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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시대 변화를 타라” 유튜브로 간 나영석 P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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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성지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성지원 정치부 기자

성지원 정치부 기자

얼마 전 한 민주당 정치인과 함께한 점심 자리였다. 식당에 들어선 그가 귀에 꽂고 있던 블루투스 이어폰을 빼며 꺼낸 말이 예상 밖이었다. “성 기자님도 보세요, 너덜트?”

쉰을 넘긴 정치인이 너덜트를 언급하니 낯설었다. 너덜트는 현실에서 볼 법한 디테일을 살린 에피소드로 웃음을 주는 유튜브 예능 채널이다. 그가 밝힌 시청 이유가 담백했다. “우리 당에 ‘문화 지체’를 겪는 분이 너무 많아요. 이런 걸 계속 봐야 요즘 감수성을 알아요.”

지난달 19일 ‘침착맨’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예능계의 ‘미다스의 손’ 나영석PD. [유튜브 캡처]

지난달 19일 ‘침착맨’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예능계의 ‘미다스의 손’ 나영석PD. [유튜브 캡처]

‘1박2일’ ‘삼시세끼’, 최근 인기인 ‘지구오락실’의 나영석PD가 구독자 220만 명의 인기 유튜버 침착맨의 유튜브 채널에 등장해 비슷한 얘기를 한다. 유튜브 생방송의 위험과 재미에 대해 토론하던 나PD는 “TV도 잘 되고 계시는데 왜 굳이 외부(유튜브 생방송)로 가려고 하느냐”는 침착맨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트렌드가 계속 바뀌는데, 남들 다 정거장에서 내려서 다음 기차 옮겨 타는데 저만 혼자 이 자리 편하다고 계속 앉아있다 보면 뒤처질 수 있잖아요.”

사회학자 오그번에 따르면 문화 지체는 법·제도·정치 같은 비물질문화가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지는 현상을 뜻한다. 요즘엔 옛날 방식에 머물며 변하는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성공밖에 모를 것 같은 나PD도 “몇 년 전부터 ‘나와 세상의 싱크로율(일치하는 정도)이 안 맞는구나’라는 게 느껴지더라. 아닌 척하는 것”이라며 문화 지체를 겪고 있음을 고백했다.

문화 지체는 사실 현상보다 태도의 문제다. 논리적으론 틀릴 것 없는 내 방식이 지금 시대엔 맞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상황의 심각성을 가른다. 나PD는 유튜브 성공 비법으로 “지인 불러서 ‘썰’ 풀어라”는 침착맨의 조언을 받은 일주일 만인 지난 2일, 유튜브 ‘채널 십오야’에 배우 이서진과의 23분짜리 만담을 공개했다. OTT를 보는 방식 등 특별할 것 없는 그 썰이 11일 기준 조회수 310만회를 넘겼다. 문화 지체를 인정하고 새 방식을 차용해 낸 성공 사례다.

예능만큼 정치도 문화 지체에 민감해야 한다. 5일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의 ‘타다금지법 반성문’은 그래서 긍정적이다. 박 원내대표는 최근 대법원의 ‘타다’ 합법 판결에 대해 “시대 변화의 흐름을 정치가 따라가지 못한 사례”라며 “‘타다’의 승소가 (타다금지법을 통과시킨) 국회의 패소라는 지적을 아프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반성문이 끝은 아니다. 정치권엔 ‘직방금지법’ 등 ‘제2의 타다’를 예고한 법안이 산적해 있다. “정치권이 바꿀 수 없는 문화적 흐름과 시민 트렌드라는 게 존재하는데, 과거 이념에만 갇혀 바라보니 평범한 시민들의 정서와 동떨어진다”(이소영 민주당 의원)는 지적에 국회가 반응할까. 문화 지체 극복은 확실히 단기 과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