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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덕진의 퍼스펙티브

우주는 최후의 프론티어, 우리의 미래를 키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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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미 막 오른 우주전쟁, 그 승자는…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으로 한국은 이제 세계 7대 우주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고 연구원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에게도 감사할 일이다. 대다수 국민에게 우주란 미지와 환상의 세계일 뿐이다. 1969년 강렬했던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중계방송, 1992년 우리별 1호, 1999년 아리랑 1호, 2013년 나로호, 그리고 지난해와 올해의 누리호 2, 3차 발사 같은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이다. 발사 장면을 먼발치에서나마 지켜볼 수 있는 나로우주센터 주변에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모인 부모들은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는 인류의 대장정에 언젠가는 자신의 자녀도 동참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우주 강국 진입했지만 이제 시작 단계
미지·환상의 세계에서 안보·경제·정치 등 현실의 세계로 진입
미국 앞서가고 중국 바짝 추격, 한국도 더 머뭇거릴 여유 없어
현장 엔지니어들의 긴급 성명 “총체적 국가 전략 새롭게 짜야”

아폴로 11, 냉전 경쟁체제의 산물

우주 강국을 향한 지구촌 경쟁이 뜨겁다.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지난달 25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연합뉴스]

우주 강국을 향한 지구촌 경쟁이 뜨겁다.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지난달 25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현실은 이런 낭만적인 동경보다 훨씬 냉엄하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자체가 1950년대에 촉발된 냉전적 체제 경쟁의 산물이었다.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 1호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1961년 유리 가가린이 최초의 우주인이 되자,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10년 안에 인간을 달에 보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마침내 1969년 소련을 추월하고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인간의 발자국을 찍는 데 성공한 것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오늘날 지구 궤도에는 약 8000개의 인공 물체가 존재하고, 그중 작동하는 인공위성은 약 3000개다. 지금까지 쏘아 올린 인공위성의 수를 국가별로 보면 미국이 압도적인 1위로 약 6200개, 러시아가 1500개, 중국과 영국이 약 600개, 일본이 200여 개, 인도·프랑스·독일 및 캐나다가 각각 100여 개, 한국과 호주가 30여 개 등이다. 인공위성을 하나라도 쏘아 올린 나라는 80개국이 넘는다.

걸프전, 인류 최초의 우주전쟁

우주 전쟁은 이미 현실이 된 지 오래다. 1991년 걸프전은 인류 최초의 우주 전쟁으로 기록된다. 비록 우주 공간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은 아니지만, 미국은 역사상 최초로 GPS(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에 의지해 끝없는 사막에서 현 위치와 경로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었고, 그 덕에 이라크군이 상상도 못 한 속도와 정확성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오늘날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자동차 내비게이션 기술의 원조이다.

걸프전 이후 우주는 가장 중요한 안보적·군사적 목표가 되었다. 미국은 이미 1954년 공군 산하에 우주개발 부서를 설치했고, 베트남전 이후 미국의 모든 군사적 개입에 관여해 왔으며, 2019년 정식으로 우주군을 창설해서 8600명의 인원이 복무하고 있다. 중국도 2015년 중화인민해방군전략지원부대를 설치하고 우주·사이버·정치·전자 영역의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한국도 지난해 12월 우주작전대대를 창설했고, 이미 몇 년 전부터 미국과 우주 연합훈련에 참여하는 등 우주전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자국 기술로 자국 땅에서 발사체를 쏘아 올릴 수 있게 된 것은 북한의 동향을 알기 위해 미국 등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어서 안보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앞으로 모든 전쟁은 우주로부터의 지원이 승패를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주요 우주 강국들이 앞다투어 위성공격 미사일 혹은 위성에 대한 사이버 공격 수단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중 우주 주도권 경쟁 가속

우주를 둘러싼 최대 경쟁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아직 중국은 미국의 상대가 되지는 못하지만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면서 맹렬한 추격전을 벌이는 중이다. 한국이 세계 7대 우주 강국이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중국을 따라가기에는 언감생심이고, 아시아에서 중국 추월의 의지를 불태우는 나라는 인도뿐이다.

