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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현철의 시선

"3시간만 계셔주세요" 지방 간절한데…농막에 오지말라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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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최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최현철 사회 디렉터

최현철 사회 디렉터

한 달 전쯤, 아내가 친구들과 함께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지는 강원도 평창. 숙소는 농막이라고 했다. 원두막의 일종인가?

얼추 비슷한데 훨씬 진화한 것이었다. 컨테이너를 개조한 6평(20㎡) 공간에 전기·수도·가스를 끌어왔고, 한쪽이 트인 다락을 올려 좁지만 서너명도 잘 수 있다고 했다.

농촌 텃밭에 지어진 농막의 모습. 현행법상 농지 소유자는 바닥면적이 20㎡(데크 별도)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농막을 설치할 수 있다. 전기와 수도, 가스, 정화조 설치도 가능해 주말농장을 가꾸려는 도시인들이 숙소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사진 독자

농촌 텃밭에 지어진 농막의 모습. 현행법상 농지 소유자는 바닥면적이 20㎡(데크 별도)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농막을 설치할 수 있다. 전기와 수도, 가스, 정화조 설치도 가능해 주말농장을 가꾸려는 도시인들이 숙소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사진 독자

 갓 딴 채소의 싱싱함, 해 질 녘 농막 앞에 펼쳐진 노을의 아련함, 그걸 보며 즐기는 커피향, 가을쯤으로 계획한 다음 방문 등. 아내의 이야기보따리는 끝이 없었다. 일행 중 한 명의 오빠라는 농막 주인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캠핑에서 시작한 취미가 주말농장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곳에 300평(약 1000㎡) 밭과 작은 농막을 마련했다. 수도권의 직장에 다니는 그는 금요일 밤에 와서 이틀을 지내고 일요일 늦은 밤 귀가하는 평창군의 반 거주자가 됐다. 이렇게 농사를 익히고 마을 주민들과 안면을 튼 뒤 은퇴 후 이주해 정착하는 게 요즘 귀농 트렌드라고 한다.

지방소멸 막으려 생활인구 도입
한쪽선 농막 규제, 방문자 봉쇄
엇박자 대응에 지방소멸은 가속

중앙일보의 강원 지역 취재 담당 박진호 기자는 지난달 동해안 최북단 고성군의 대진항을 찾았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과거와 달리 깔끔히 정돈된 포구에 배가 빼곡히 차 있었다. '여긴 심각한 인구감소 지역인데….' 예상과 다른 풍경에 주민들에게 이유를 물었는데, 그 답이 더 충격이었다.

지난 1일 찾은 강원 고성군 현내면 대진항이 2t 미만 문어배로 가득차 있는 모습. 어민이 줄면서 고성군 항구마다 '나 홀로 조업'이 가능한 문어배가 크게 늘었다. 박진호 기자

지난 1일 찾은 강원 고성군 현내면 대진항이 2t 미만 문어배로 가득차 있는 모습. 어민이 줄면서 고성군 항구마다 '나 홀로 조업'이 가능한 문어배가 크게 늘었다. 박진호 기자

이곳 어민들은 보통 5톤짜리 배에 선원 2~3명을 고용해 고기를 잡아 왔다. 그런데 인구가 줄어 선원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어민들의 선택은 나 홀로 조업이었다. 큰 배를 팔고 2t 미만의 1인용 배를 구해 주로 문어를 잡는 것이다. 다시 보니 포구를 가득 메운 배들은 하나같이 작았다.

이런 기막힌 사연을 전국에서 취재해 지난달 30일부터 나흘간 ‘지방이 사라진다’는 기획물로 연재했다. 서울 면적의 1.3배인데 신호등은 딱 3개뿐인 경북 영양군, 출생 신고 접수를 한 번도 안 해 봐서 잘 모른다는 충북 단양의 공무원, 전국에 방치된 6만6000여채의 빈집과 수많은 폐교 등. 지방은 사는 사람도, 찾는 사람도 없이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말라가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아내의 다음 평창 여행은 불가능할 것 같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농막이 취지와 달리 별장이나 전원주택, 세컨드 홈으로 사용되는 걸 막겠다며 농지법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기는 LH 직원들이 제공했다. 개발예정지 땅 투기로 돈 번 사례 중 농막이 활용된 경우가 다수 적발됐다. 감사원이 전국 3만여개의 농막을 점검해보니 절반가량이 불법 증축되거나 용도 외로 사용되는 게 드러났다. 결국 법령 개정에 이른 것이다. 내용은 숙박·주민등록 이전 금지, 규모 차등화(농지 면적에 따라 7~20㎡), 휴식공간 제한(바닥면적 25% 이내) 등이다. 면적 기준은 기존 농막에 대해 예외를 인정하지만, 숙식은 시행 즉시 금지된다.

아내는 그날 일행이 평창에서 20만원 가까이 썼다고 했다. 이런 소비가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느냐고도 했다. 다음 여행을 위해 일부러 챙겨온 평창군 관광 팸플릿을 꺼내며 “굳이 가겠다는 사람을 막는 정책은 지방소멸 촉진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1일 충북 괴산군 소재 숲속 작은 책방에서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이 청년마을 관계자 및 영농 유튜버 등과 지방소멸대응 정책현장 간담회를 하고 있다. 정부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지 위해 각종 정책들을 내놓고 있으나, 한편에선 엇박자 정책도 만들고 있어 효과를 반감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 행정안전부

지난 11일 충북 괴산군 소재 숲속 작은 책방에서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이 청년마을 관계자 및 영농 유튜버 등과 지방소멸대응 정책현장 간담회를 하고 있다. 정부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지 위해 각종 정책들을 내놓고 있으나, 한편에선 엇박자 정책도 만들고 있어 효과를 반감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 행정안전부

올해부터 시행된 인구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에 '생활인구'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직장과 학교, 또는 관광 등을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도 포함한 인구다. 기준은 하루 3시간 이상, 월 1회 이상으로 정해졌다. 그동안에는 정주 인구만을 기준으로 각종 지원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생활인구도 고려대상이다. 지방 공무원들은 생활인구를 늘려보려고 무진 애를 쓴다. 취재진이 만난 경기도 가평의 인구담당 공무원은 간절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시더라도 제발 3시간만 머물러주세요.”

지방소멸을 막는 가장 강력한 해법은 기업유치를 통한 일자리 만들기다. 하지만 이게 어디 쉽나. 무작정 집 짓고, 공장 세운다고 기업이 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다른 방법도 있다. 찾아오는 사람이 늘면 그나마 지역 경제 생태계가 살아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정주 인구 자체도 늘어날 것이란 기대도 자라난다. 한국 서퍼들의 성지라는 강원도 양양이 이런 기대를 현실로 만들었다.

LH 직원들의 땅 투기로 드러난 농막으로의 편법 주민등록 이전, 불법 증축 등은 철저한 단속으로 솎아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아예 ’숙식 일괄금지‘ 한방으로 행정력까지 아끼는 선택을 했다. 주말에 짬을 내거나, 은퇴 후 잠깐이라도 농·산·어촌에서 지내고 싶다는 도시민은 알 바 아니다. 생활인구 도입 취지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문제가 생기면 또 수조 원대의 지원금을 쏟아부으면 그만이다. 이러니 정책은 엉키고, 효과는 하세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