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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혐오한 수학 천재의 탈선…미국 폭탄 테러리스트 ‘유나바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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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978년~1995년까지 무려 17년간 미국을 공포에 떨게 한 폭탄 테러범 테드 카진스키(가운데)가 1996년 4월 북서부 몬태나주 헬레나시에 있는 법원에서 차로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1978년~1995년까지 무려 17년간 미국을 공포에 떨게 한 폭탄 테러범 테드 카진스키(가운데)가 1996년 4월 북서부 몬태나주 헬레나시에 있는 법원에서 차로 이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현대 문명과 과학 기술이 인류를 파괴한다는 문명 혐오주의자였던 미국의 수학자 출신 폭탄 테러범 테드 카진스키가 81세로 수감 중 사망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카진스키는 10일(현지시간) 미국 남동부 노스캐롤라이나주 연방 교도소에서 의식이 없는 채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 판정을 받았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던 중이었다. NYT는 소식통 3명을 인용해 그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보도했다. ABC방송도 관계 당국이 자살로 추정하고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

카진스키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대학과 항공사 등에 16차례 소포로 사제폭탄을 보내 컴퓨터 상점 주인, 삼림 개발업계 홍보회사 임원, 목재 산업 로비스트 등 3명을 숨지게 했다. 또 유나이티드 항공사 사장, 전기공학·컴퓨터 과학 교수 등 23명을 다치게 했다. 미국 사회를 우편물 수령과 비행기 탑승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는 주로 대학과 항공사를 노렸기 때문에 대학(University)과 항공사(Airline)의 앞글자 ‘Un’과 ‘A’, 그리고 폭탄제조자(Bomber)를 묶어 ‘유나바머(Unabomber)’란 별명으로 불렸다.

카진스키는 지문 등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는 치밀함을 보였고, 미 연방수사국(FBI)은 17년간 최소 150명 이상의 수사 인력과 단일 사건으론 역대 최고액인 5000만 달러(약 647억원)를 투입했다.

1942년 시카고에서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카진스키는 초등학교 때 아이큐 167을 기록한 신동이었다. 16세 때 하버드대 수학과에 입학했고 24세 때인 1967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 사상 최연소 수학 교수가 됐다. 하지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내성적 성격 탓에 2년 만에 그만뒀다.

이후 1971년부터는 북서부 몬태나주 오두막에서 전기와 수도도 없이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오두막 인근에 도로 등이 생기며 개발되는 모습을 보고 생태계 파괴와 과학·산업 기술 전반에 대해 분노하게 됐고, 폭발물 제조법을 독학으로 익혀 우편 테러를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미국을 공포에 떨게 한 범행은 친동생 데이비드 카진스키의 신고로 막을 내렸다. 데이비드는 1995년 9월 신문에 실린 일명 ‘유나바머 선언문’을 보고 형의 문체란 사실을 알아챘다. 선언문에는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겼다. “산업혁명은 기대수명을 크게 늘렸지만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인간에 광범위한 심리적 고통을 초래시켜 인류에겐 재앙”이라면서 “경제와 기술의 토대를 제거해 산업사회에 항거하는 혁명”을 주장했다.

카진스키는 1996년 4월 동생 신고로 체포돼 1998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CNN에 따르면 가족과 변호인은 감형을 위해 그가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카진스키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정신과 전문의 샐리 존슨 박사는 “편집증과 조현병을 앓고 있으나 재판을 받을 만한 정신적 능력을 갖췄다”는 진단을 내렸다.

유나바머 선언문과 그의 스토리는 영화와 넷플릭스 시리즈 등으로 제작됐다. 테러 피해자와 유족들은 그를 ‘악마’라고 비난하지만, 일각에선 사회 불평등 심화와 기후변화를 내다본 ‘예언자’로 추앙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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