우주를 둘러싼 잠재적 갈등의 폭과 깊이는 어마어마한 데 비해서 우주 활용에 대한 국제 규범은 1967년 우주조약에 머물러 있다. 우주조약은 핵과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우주 궤도에 올릴 수 없다는 광범위한 내용만을 담고 있어서 위성공격 미사일 등을 막을 수 있는 조항이 없다. 군비경쟁의 특성상 어느 한 나라라도 실제로 위성을 공격하거나 위성을 무기화한다면 다른 모든 나라도 일제히 같은 조치를 취할 것이고, 우주는 준 전시상태로 돌입할 수도 있다.

미국은 주요국들과 양자 간 협약인 아르테미스 합의를 계속 시도해왔지만 중국· 러시아·인도는 여기에 서명하지 않고 있다. 아르테미스 합의에 서명하는 것은 미국의 우주 주도권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중국이 동참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가속하고 있는 미·중간 테크놀로지 블록화까지 가세해서 이대로 가면 미국 중심의 우주와 중국 중심의 우주로 갈라질 것으로 보인다. 우주 강국의 반열에 첫발을 디딘 한국은 조만간 이 질문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우주자원 개발, 청정 원자력 기대

우주 탐사의 경제적인 효과도 중장기적으로는 막대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우주산업의 고용창출과 낙수효과도 크지만, 자원 개발의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구 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달에는 100만톤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헬륨3을 가져올 수 있다면 삼중수소를 대신해 핵융합반응에 사용할 수 있다. 삼중수소란 일본이 방류하겠다고 하는 후쿠시마 오염수에 섞여 있다고 해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있는 물질인데, 이것을 대신하여 헬륨3을 사용할 수 있다면 방사능이 전혀 발생하지 않고 동시에 청정한 원자력 발전이 가능하다.

2017년 시작된 미국의 유인 우주 탐사 계획인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는 NASA 외에도 유럽·일본·호주·캐나다·이탈리아·룩셈부르크·영국·아랍 에미레이트·우크라이나·뉴질랜드 등이 참여하고 있고, 한국도 2021년 5월 합류했다. 특히 일본은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의 독보적 파트너가 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주 자원 활용에 있고 이미 이를 위한 법률까지 통과시킨 상태이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 오리진으로 대표되는 우주 탐사의 민영화는 최근 들어 가장 두드러진 추세 중 하나이다.

한국 민간기업 참여 아직 미흡

이번 누리호 발사에도 한국항공우주산업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다수의 기업이 참여했지만, 국제적인 추세에 비하면 아직 우리 민간 기업의 시장 참여와 수익 창출 여건은 열악한 편이다. 우주산업의 낙수효과를 원한다면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영역이다.

이처럼 우주로의 진출은 단순히 미지의 세계로 나가는 호기심과 낭만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첨단 과학기술과 체제경쟁, 안보, 전쟁, 군대의 재편성, 테크놀로지 블록과 국제정치, 에너지나 환경과 같은 전 지구적 위기의 돌파, 우주 기업의 등장과 세계 경제의 재편 등을 동시에 조율하고 다루어야 하는 초거대 프로젝트이다. 정부 부서로 친다면 기재부·과기부·국방부·외교부·교육부·산자부· 중기부·환경부 등이 동시에 관여해야 할 일이다.

한국은 2차 대전 이후 산업화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라고들 말하고, 그 출발점에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같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거시적 안목과 투자가 있었다. 이제 산업화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고 인공지능과 우주 탐사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제 우주 강국으로의 첫걸음을 뗀 우리는 과거 성공의 연장선이 아닌 전혀 새로운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

정책 조율과 거시적 안목 절실

며칠 전 누리호의 주역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엔지니어들이 낸 성명서는 그런 의미에서 진지한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현장의 엔지니어들은 일곱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지만, 핵심은 우주외교·우주안보·우주국방·우주산업을 총괄할 수 있는 총체적 국가전략과 그에 걸맞은 ‘선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OECD 여러 국가의 정부 역량을 비교분석 해보면 한국에 가장 부족한 것이 정책 조율과 장기적 지속 능력이다. 항우연 엔지니어들의 요구는 사실상 그동안 거의 모든 정책 영역에서 제기되어 왔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후의 개척지(Final Frontier)’라고 불리는 우주 탐사의 영역에서 뒤처지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정부의 거시적 안목과 현장의 절절한 경험이 융합되는 결론이 얻어지기를 기원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리셋 코리아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