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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미세먼지 대소동, 그러면 한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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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필규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김필규 워싱턴특파원

김필규 워싱턴특파원

퇴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포토맥 강변을 따라 달리던 사람들이 사라졌다. 항상 선명했던 워싱턴 기념탑도 희미하게 형체만 보였다. 초여름 날씨였지만, 거리 식당의 야외 좌석도 비었다. 저녁빛이 미세먼지에 산란해 붉어진 워싱턴 시내의 모습은 낯설었다.

지난 8일(현지시간) 워싱턴은 캐나다 산불로 인한 연기·미세먼지로 뒤덮여 ‘코드 퍼플(보라색)’ 경보가 내려졌다. 총 6개의 대기질 등급 가운데 두 번째로 나쁜 단계로, 모두의 건강에 매우 해로운 상태다.

지난 8일 워싱턴 기념탑 일대에 자욱한 미세먼지. [AP=연합뉴스]

지난 8일 워싱턴 기념탑 일대에 자욱한 미세먼지. [AP=연합뉴스]

워싱턴 기상 관측 역사상 코드 퍼플은 처음이었다. 대대적으로 불꽃을 터뜨리는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미세먼지가 좀 심하다 싶을 정도였는데, 그나마도 이번 같은 상황에 이른 적은 없었다.

앞유리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던 우버 기사는 “도시 전체가 바비큐를 굽는 것 같다”며 신기해했다. 학부모들 휴대전화에는 아이들의 야외 활동을 모두 중단한다는 교육청의 문자 메시지가 떴다. N95, KN95 등급의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권고도 이어졌다.

이날 백악관은 예정했던 행사도 취소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각 주와 관공서의 지침에 귀를 기울이고 실시간으로 대기질 정보를 확인하라”고 당부했다. 다행히 주말 내내 서풍이 먼지를 대서양으로 밀어내면서 이 소동은 길지 않게 끝났다.

TV에선 이번 미세먼지로 미국 동부와 남부 주민 1억 명 이상의 건강이 위험에 놓였다고 경고했다. 언제든 산불이 재발할 수 있어 더 문제라고 걱정했다. 이날 워싱턴 일대의 공기질지수(AQI)는 150~230 정도였다.

한국의 경우 겨울철 미세먼지 농도가 좀 심할 때 종종 나왔던 수치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전인 2019년 겨울, 48시간 동안 한국 각 지역 AQI가 150~225를 기록했다고 CNN이 보도한 바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온 워싱턴 주재원들 사이에선 “뭐 이 정도에 호들갑이냐”는 이야기가 농담처럼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따르면 AQI 150 이상은 ‘매우 심각한 건강 위협’ 단계다. 그대로 일상생활을 하면 담배 6개비를 피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좀 나아지나 싶던 한국 미세먼지는 제자리로 돌아온 모습이다. 지난달엔 급격히 나빠진 초미세먼지 농도에 3년 만에 차량 2부제를 재개했다.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한국 면적의 절반 가까운 숲을 태워야 발생하는 비상 상황이 우리에게만 일상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