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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캐도 캐도 끝없는 신재생에너지 사업 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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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18년 8월 경북 청도군 매전면 국도 58호선 옆 산비탈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설이 제19호 태풍 솔릭을 맞아 붕괴된 현장. 건설장비가 응급복구를 하고 있다. [뉴스1]

2018년 8월 경북 청도군 매전면 국도 58호선 옆 산비탈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설이 제19호 태풍 솔릭을 맞아 붕괴된 현장. 건설장비가 응급복구를 하고 있다. [뉴스1]

무리한 대선 공약 추진하다 비리의 온상 돼

중앙부처 관료와 현직 시장까지 이권 챙겨

지난 정부의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사업을 둘러싼 비리가 점입가경이다. 감사원은 어제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를 공개하고, 비위 혐의가 드러난 38명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아직까지 혐의 차원이고, 검찰이 자세한 진실을 밝혀내겠지만, 이번에 감사원이 밝힌 실태가 ‘관료와 공공기관 직원 버전’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감사원의 보고서에는 토지 용도변경에 어려움을 겪는 태양광 사업자에게 행시 동기인 담당 과장을 소개해 줘 불법적으로 변경하게 해 준 중앙부처 과장, 국회에 출석해 용도변경을 소명하면서 답변 서류를 조작한 사무관의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언뜻 보기 드문 ‘적극 행정’ 사례라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문제가 된 두 과장은 공직에서 물러난 뒤, 앞서 부탁을 받았던 태양광 업체의 대표와 협력업체의 전무로 각각 변신했다. 두 사람의 비리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국회에서 서류를 조작한 사무관은 “승진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과장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며 억울해했다고 한다.

현직 기초자치단체장도 감사원에 적발됐다. 이 단체장은 고교 동문인 태양광 사업가의 회사가 조건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하게 해주는 특혜를 제공했다. 감사원은 이 단체장이 해당 지자체에 110억원 이상의 손해를 끼쳤다고 판단했다. 두 사례 모두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겼더니, 아예 생선가게를 노린 도적단으로 변신해 버린 꼴이다. 전북 지역의 한 국립대 교수의 실태는 불법 재테크의 ‘끝판왕’ 격이다. 그는 친형을 대표로 내세운 기업을 사실상 경영하면서 주주명부를 조작하는 등의 불법적인 방법으로 새만금 풍력사업권을 따냈다. 이 교수는 사업권을 따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착공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금보다 600배 많은 5000만 달러를 받고 회사를 해외 업체에 매각했다.

지난 정부의 핵심 정책이었던 태양광·풍력 사업의 비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당시 여권의 주도 세력이었던 운동권 출신 인사를 중심으로 한 태양광 사업 비리도 있었다. 국무조정실의 지난해 9월 발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약 12조원이 투입된 태양광 등 ‘전력산업기반기금 사업’과 관련된 전국 226개 지방자치단체 중 12곳의 표본조사 결과 2267건의 불법 집행으로 2616억원이 잘못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기간 동안 값싼 중국산 태양광 자재가 판치면서 국내 태양광 산업 생태계가 무너진 건 또 다른 아픔이었다. 이번 태양광·풍력 사업 비리 실태는 정책 전반에도 뼈아픈 교훈이 돼야 한다. 정권을 떠나서 경제 논리가 부족한 무리한 대선 공약은 비리로 점철되기 쉽고, 종국엔 추진 동력도 잃어버린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