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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 없이 올린 성관계 촬영물…대법 "경위·수위로 불법성 판단 가능"

중앙일보

입력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모습. 뉴스1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모습. 뉴스1

다른 사람의 성관계 정황이 담긴 촬영물을 인터넷에 올렸을 때 영상 속 인물의 신원이 명확히 파악되지 않아 확인할 수 없더라도 죄가 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상자의 동의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도 촬영 경위와 수위 등을 판단해 불법성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5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반포)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원심의 무죄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지난 2021년 9월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한국야동'이라는 제목으로 일부 나체로 침대에 앉아 있는 남녀의 사진을 이들 의사에 반해 올려 배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해당 사진이 성관계가 연상되는 음란한 영상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은 '일부 성기가 노출돼 음란물에 해당한다'며 항소했으나 2심 역시 성기가 노출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더 나아가 검찰은 2심에서 남녀의 의사에 반해 사진을 배포한 혐의를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했지만, 재판부는 당사자를 조사하지 않는 이상 몰래 촬영한 것처럼 연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 또한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법리오해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이같이 등장인물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사례에서는 촬영 경위, 성적 욕망·수치심 유발 정도, 당사자 특정 가능성, 취득·배포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기준을 새로 제시했다. 또 영상의 광범위한 고통을 초래할 수 있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사진을 통해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으므로 광범위하게 유포될 수 있는 인터넷을 통해 배포될 경우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야기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촬영대상자, 특히 여성이 이 사진의 배포에 동의하리라고는 도저히 기대하기 어려우므로 그 의사에 반해 배포했고 피고인도 그 사정을 인식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촬영대상자의 의사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경우 그 의사에 반해 배포가 이뤄졌는지 아닌지의 판단 방법을 최초로 설시한 사례"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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