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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톡스·비만 1타 강사 학술대회 북적…꽉 채운 800여 명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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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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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청소년과(소아과) 진료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으니 다른 과 간판이라도 달아볼까 해서…”
11일 ‘소아과 탈출(노키즈존)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가 열린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 2층 행사장 앞에서 만난 소아과 전문의 최모씨는 이렇게 말하며 멋쩍게 웃었다. 소아과를 운영한 지 30년이 넘었다는 최씨는 “소아과가 위기라는 말이 과거부터 있었지만, 위기가 현실화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의사가 주변에 적지 않다”라고 털어놨다.

의사회는 왜 ‘노키즈존’ 외치나…“소아과만으론 유지 어렵다”

이날 열린 학술대회는 지역 소아과 개원 의사들이 주축인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이하 의사회)가 주관했다. 의사회가 지난 3월 저출산과 낮은 수가 문제 등으로 운영난을 호소하며 협회 차원의 폐과를 선언한 뒤 내놓은 후속 조치 중 하나다. 의사회 관계자는 “조건이 열악한 소아과가 아닌 다른 진료과목으로 전환을 돕겠다는 게 행사 취지”라며 “지방에서도 학술대회를 열어달라는 문의가 있을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라고 전했다.

의사회에 따르면 1년에 2번 열리는 학술대회에서 주제가 소아·청소년 과목 쪽이 아닌 성인 진료에 초점이 맞춰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강의에는 ‘성인진료 기본 중의 기본 1타 강사님이 족집게 강의해주는 고지혈증 핵심정리’ ‘진료실에서 바로 적용하는 보톡스 핵심 포인트’ ‘비만 치료의 실전 적용’과 같은 주제가 포함됐다. 이날 학술대회에 홍보차 나온 한 비만치료제 회사 측은 “코로나19 이후 오프라인 행사엔 처음 나왔는데 예상보다 의사분들 호응이 좋아 오전 11시쯤 준비한 책자 500권이 모두 동났다”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만난 소아과 전문의 이모씨는 “소아과 운영이 힘들다는 건 뉴스가 아닐 정도로 다 아는 이야기”라며 “병원 운영에 도움이 될 노하우를 배우러 왔다”라고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는 신청 인원만 719명으로, 오전 10시 기준 550명이 참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강의가 열린 행사장 내부에는 800석 정도가 준비됐는데, 빈자리는 눈에 거의 띄지 않았다. 의사회 측은 현장 의견을 반영해 비슷한 내용의 학술대회 추가 개최도 계획하고 있다. 의사회 관계자는 “이날 행사가 총론적 성격이라면 다음에는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다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용 진료 등으로 살길 찾는 소아과 의사들

임현택 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소아청소년과 탈출(No kids zone)을 위한 학술대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현택 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소아청소년과 탈출(No kids zone)을 위한 학술대회'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사회는 “활동 회원 3000명 가운데 90%가 폐업 또는 간판만을 유지하고 성인 환자를 진료하는 게 현실”이라며 미용시술 등을 알려주며 회원들에게 타과 전환을 유도하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1차 의료(동네의원) 소아과 상근 전문의 3388명 가운데 전문과목과 진료 표시과목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667명(20%)으로 집계됐다. 전문의 과목과 진료 과목이 불일치하는 비율은 2018년 13.5%에서 5년 새 7%포인트 늘어났다. 15년째 서울에서 소아과를 운영하고 있다는 최모씨는 “다른 과목 진료 없이 의원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사회는 저출산이나 수가 문제 등이 의원 감소나 전공 기피로 이어져 ‘소아과 오픈런’ 등 진료 공백 사태를 만들었다고 우려한다. 심평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말 현재 전국 의원 수는 3만5225곳으로 10년 전인 2013년 말 2만8328곳과 비교했을 때 6897곳(23.3%)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소아과는 2200곳에서 2147곳로 53곳(2.4%) 감소했다. 2017~2021년 지난 5년간 소아과 진료 인원은 24.6% 줄었다. 임현택 의사회 회장은 “소아과 수입은 사실상 진찰료가 전부인데 수십년간 1만2000원~1만3000원 수준에 머물러있다”라며 “타과보다 압도적으로 환자를 많이 보지만 23개 전체 과 중 수입이 꼴찌(2020년 기준 1억875만원)고 10년 전과 비교해도 25% 줄어들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소아과 의사들이 미용을 배우거나 요양병원 촉탁의(전담의)로 가고 있고 부모·선배들이 전공 선택을 뜯어말린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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