다면 경찰 수사 대상이 20명을 훌쩍 넘길 수도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전경. 손성배 기자

경기남부경찰청 전경. 손성배 기자

선관위 현직 4명, 전직 6명 등 10명 ‘아빠 찬스’ 의혹  

이처럼 여러 갈래의 수사 의뢰와 고발이 이뤄지면서 ‘아빠 찬스’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 여론도 한껏 높아진 상태다.

그러나 정작 경찰 내부에선 난감해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감사원과 권익위가 동시에 앞다퉈 조사를 벌이는 와중에, 경찰이 수사를 본격화할 경우 자칫 중복 조사나 기관 간 엇박자로 인해 혼란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선관위가 강하게 저항할 가능성도 있다. 선관위는 14일에도 “감사원과 권익위의 조사 일정이 겹쳐 비효율적”이라며 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권익위가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무리하게 시작한 수사의 결과 여론 눈높이에 맞지 않을 경우, 책임의 화살이 경찰로 향할 수도 있다.

경찰 수사팀이 이날 입장을 내면서 “현재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권익위 조사가 예정돼 있고 전반적인 감사와 조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국가수사본부에 보고한 결과, 감사 및 조사 결과를 종합한 뒤 수사를 진행하기로 결정됐다”는 설명을 붙인 것도 이 같은 고민과 우려의 흔적이다.

수사 지휘선상에 있는 한 경찰 관계자는 “지금 상태로 강제 수사 권한을 가진 경찰까지 곧장 수사에 나서고, 각 기관이 다 달려들면 업무 중복으로 인한 혼란을 피할 수가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교통 정리가 필요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9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관위원회의를 마치고 취재진을 뒤로 한 채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9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선관위원회의를 마치고 취재진을 뒤로 한 채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전 사무총장 아들 이직 특혜, 지난해 ‘불송치’

 경찰의 딜레마는 더 있다. 지난해 이미 김세환 전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아들의 특혜 채용 의혹을 한 차례 수사했지만, 불송치했다는 점이다. 경찰은 지난해 3월 24일 김 전 사무총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피의자로 입건했다. 당시 김 전 사무총장은 2019년 12월 인천선관위 인사담당자와 총무과장, 사무처장, 서류·면접심사위원 등에게 강화군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아들 김모씨를 경력경쟁 채용 시험의 최종 합격자로 선정하도록 지시하고, 2020년 6월 인천선관위 사무처장 등 승진심사위원회 위원들에게 아들을 승진자로 내정하게 해 7급 행정주사보로 승진하게 한 혐의 등을 받고 있었다.

이에 따라 경찰은 김 전 사무총장의 휴대전화 포렌식 자료와 각 채용 및 승진 인사업무 등 담당 공무원들의 진술, 업무처리 과정에서 작성된 각종 공문서를 비롯해 이들 간에 주고받은 내부 이메일 및 메신저 내용 등을 조사했다. 그러나 사건 접수 6개월 만인 12월 28일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범죄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고, 불송치로 사건을 종결했다.

감사 결과 등을 통해 새로운 증거나 정황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를 다시 시작할 경우, 지난해 수사의 부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되는 꼴이다. 한 수사팀 관계자는 “증거가 없어 불송치한 사건이라도 상황 변화가 있으면 다시 수사할 수 있다. 당시 필요한 수사를 다 하긴 했지만, 시민단체 고발도 다시 접수됐으니 새롭게 들여다보면 된다”고 말했지만 수사 재개가 머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2월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확진자 투표권 보장’선거법 개정 논의 등 관련 국회 정치개혁특위 전체회의에 김세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출석했다. 김상선 기자

지난해 2월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확진자 투표권 보장’선거법 개정 논의 등 관련 국회 정치개혁특위 전체회의에 김세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출석했다. 김상선 기자

다만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경찰이 마냥 손을 놓고 기다릴 순 없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감사에 대한 선관위의 반발이 거세지거나, 증거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경우 결국 압수수색과 신병 확보 등이 가능한 경찰로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 관계자는 “이처럼 감사원 등 여러 기관이 의혹을 들여다 보는 상황이라면, 먼저 결과를 지켜보고 강제 수사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통상적인 사례를 얘기하며 느긋하게 있을 사안이 아니긴 하다”며 “게다가 이미 수사가 한 차례 진행됐던 건이라, 수사팀의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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